“천상에서 지상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  연대회의 대선 경선에 부쳐

 

윤현식 노동 ∙ 정치 ∙ 사람 정책위원

 

선거의 요소를 ‘공학적’으로 분류할 때 흔히 제시되는 기준이 “인물/구도/바람”이다.

“바람”은 이슈일 수도 있고, 트리거일 수도 있다. 유권자의 표심이 향하는 곳에 어떤 의제가 있느냐, 특정 의제가 선거판을 좌우할 정도의 파란을 몰고 왔느냐를 봐야 한다. 쉽게 말해, 바람을 타야 배를 띄울 수 있다는 거다.

“구도”는 당대의 정치지형이다. 정치세력의 분할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강약우열의 현황은 어떠한가, 누가 누구랑 손을 잡으며 누가 누구와 손절하는가 등등이 그것이다. 세력의 포진은 이합집산을 통해 정치가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실시간을 보여주는 표식이다.

“인물”은 당연히 각 정치세력이 내세운 얼굴이다.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단연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누가 표를 달라고 하느냐이다. 힘 있는 정당이 내세운 후보가 유권자에게 소구하지 못할 수도 있고, 반대로 힘 없는 정치세력이지만 후보만으로 유권자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선거 ‘공학적’으로는 이런 요인들이 분명 중요한데, 기실 이러한 요인들은 선거시기에 돌연 유권자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가 건실하게 작동할 수 있는 기제로서 선거는 잠시 반짝이는 섬광만으로 사람들의 표심을 좌우하게 만들지 않는다.

선거는 과거에 대한 심판이자 미래의 일정기간 동안 책임의 위임이다. 위임에 따른 결과는 이후에 다시 심판의 대상이 되며, 심판의 결과는 또다른 위임의 조건을 만든다. 결국 유권자로 하여금 대상에 대하여 뭘 잘했느냐, 뭐가 문제였나를 판단하게 하고, 이를 기반으로 내 무언가를 맡길 것인가를 결정하도록 만드는 건 그 대상이 내세우는 정책과 평상시 정치활동을 통해 누적한 정치적 결과이다.

“바람”과 “구도”도 마찬가지지만, “인물”은 이렇게 지난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다. 하루 아침에 불쑥 튀어나와 세간을 뒤흔드는 인물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윤석열이라는 ‘정치인’이 문재인 정권 중에 느닷없이 돌출된 인물이었음에도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게 아니라, 그가 인생에 걸쳐 쌓아왔던 행보가 “구도”와 “바람”을 타고 사건을 만든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문제는 “인물”이라는 요건이 단지 한 사람만의 인상비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물”이라는 요건에는 정치세력, 정강정책, 그리고 또다른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유권자는 단지 어떤 인물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만으로 선택을 결정하지 않는다. 윤석열이라는 정치초년생을 선택할 때, 그를 선택한 유권자들에겐 ‘국민의힘’이라는 정치세력과, 윤석열이 정권을 잡으면 국민의힘이 그 뒤를 받쳐줄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그 전제가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아닌지는 다른 이야기다.

정치세력이 선거에 뛰어드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보수양당 같은 거대정당이라면 당연히 당선 내지 집권이 목표다. 반면 군소정당의 경우, 특히 진보-좌파정당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선거에 뛰어드는 이유는 당선이나 집권보다는 정치세력 당사자의 존재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자신들이 가진 정치적 존재의의와 강령, 정책을 알리고, 동시에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의 범위를 확인하려는 목적에서이다.

진보-좌파정당이 이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평상시의 정치적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조직, 인물, 자원에서 현격히 열세에 있는 진보-좌파정당에게 선거라는 계기는 평소에 하기 어려웠던 정치적 발언을 할 드문 기회 중 하나이고, 따라서 아무리 어려운 형편일지라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더구나 정치적 책임을 자임하는 정당이라면 선거를 통한 집권의 의지를 유권자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선거에 참여할 의향이 없는 정치세력이라면 정당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선거는 선거다. 유권자에게 그저 “우리가 여기 있소! 우리의 이야기가 옳은 이야기요!”라는 어필만 한다면, 그 정치세력의 확장력은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고, 유권자는 호기심 이외의 감정, 즉 신뢰라든가 위임의 의지라든가 하는 선까지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될수록 해당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도는 감소한다.

어차피 “구도”의 측면에서 세가 부족하고, 기존 정치세력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입장에서 기존의 정치적 의제에 편승하기 쉬운 “바람”을 타기도 어려운 진보-좌파정당은 “인물”에서 그나마 유권자의 눈길을 돌릴만한 여지를 찾아야 하는데, 인물의 배경이 될 조직이나 자원, 특히 다른 인물들을 보여줄 수 없으니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특히 대표로 제시된 인물 외에 그 인물을 뒷받침할 다른 인물’들’, 또는 이를 대체할 정치적 자원이 유권자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진보-좌파정당은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군소정당의 A라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무총리는 누구, 노동부장관은 누구 정도로 예비내각의 개괄 정도는 갖춰야 한다. 그래야 그 정당의 정강정책이 어떤 수준에서 누구의 손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감을 유권자들이 가지게 된다. 구체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저 사람을 찍으면 저 정당이 충분히 내각을 구성해 행정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진보-좌파 정치세력이 이렇게 그 뒤의 인물 혹은 정치세력을 보여주었던 대선은 2008년 대선이 마지막이었다. 그나마 당시까지 유효한 정치세력으로서 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이 가지고 있는 위상, 그리고 그 당이 집권을 하게 되면 내각의 구성은 어떠할 것이며 정강정책의 실현이 어떤 과정을 밟게 될 것인가를 보여줄 수 있었던 최후의 대선이 바로 2008년 대선이었다. 그 이후 진보-좌파의 대선은 구호와 후보 이외에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의 전제들을 제시하지 못해왔다.

이번 대선 역시 마찬가지로 보인다. 보수양당 중심의 세력분할에 이준석이 어느 정도나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로 굳혀진 “구도”, 내란세력 척결이 최대의 의제가 되어버린 “바람”, 이재명이 압도적 승리를 거둘 것이냐 아니면 기대에는 못미친 지지율로 승리할 것이냐로 귀결되어버린 “인물”이라는 세 가지 요소 어디에도 진보-좌파 정치세력이 선거의 승패 자체에서 유효한 정치적 성과를 얻을 여지는 없어보인다.

이 어려운 와중에서 진보-좌파진영은 사회대전환연대회의를 구성하여 21대 대선후보 경선을 진행했다. 철학과 총론의 차원에서, 그리고 제시하고 있는 정책대안에서 연대회의의 경선후보들은 보수양당을 비롯한 다른 정치세력의 인물들이 내세우는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구호와 사람 외에,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진보-좌파는 구름 위에 앉아 이슬만 먹으며 속세를 관조하는 삶을 살기 위해 정치를 하지 않는다. 고고한 지위에 앉아 고담준론을 주고 받으며 때묻지 않는 삶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지 않는다. 정반대로 진보-좌파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진흙창을 뒹굴면서 때를 묻혀가며 발 딛고 살아가는 세속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권자들에게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하며, 집행력을 가진 수많은 인재들이 포진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의지와 구호만이 아니라 진짜 뭔가 맡겨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줄 수 있을 정도의 실체를 내세워야 한다. 그래야 이번만이 아니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 진보-좌파가 뭔가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건 기대 난망이다. 진보-좌파의 역량은 현저하게 저하되어 있는 상태고 당장 이번 연대회의의 경선진행마저도 남은 힘을 쥐어 짜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당면 대선에서 어떤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지 않음에도 경선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정은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진보-좌파의 정치적 입장을 재정립하고, 연대연합의 장을 모색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집행력 있는 정치세력으로서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이번 대선으로 삼아보자는 취지이다.

이제 진보-좌파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들어와야 한다. 더욱 철저하게 갈라졌던 이유를 반추하고 함께 해야 할 당위를 확인해야 한다. 따로 해야 할 부분과 같이 해야 할 부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향후 진보-좌파가 보수양당체제의 이 강고한 퇴행적 정치구조를 혁파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역량을 누적할 수 있다. 이번 대선 경선이 그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