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볼모로 살 것인가? – 지옥 탈출은 지역정당 건설로부터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강준만 교수는 7월 1일 경향신문 칼럼(인터넷판)에서 고착화된 보수양당체제의 대안으로 “중도 정치 세력이 시민운동을 겸하면서 유권자들로부터 지명도와 신뢰를 얻어나가는 방식”을 제안한다.
일단, 강 교수가 이야기하는 “중도”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전체 글의 맥락상 여기서 말하는 “중도”라는 건 국힘과 더불의 중간 어디쯤을 의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진보나 보수, 좌나 우 같은 이념과 정강정책을 나누는 기준에 따른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강 교수가 말하는 “중도 정치 세력”은 “다양한 정치세력”이라고 하는 게 훨씬 적절하다. 하지만 굳이 “중도”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어차피 한국사회의 현실 정치지형에는 국힘과 더불이라는 보수양당밖에 없기 때문에 불가피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다른 논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한다. 시민운동진영이 선거때 후보를 내고, 후보를 낸 단체를 정당에 준하여 선거운동이며 정치자금이며 등에 대하여 보장해주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정치개혁을 논할 때 흔히 사례로 드는 외국에서는 이런 형태로 시민조직(유권자연대)이 선거에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강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이미 시민운동단체는 충분히 정치적이거니와 정파적인 집단으로서 정관계 진출의 주요 통로 중 하나로 활용돼왔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보장이 되면 굳이 국힘이나 더불 중 하나를 선택해 당적을 취득해야 하는 무리수도 불필요하다. 어차피 이미 정치적 권리는 어느 정당보다 더 강력하게 누리면서도 정치적 책임에서는 한없이 자유로웠던 거대 시민단체들은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 더해, 선거 때만 준정당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시민단체 외에 선거시기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공공연하게 나서면서 활동하는 다양한 ‘정당들’을 인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정당이다. 풀뿌리에 대한 소명의식과 정치적 책임감을 가진 지역정당이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보수양당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을 때, 보수양당으로 고착된 경직된 정치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부문정당, 의제정당이 활동할 수 있게 하고, 이에 더해 다양한 유권자 조직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강 교수가 말하는 모델이 바로 이때 준정당으로서 인정되는 거다.
강 교수도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대근 칼럼니스트의 5월 26일자(인터넷판) 칼럼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양당 후보는 재벌 중심 경제, 성장주의, 감세, 소수자 차별로 동맹을 맺고 있다. 이 동맹은 재벌개혁, 불안정 노동, 증세, 차별금지, 불평등 해소와 같이 마땅히 선거 쟁점이 되어야 할 의제를 배제한다.”
선거에서뿐만이 아니다. 평상시에도 보수양당은 선거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를 왜곡한다. 이번 총리후보자 청문회를 돌이켜보라. 양당이 중심이 된 청문회 위원들의 질문과 후보의 답변은 이대근 칼럼에서 지적한 저 행태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것이 바로 “양당제가 낳은 현상”(이대근)이다.
“재벌개혁, 불안정 노동, 증세, 차별금지, 불평등 해소와 같이 마땅히 선거 쟁점이 되어야 할 의제”는 저 두 당 중간 어디쯤에 있는 “중도”로는 해결되지 않는 의제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 교수가 이야기하는 “중도”와는 다른 결의 노선과 가치가 현실정치에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식 중 하나가 강 교수가 말하는 시민단체의 선거시기 정당인정 모델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전제로 지역정당을 비롯한 다양한 정당의 활동이 보장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당장 새 정부의 방침에 다양한 정치세력의 활동 보장이라는 건 보이지 않는다. 보수양당의 의원들로 채워진 국회 역시도 그러한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22대 들어 발의된 몇몇 정당법 개정안은 기껏해야 ‘지구당’ 부활을 내용으로 하면서도 어이없게 ‘지구당’이라고 해야 할 명칭을 ‘지역당’이라고 표기하면서 지들의 부끄러움을 숨기고 있는데, 하필 그게 ‘지역정당’과 비슷한 이름인지라 이 법안들이 마치 지역정당을 보장하는 정당법 개정안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여야가 공히 다를 바가 없다.
당연히 정부나 의회에서 알아서 지역정당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세력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법을 만들지는 않을 거다. 현행 정치체제(1962년 체제)에서 굳건해진 보수양당구조가 만들어주는 기득권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닥으로부터의 균열이 필요하다.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정당을 만들어내고 이를 보수양당과 같은 지위로 올려놓는 싸움이 벌어져야 한다. 보수양당에게 볼모로 잡혀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다고 하면서 정작 때만 되면 이놈 싫어 저놈 찍는 짓을 언제까지고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