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다음날 아침, 아마도 뒷목을 잡은 사람 꽤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있을까? 나라를 다 뒤집어엎을 뻔했던 내란을 겨우 수습한 지 채 1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어떻게 내란 동조세력이 아직도 위세를 떨치며 제 생존력을 과시할 수 있었는가?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왔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보수양당에겐 아무리 미워도 “금쪽같은 내 새끼”처럼 품어주는 지역 기반이 있다. 그 밑천이 든든하게 버텨주는 한, 내란을 방조하거나 동조했던 세력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권토중래의 꿈을 이룰 수 있다. 그 반대편에 있는 당 역시 대통령에게 걸린 공소를 취소시킨답시고 법까지 만들겠다고 난리를 치더라도 별 문제 없다.
인물, 정책, 구도, 바람과 같은 선거의 4대 요건을 낱낱이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 요인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 이전에, 뒷목을 잡게 만드는 일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보수양당만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법과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지역패권에 기반한 보수양당은 현재의 정치관계법 구조를 바꿀 의향이 없다. 현재와 같은 정치관계법의 구조가 온존하는 한 그들의 기득권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때론 그 기득권의 규모가 줄어들 때도 있겠지만, 어차피 두 당밖에 존재하지 않는 정치판이므로 언젠간 네 것이 내 것 되는 날이 온다는 확신이 그들에겐 있다.

보수양당의 이러한 태도가 유발하는 가장 큰 패악은 극단적 당파성에 기댄 정치적 양극화와 이를 위한 상호 혐오와 배제로 인한 심각한 민주주의의 훼손이다. 특히 중앙정치로 구심력이 작동하면서 분권을 지향하는 풀뿌리민주주의는 고사 일로를 걷게 된다. 또한 보수양당만의 정권 나눠 먹기가 상례화함으로써 동종교배로 인한 열성인자들의 각축이 늘어나면서 정치의 질은 나날이 떨어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잡이질로 난장판을 만들었던 자들의 면면을 보라. 죄다 빨간당 아니면 파란당, 또는 파랗고 싶어서 안달이 난 당들의 인사들이 그 난리들을 쳤다.

보수양당이 쳐놓은 철옹성 앞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의 진입은 가로막히고 다양성에 기반한 민주적 정치의 발전은 요원해진다. 무투표 당선자가 5백 명을 훌쩍 넘었지만, 어차피 보수양당이 나눠 먹은 터라 그들은 별 말이 없다. 중대선거구의 2인 선거구화, 비례의석 축소, 비례 진입장벽 5% 등 군소정당이 진출할 수 있는 여지를 극도로 좁혀놓은 상태에서는 보수양당 후보의 무투표 당선이 상당한 비율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문제로 지적된 제도는 결선투표제다. 결선투표는 일정한 득표기준을 만족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 상위 득표자들 중 일부에 대하여 다시 투표를 진행한 후 기준을 넘은 후보가 당선되도록 하는 제도이다. 결선투표제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당선자가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며, 결선투표의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세력이 연대 연합하게 됨으로써 공약의 완결성과 선거 이후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대통령선거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장, 교육감 등의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요 선거가 끝날 때마다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한 당선자에 대하여 민주적 정당성 시비가 붙거나, 미미한 득표를 거둔 군소정당의 후보가 2위 후보의 표를 가져감으로써 해당 후보가 선거에 패배하게 되었다는 부당한 비난을 받는 일이 계속되어왔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보자. 당선자인 오세훈 후보는 49.15%를 득표했고, 정원오 후보는 48.13%를 득표했다. 결과는 오세훈 후보의 신승이었지만, 유권자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 득표인데다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관리에 문제가 생김으로 인해 상당한 구설에 휘말리게 되었다. 반면 정원오 후보는 득표율 1% 차이로 낙선을 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일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달랑 1%를 획득한 정의당의 권영국 후보에게 정원오 후보의 표를 가져간 것처럼 비난하고 있다.

사실 이번 지방선거보다는 이전의 굵직한 선거에서 군소정당 후보를 비난하는 일이 더 심각했다. 돌이켜보면,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47.43%를 득표해 당선되었는데, 이때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46.93%를 얻었는데 당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3.26%를 획득했었다. 그러자 민주당 지지자들이 진보신당의 중앙당을 비롯한 전국 당부로 항의를 하면서 노회찬 후보가 한명숙 후보의 표를 가져가서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비난을 퍼부었었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는데,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불과 0.7%의 박빙으로 승패가 갈린 결과를 두고 불과 2.37% 득표에 머물렀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심상정 후보를 이재명 후보 낙선의 주범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런 몰상식한 일들이 벌어지는 일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대책이 바로 결선투표제다. 예를 들어 선거 결과 유표투표의 50%이상 또는 전체 유권자의 40% 이상 득표를 확보한 후보가 없을 때 상위 2인에 대하여 결선투표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로써 당선인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결선투표에 함께 한 다른 정치세력과 함께 다양한 정책적 역량을 펼쳐 나갈 수 있다. 결선투표는 프랑스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인 제도이며, 실제 본선거에서 약간의 열세에 머물렀던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다른 정치세력과 연합하여 최종적으로 당선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 결선투표가 선거법 개정으로 가능하냐 아니면 개헌을 해야 할 사항이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헌법이 상대다수득표제를 전제하고 있는 만큼 결선투표제를 하기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형식적으로는 그게 깔끔하지만, 헌법 현실의 변화 또는 헌법 해석적 측면에서 반드시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대통령선거는 차치하고라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나 교육감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채택하는 건 선거법 개정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결선투표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결선투표제를 채택한다고 해서 당장 보수양당의 세력이 위축되거나 군소 진보정당들이 약진한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극우세력의 결집을 촉진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비용과 효율이라는 측면에서의 문제제기도 여전하다. 하지만 보수양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재의 정치관계법 전반에 대한 정비를 결선투표제 채택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뭐든 한꺼번에 다 이룰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이 정도도 합의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그 정당을 민주적이라고 볼 여지가 없다. 국민의힘이야 내란 동조세력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더불어민주당마저 이런 태도를 유지한다면 그야말로 국민의힘이나 다를 바 없는 반민주적 정치집단일 뿐이다. 최소한 더불어민주당이 합리적 보수정당이라면 원내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동안 결선투표제 도입을 서두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