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저지조항 위헌 결정의 의의와 과제
윤현식 노동 · 정치 · 사람 정책위원
1월 29일 헌재는 공직선거법 공직선거법 제189조 제1항 제1호에 관한 헌법소원청구심판소송(2020헌마956등)에서 해당 규정을 위헌이라 확인했다.
이 결정에서 다수의견은 비례대표 의석배분에 있어 저지조항의 설치 자체가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군소정당의 난립 방지, 대의제의 안정적 운영에 기여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고, 사표 증대 · 비례성 약화 초래 · 신진 정치세력의 저지 등 부정적 효과도 있으므로, 정치상황, 정부형태, 정당 및 선거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소수정당 배제의 정당성이 존재하는지 확인해야 할 사안이라고 하였다. 군소정당의 수가 적어 난립의 위험이 없고 이들이 의회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의회의 안정적 기능을 저하시키지 않는다면 배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한국의 경우 저지조항이 신진 정치세력의 원내진출 저지를 통한 거대양당의 세력강화에만 기여한다고 봤다. 또한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하는 통치구조,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인 지역구 선거방식의 한계, 46석에 불과한 비례 의석, 국회법상 교섭단체 제도를 통해 군소 정당 제어, 정당등록의 요건이 지나치게 강한 정당법 등, 현행 제도의 수준에서 3% 저지조항을 따로 두지 않더라도 원내 진출 정당은 극히 제한되고 따라서 군소정당 난립으로 인한 폐해의 우려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저지조항은 투표가치를 왜곡하고 선거의 대표성 침해하는 현저히 비합리적인 입법으로서 평등선거원칙 위배, 선거권, 피선거권, 평등권 침해하였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다수의견은 현행 저지조항의 폐해를 보수양당이 개선할 가능성 없으므로 위헌 선언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한편 다수의견에 대하여 정형식, 조한창 재판관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특히 눈여겨볼 반대의견의 내용은 저지조항이 없어질 경우 극단주의 세력이 중도정당보다 빠르게 지지층을 결집시킬 것이고, 극단주의 세력이 의회에 진출하게 된다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의회정치 방해, 사회적 갈등 조장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또한 지금보다 저지선을 더욱 낮출 경우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해당 규정의 입법취지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결정을 통해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입장을 가진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을 막아왔던 저지조항(봉쇄규정, 진입장벽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의 위헌성이 확인된 점은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한국사회의 정치구조에 뿌리박힌 여러 난제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향후에도 불합리하고 위헌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지난한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다수의견이 저지조항이 없어도 문제 없다는 근거로 제시한 다른 제도들은 그 자체로 정치적 다양성을 억누르고 보수양당 구조를 고착하는데 기여하는 위헌적 장치들이다.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하는 통치구조,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인 지역구 선거방식의 한계, 46석에 불과한 비례 의석, 국회법상 교섭단체 제도를 통해 군소 정당 제어, 정당등록의 요건이 지나치게 강한 정당법” 등은 저지조항보다도 더 강력하게 평등선거원칙을 위배하면서, 선거권, 피선거권,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또한 헌재 결정은 여전히 한국의 기득권층이 대의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군소정당의 난립을 막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수정당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활력 제고, 유권자들의 정치적 효능감 고양, 거대양당 견제 효과, 정치적 급진화 예방 및 제도적 경로를 통한 조정 등 장점을 언급하면서도 군소정당 난립을 우려하는 건 헌법재판소의 여전한 한계다. 다수의견조차도 여러 장치들에 의해 어차피 군소정당이 제도권에 틈입하지 못하므로 대의제의 교란이나 의회의 혼란이 유발되지 않으니 저지조항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이론을 정리한 것일 뿐, 군소정당 난립이라는 말이 민주적 다양성을 폄훼하기 위해 흔히 동원되는 수사로서 그러한 공포가 근거 없는 것이라는 점에 대한 제고로까지 나가지 않고 있다.
특히 반대의견이 제시하고 있는 극단주의적 정치결사의 의회 진출 문제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고리타분한 속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반대의견이 말하는 극단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온갖 정치결사 안에는 극좌와 극우가 항상 섞이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입장의 충돌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감수해야 할 원죄이자 바로 그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필연적 장치가 민주주의 체제다.
더구나 현실은 더 시궁창인데, 이미 한국의 국회 안에는 극단주의 세력이 그것도 대규모로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내란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지지 옹호하고, 극우세력과 연합하며, 여성 · 소수자 · 장애인 · 이주민 등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극단주의 우익 정당이 원내 107석이나 장악하고 있는 게 한국 의회의 실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껏해야 몇 석 되지도 않을 어떤 극우의 등장을 우려하는 반대의견은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결정에서 헌법소원청구를 냈던 주체 중 하나인 사회변혁노동자당(이하 변혁당)이 당사자성을 부정당했다는 것이다. 등록된 정당이 아닌 비법인사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게 재판부가 제시한 이유다. 물론 이 문제는 해당 헌법소원에서 다툴 사안이 아니었으므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제도 내 선거를 부정하는 정치결사는 굳이 정당법이나 선거법 등 제도에 의한 권리의 보장 및 보호를 다툴 이유가 없다. 따라서 변혁당이 비합정당을 고수하고자 했다면 이런 헌법소원을 낼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헌법소원을 청구할 당시 왜 변혁당이 당사자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비합법 정당, 비법인사단의 지위에 있어야 했는지를 이번 헌법소원과는 별개로 따져야 한다.
현행 정당법은 정강정책에 따른 의제정당이나 부문정당, 구성형식에 따른 플랫폼정당 또는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정당법에 따라 의제정당, 부문정당, 플랫폼정당, 지역정당은 정당등록이 불허되며, 정당등록이 불허되기에 선게에 나서지도 못하고 이번과 같은 헌법소원청구의 당사자가 되지도 못한다. 이러한 정당법의 구조는 선거법상 저지조항보다 훨씬 위헌적이며 군소정당의 제도권 진입을 봉쇄하는 진입장벽이다.
보수양당이 합리적 절차를 통해 제도개선을 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 보고 아예 위헌 결정을 내린다는 다수의견은 보는 이에게 작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여전히 체제안정이라는 전제를 깔고 판단을 하는 헌법재판소임에도 이 사안에 있어서 입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가치판단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양당의 적폐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보수양당 중심의 국회가 자극을 받아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비례대표의석을 더욱 줄이는 입법을 하거나 국민투표법 사례에서 보듯 헌법재판소 결정을 뭉개며 시간만 질질 끌 수도 있다. 현행 제도 덕분에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결국 다양한 정치결사가 각자의 정견을 놓고 경쟁하는 민주주의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보수양당 체제를 혁파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선거법에 거의 모든 역량을 걸고 있는 제 군소정당에게 한줄기 희망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거 하나에만 얽매여서는 결코 아무것도 손에 쥘 수 없다는 각성을 요구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