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死標)’는 없다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사표(死標)라는 말이 있다.
이게 잊어먹을 만하면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와 기억을 새롭게 하는 말이다. 죽은 표 만들지 말고 될 놈 밀어주자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다.
따지고 보면 난 투표권이 생긴 이래 내가 찍어 당선된 후보가 딱 한 명 있었다. 민선 1기 서울시장 조순. 그 외, 그 전이고 그 후고 내가 찍은 후보는 열에 열 모두 낙선.
하다못해 진보정당에서 지역구 의원이 나올 때조차, 운 나쁘게도 난 그 의원의 지역구에 살지 못했던 터라 내 표는 낙선자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비례후보는 제외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건 당을 찍었던 거니 좀 예외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만일 저 떠도는 사표론이 진정한 의미가 있다면 그동안 내 표는 다 죽은 표였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맨날 당선되는 사람들을 찍었던 사람들이 볼 땐 정신승리 시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내가 찍은 그 표들을 사표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난 늘 0.을 찍은 몇 % 안에 속한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0.몇으로 찍힌 숫자는 늘 이 땅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적어도 중요한 시기에 나와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러나 선거가 끝날 때마다 의문이었던 건, 정말 저 0.몇 정도의 사람들만이 이 나라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의 전부일까라는 것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만 봐도, 말을 하고 말을 듣는 사람들의 비율만 봐도 도저히 저정도는 아닌데, 저것보다는 그래도 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번번이 그 생각은 오류였던 것으로 나타났고, 나는 나의 인지능력을 심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난 세상을 잘 못 보고 있나봐…
현행 정치관계법으로는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어렵다. 언제나 차악을 찍도록 유도하는 정당법과 선거법. 최악을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이 구조 안에서, 유권자들은 자칫 내가 찍은 한 표로 인해 자신이 생각하는 최악의 후보가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저쪽이 싫어 투표하는(‘이상한모자’ 김민하의 책 제목)” 어쩔 수 없는 차악선택을 하게 만든다.
최선을 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기검열의 쇠사슬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당락의 원인이 후보나 그 후보의 정당에 있음에도, 당락의 결과에 대해 군소정당 지지자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그러면서 최악의 당선자가 벌이는 최악의 효과에 대해 ‘사표’를 만든 사람들이 죄스러워해야 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난 굳굳하게 나름 최선 또는 차선의 선택을 해왔다. 그 결과는 늘 0.몇 %라는 수치 안에 스스로를 결박해왔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난 사람들에게 요청해왔다. 두려워말고 최선의 선택을 하시라고.
그 결과, 지난 대선 이후 어떤 이들로부터 “윤석열이 돼서 속이 시원하냐?”는 욕을 들어먹기도 했지만, 나라고 윤석열이 돼서 속이 시원했겠냐?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돼야 속이 시원하지, 그걸 말이라고 묻나?
다시금. 사표는 없다. 사표를 유도하고 사표를 죄악처럼 몰아가는 보수양당의 기득권이 문제다. 우리 말고 딴 놈을 찍을 생각은 하지 말라며 군부가 만들어놓은 정당법과 선거법체계를 그 골격 그대로 유지하고있는 저 보수양당이 문제다.
그렇기에 저들이 ‘사표’라고 우길 수록 보수양당체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최선을 선택하는 투표를 해야 한다. 지금 기껏 0.몇 %라고 할지라도 두려움을 딛고 최선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어날 수록 용기를 얻어 최선을 선택하는 행렬이 늘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늘어가야 0.몇 %가 소수점 앞에 숫자를 찍는 날도 오게 된다.
투표일에 최선을 선택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선거가 다가오기 전에 정당법이며 선거법을 고쳐나가도록 강제하는 힘을 모으는 거다. 특히 정당법이 그렇다. 나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진보정당이며 군소정치세력이 비례성 확장에 목을 매다는 선거법 개정에 몰두하는 관성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전망한다. 그 협소한 관점이 결국 지역과 현장의 정치역량을 중앙정치의 선거공학으로 함몰시켜왔음에도 쉽게 그 관성이 변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그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느낌은 있다. 정당법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보수양당의 틀을 깰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데에 일정한 동의가 모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긍정적인 현상이다.
대선이라는 대규모 중앙정치판이 벌어지면서 지역정당 논의가 쑥 들어간 형편이지만, 난 이렇게 판 자체를 바꾸는 운동이 보다 활발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판이 바뀌고 울긋불긋해져야 최선을 선택하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거니까.
어쨌거나 다시 강조하거니와, 사표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