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공천’이라는 기만술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윤현식
선거철만 되면 들리는 익숙한 낱말들이 있다. ‘인재영입’, ‘자객공천’, ‘전략공천’ 같은 말들이다. 이 말들은 사람을 데려오거나 배치하는 데 쓰인다. 선거를 일종의 게임으로 본다면, 경쟁의 승리를 위해 자원을 적소에 투입하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들이 가지는 문제가 바로 여기 있다. 선거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한 전망과 노선을 두고 주권자들의 판단을 요구하는 절차여야 한다. 하지만 유수 정당들의 ‘인재영입’, ‘자객공천’, ‘전략공천’은 주권자들을 거수기로 전락시킨다. 한국의 단순다수 소선거구제하에서 특히 그렇다.
‘전략공천’이라는 말을 보자. 보통 이 말은 정당이 의석확보 또는 당내 역학관계에 따른 인적자원의 분산 등 목표를 위해 특정지역에 후보를 지정하여 배치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 유형을 보면 (i) 반드시 확보해야 할 지역에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배치하는 형태, (ii) 반드시 떨어뜨려야 할 상대 정당의 인물을 낙선시키기 위해 인지도가 높은 후보를 배치하는 형태, (iii) 당내 유력 인사를 당선시키기 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역에 후보를 배치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때 지역에 배치되는 후보는 통상 중앙당의 공천기구에서 전략적으로 판단하여 선정된다. 즉, 지역구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당부의 의사결정을 배제한 채 오로지 표의 향배에 따라 출마할 인물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던 유력 정치인은 물론이고 종종 현역 지역구 의원조차도 ‘물갈이’라는 명목으로 공천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당연히 지역구 당원이 후보를 결정할 권리는 박탈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러한 권리의 박탈은 ‘선거 승리’라는 명목하에 면죄된다.
전략공천에 순기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정치신인을 발굴하여 원내에 포진시키거나 소수자들에게 정치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공천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이러한 순기능은 대부분 명목에 그친다. 전략공천이라는 행위 자체가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것인지라 이에 선정된 후보들이 말만 정치신인일 뿐 실제로는 이미 유명인사인 경우가 허다하고, 소수자들의 경우는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 후보로 올리는 것이 더 편리하다.
따라서 전략공천은 순기능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역기능, 즉 지역 당원들의 책임하에 공천이 이루어짐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의 상실이라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더 나가 단지 해당 정당의 당원만이 아니라 지역 유권자들의 민의 자체를 왜곡시킨다는 측면에서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지역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지역의 대표랍시고 자리에 앉히고, 중앙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내리꽂는 것에 불과한 상황에서 지역의 당원이나 유권자는 소외된다.
전략공천이 지역정치를 형해화하고 지역 유권자의 민주적 결단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의석확보에 목을 맨 보수양당은 전략공천이라는 명분으로 이러한 부작용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제22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현역의원을 아예 다른 지역구로 배치하는 공천을 함으로써 후보로 출마한 지역구의 유권자는 물론이려니와 현역 지역구 유권자들의 표심마저 왜곡하는 행태가 다수 벌어졌다.
사례를 보자. 이번 총선에서는 전국적으로 야권이 대승을 거둔 가운데 부산·경남 등 영남권에서는 오히려 국민의힘이 강세를 보였다. 그 가운데 부산 북구갑에 출마한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현직 부산진갑의 지역구 의원이었다. 부산시장 출신에 6선을 노렸던 서병수 의원은 부산지역에서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들 중 유일하게 낙선한 의원이 됐는데, 그가 원 지역구인 부산진갑에서 출마하지 않고 북구갑에서 출마하게 된 건 그저 국민의힘 공천위에서 전략공천을 했기 때문이다.
한편 경남 양산을 지역구에서는 현역 의원인 김두관과 국민의힘 김태호 후보가 대결했는데, 김태호 후보는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구의 현역의원이었다. 국민의힘이 야권의 주요 인물인 김두관에 대적할만한 중량급 선수를 전략공천하여 배치한 것이다. 김태호 후보가 김두관 후보를 이김으로써 이 전략공천은 성공을 거두었다.
영남 이외에도 이처럼 현역 의원이 지역구를 바꿔 전략공천으로 출마한 사례가 있다. 경기 화성정 지역구에서 맞붙은 유경준 후보와 이원욱 후보는 모두 현역 지역구 의원이었다. 이 선거구는 선거구획정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선거구였다. 사실상 무주공산인 지역구가 등장하자 다른 지역구에 적을 두고 있는 현직 의원이 지역구를 변경하여 출마한 것이었다. 국민의힘 유경준 후보는 서울 강남병이 지역구였고, 더불어민주당에서 개혁신당으로 당을 옮겨 출마한 이원욱 후보는 경기 화성을이 지역구였다. 선거 결과 두 사람 모두 낙선했는데, 당선자는 더불어민주당의 전용기 후보였다. 전용기 후보도 현역의원이었지만 비례대표였다.
서울 서대문구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박진 후보는 서울 강남구을의 현역의원이었고, 서울 구로구을에 출마한 같은 당 태영호 후보는 서울 강남구갑의 현역의원이었다. 강남을 뒤로 한 채 다른 지역구에 전략공천되어 출마한 두 후보는 나란히 낙선했다. 박진은 당 중진의원으로서 당의 총선승리를 위해 험지에 출마한다는 명분으로 지역구를 옮기게 된 경우였고, 태영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들이 원래 있었던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이들을 심판할 기회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심판행위다. 그동안 좋은 정치를 한 정치인에게는 다시 한번 기회를 부여하되 그렇지 못한 정치인은 퇴출시키는 절차가 선거다. 그렇다면 해당 지역구에서 유권자에게 의원직을 허락받았던 의원들은 이번 선거에서 자신들이 해왔던 그동안의 의정활동에 대해 바로 그 유권자들에게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전략공천은 결국 해당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루소는 “인민은 단지 선거일에만 자유로울 뿐이며 투표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고 했다. 대의제에 대한 루소의 비판을 차용하자면, 전략공천은 선거일조차도 인민은 노예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다수 소선거구제의 현 상황에서 지역정치라는 이상은 허구일 뿐임을 상징한다. 전국정당에 의한 중앙정치에 매몰되어 있는 한 이처럼 지역정치 자체를 공중분해 해버리는 민주주의의 왜곡은 치유되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행위를 전략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정치행위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전략공천 같은 말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유권자의 결단이 존중받고, 특히 지역에서부터 건강한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중앙정치에 종속되어 있는 현재의 정치구조에 균열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지역정당 운동을 더 강하게 펼쳐 나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