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11일, 노동·정치·사람 청년연대팀입니다. 청년연대팀은 성소수자를 위한 야학 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 이끌 초동주체 1번째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전태일기념관에서 5시간의 짧지 않은 시간동안, 친목을 다지고 향후 계획을 세웠습니다.

 워크숍에 참석한, 대학에서 소수자 운동을 하다 무지개교실 초동주체가 되신조현회원님이 후기를 써주셨습니다. 일독을 권하며, 앞으로도 청년연대팀 활동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연대팀 활동 후기] 대학의 울타리 바깥에서, 드디어 우리의 무지개 학교를 찾았다

-조현(노동·정치·사람 회원)

무지개를 찾고자 들어간 대학에서 무지개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간 다니는 대학에서 소수자 운동을 해왔다. 오늘날 대학에서, 그것도 소수자 운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일까. 사실 난 그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한동안 운동을 관두고 있었다. 그간 대학에서 소수자 운동을 해오며 여러 회의를 느꼈다. 소수자 운동은 그 대상이 되는 집단과 운동의 주체가 되는 집단이 겹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여러 난점을 낳는 경우가 많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 선언 속에서 우린 사적인 우리의 결함이라 여겨졌던 ‘특이한 삶’의 문제를 정치화하는 계기를 마련해 정치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뿔뿔이 흩어진 삶을 살았던 소수자들은 정치적인 언어와 공동체 속에서 모종의 ‘소속감’을 기대할 수 있었다. 분명한 장점이다. 나 또한 그런 소속감을 기대하고 대학에서 소수자 운동을 해왔다.

 하지만 난점도 있었다. 왜냐면 사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번역하는 과정은 참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구조와 얽혀 있는지? 또 이를 사회 구조를 바꾸는 ‘무기’로 가공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가 넘볼 수 있는 곳은 어디까지일지? 왜 그곳을 넘봐야 하는지? 즉 목적과 수단에 관한 고민이 구체화 되지 않으면 방향을 잃기 쉽다는 말이다. 나는 대학에서 우리의 운동이 이에 관한 답을 찾지 못해, 지나치게 먼 곳을 바라보며 막연한 몸부림을 반복하는 상황을 자주 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갈수록 모호한 몸부림을 반복하는 가운데 외부에선 계속 백래시가 쏟아졌다. 그럴 때면 깜짝 놀라 당장 닥친 공격을 대처하기 위해 수세적인 모습만 보였을 뿐이다. 지쳐갔다.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무엇보다 공격하는 외부보다 원망스러운 우리 자신의 방향 잃은 모습. 소속감을 기대하고 갔지만 역으로 ‘우리는 안될 거야’와 같은 염세적인 투정만 부리고 있는 나 자신.

 그 속에서 많이 지쳐 운동을 관뒀다. 후련하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왠지 모를 부채감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소수자로서 정치를 매개로 대학에서 소속감과 대안을 찾고자 했던 나의 기대는 사라진지 오래다. 오히려 그나마 소수자에게 열린 공간이란 대학에서마저 우리 자신의 한계만 발견했다.

우연한 만남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찰나. SNS에서 소수자인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다가 한 지인에게 무지개교실 프로젝트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학교 밖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우리만의 야학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언젠가 밥을 먹다 초대 받은 청년연대팀 세미나에 참석해 이야기를 듣고, 노동정치사람 회원으로 가입했다. 얼마 안 가 청년연대팀이 시작한 프로젝트 초동 주체에 결합해 첫 번째 워크숍에 참석했다.

무지개교실 초동주체들은 전태일기념관에서 11시부터 만나 한 시간 동안 함께 밥을 먹고, 12시부터 다섯 시간 동안 워크숍을 가졌다. 워크숍은 총 3부로 진행됐다. 1부 ‘알아가기’ 시간엔 각자 중고등학교에 다니며 느낀 점, 중고등학교 바깥에서 그곳을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왜 성소수자 청소년에게 교실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함께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등을 돌아가며 발표했다. 2부에선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약속’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세상에 여러 문제가 있는 만큼 약속문을 만들 때면 막막해지곤 하는데, 이를 위해 청년연대팀 성원들이 ‘즉석 연극’을 준비했다. 여러 키워드(돌봄, MT, 교육 상황 등…)를 가정하고, 선한 일을 하는 역할과 못되게 구는 역할을 나눠 참석자들이 즉석 연극을 해보는 것이다. 꽤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러고서 규칙을 세우고, 전지에 크레파스로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한 조항씩을 나눠 적었다.

3부에선 본격적으로 향후 계획을 짜봤다. 이를 위해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위한 교실, 튤립교실 활동 경험에 관해 청년연대팀 성원 중 한 분이 발제를 진행해주셨다. 이를 참고해 조를 나눠 조별로 나름의 계획을 짜봤다. 날씨가 그날따라 화창해서, 우리 조는 산책 겸 전태일기념관 근처 청계천에서 담배 한 대씩을 태우며 계획을 논의했다. 다른 조도 전태일기념관 2층의 라운지에서 계획을 열심히 논의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조별 시간이 끝나고 각 조가 발표한 뒤에는 다같이 계획을 세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3월 한 달간은, 교실 운영과 현황 파악을 위해 관심 있는 주제를 모아 당사자, 전문가, 활동가 인터뷰를 진행해 데이터를 축적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준비된 프로그램을 마무리한 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자리를 마무리했다.

어디에도 없는 그곳에서, 다시 우리의 교실을 찾았다

 금 같은 주말 하루 중 다섯시간을 할애해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진이 빠질 법도 한데,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에 희한하게 피로가 없었다. 오히려 다섯 시간씩이나 일을 했던 모든 경험 중 가장 즐거웠다. 그것은 아마 자리에 모인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난 규칙을 짜던 때가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다른 곳에서도 반복해서 강조되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존중하자는 말로 시작한 규칙은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서로를 돕자는 항목으로 끝났다.

 서로를 돕자는 결의. ‘삽질’하지 말자는 의미기도 했지만, 나는 이 말 덕에 이번 자리를 동질감을 느끼며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지 싶다. 단순히 정체성 등 비슷한 처지에 놓여서 그런 기분을 느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기 정체성도 달랐고, 비당사자도 있었고, 살아온 배경도 달랐던 우리다. 어쩌면 다들 너무 외로웠던 걸까? 초동 주체들은 단순히 성소수자 교육 문제만이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답을 찾고자, 아니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대다수 성원은 각자의 흔들리는 대학, 청년운동 현장 속에서 나름의 대안을 찾고자 꽤 외롭게 분투한 기억이 있었다. 그에 화답하듯 무지개교실은 ‘어떤 것을 위한다’는 대의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내용까지 우리에게 제시해줬다. 늘 각자의 현장에서 외롭게 시달린 우리에게 흔치 않은 기회가 온 만큼 서로의 거리를 확인하잔 말이 아닌 서로를 적극적으로 돕자는 말로 끝낸 게 아닐지 싶다. 이런 소속감을 지금껏 겪어본 적이 드물어서인지, 많은 기대를 품게 됐다.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없는 성소수자를 위한 학교를 찾아 나는 대학을 거쳤지만, 그곳에도 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내가 서 있지만 내 자리가 아닌 이 대학에서 나는 방황했다. 하지만 동지들 덕에 고개를 돌려 말 그대로 학교가 없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성소수자 운동과 삶의 희망을 찾는다. 이곳에서 우리가 모인 것만으로 어디에도 없는 성소수자를 위한 학교는, 아직 오지 않은 성소수자를 위한 학교가 됐다.

 아직 시작만 했을 뿐인데 나를 위한 학교에 온 것처럼 모종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를 위한 교실이 생긴다면 어떨까. 같이 하는 초동 주체 동지들은 물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이보다 훨씬 뜻깊은 경험을 가질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를 위해 가장 배제된 이들이 모인 사각지대에서 우리는 교실을 만들어 가장 따뜻한 연대를, 우리만의 사회를 찾아보려고 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회를 쟁취해야 할 것이란 꿈 또한 되찾으려고 한다.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