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어느 금요일, 퇴근 후 들른 남영역 인근 한 주점은 발 디딜틈 없이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어렵게 찾은 일행의 테이블에 가 앉아 메뉴를 보니 과일이나 마른안주같은 평범한 안주 외에도 생선 회나 소고기 사태찜, 파스타, 짬뽕탕 등 많은 메뉴들이 있었다. 메뉴가 다채로운 것은 그 음식을 만드는 이들이 지난 해 문을 닫은 힐튼 호텔의 셰프, 세종호텔의 일식 전문 셰프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기 때문일테다.
다양한 메뉴와 셰프들의 경력과 마찬가지로 주점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내가 함께한 곳은 노동·정치·사람 회원들의 테이블이었고, 그 자리엔 익숙한 얼굴과 함께 새로 함께하게 된 동지들이 있었다. 친구의 소개를 받아 그 날, 주점까지 오게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조금 일찍 일어난 동지들이 있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함께 진행할 활동이 기대되는 자리였다.
곧 메뉴를 골라 서버에게 주문을 하는데에도 인파에 목소리가 묻혀 쉽지 않았다. 한편 서버도 셰프들과 마찬가지로 호텔에서 수년간 일해온 베테랑이었다. 복잡한 상황 속에 어렵게 주문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많은 이들이 후원주점을 찾은 것이 와닿았다. 내부 테이블 외에 외부에도 테이블을 놓았음에도 자리가 없어 둘러보기만하고 주점을 나서는 사람들. 가게 앞은 이미 대기줄이 있었다.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날씨였음에도 주변 사람들의 기운으로 주점이 덥혀졌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사용자로부터 다양한 노조 탄압, 노조 파괴를 견뎌내며 투쟁을 해오다 지난 21년 말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민주노조 활동 약 10여 년만의 일이었다. 호텔측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상 이유라고 했지만, 그것이 주된 이유는 아닐테다. 21년 겨울은 앞으로 외식 숙박 업종 외에도 많은 산업의 재기를 기대하던 시점이었다. 많은 노동자를 해고한 뒤 세종호텔엔 수많은 용역, 외주 노동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물보듯 뻔한 일이었다.
세종호텔의 유일한 주주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이다. 세종대학교 등을 운영하는 사학법인이다. 대양학원은 한국의 300여개에 다다르는 수많은 사립대 중에도 적립금이 많은 것으로는 항상 빠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학들은 ‘사학재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리와 부패가 팽배하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설립자의 2세, 3세이기도 하다. 세종호텔의 주명건 회장이 바로 대양학원 설립자의 장남이다. 회장은 대양학원 이사장을 역임한 경험이 있다. 교육부의 종합감사로 십수억이 넘는 횡령 및 부당이득이 들어나 파면당하였지만 그 이후에도 법인에 대한 영향력은 작아지지 않아 학교 운영 등에 입김이 닿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며 파면이 사면되자 주명건은 학교법인이 아닌 세종호텔로 돌아왔다. 그 때가 세종호텔의 민주노조가 더욱 힘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으로 고용 유지, 부당한 전환배치와 함께 어용노조의 설립 및 노노갈등이 시작되었다. 그후로 계속해서 노동탄압, 노조파괴에 맞서 싸우던 이들을 지난 겨울 정리해고한 것이다. 단순한 경영난만으로 이전까지 이렇게 집요하게 괴롭혀오던 노조원들을 내친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꽤나 오래 기다린 후 음식이 나왔다. 사실, 음식이 서빙된 것이 아닌 경매하듯이 손을 들어 받아온 것에 가깝다. 주문을 하는 속도를 주방이 따라가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꽤나 오래 기다린 보람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만두는 근 몇 년간 먹은 것 중 가장 바삭하고 소가 맛있었다. 그 후로도 짬뽕탕, 파스타 등 여러 음식들도 흠잡을 곳 없이 만족스러웠다. 함께 자리한 동지들도 모두 만족했고, 호텔 셰프가 주점에서 회를 뜨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시끌벅적한 주위 분위기에 녹아들다보니 음식은 금세 동이 났고, 밖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다른 이들을 위해 곧 일어났다.
다음에 이 셰프들의 음식을 맛보는 곳은 투쟁 후원주점이 아닌 세종호텔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