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희 | 한의사, 노동·정치·사람 회원

 

고등학교 시절 나는 사진을 찍을 때 늘 웃옷의 앞섶을 잡아당겨서 가슴의 윤곽이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헐렁해서 애당초 윤곽이 드러나지도 않을 티셔츠만 입었는데도 그랬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등을 구부정하게 숙이고 어깨를 앞으로 구부려서 웃옷이 허공에 붕 뜬 상태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가 사진을 보고 내 몸매를 품평할까 두려워서였다. 나는 남초(男超)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매 순간 시선의 감옥에 갇혀 있다고 느꼈다. 남자 선배들은 투표로 가장 몸매가 좋은 여자 신입생을 뽑아서 ‘매만’이라고 불렀다. ‘몸매만 괜찮다’라는 뜻이었다. 그 신입생이 나중에 몸매가 변하면 ‘매마저’라고 별명이 바뀌게 된다고들 했다. 최근 폭로된 서울교대 국어교육과의 여학생 외모 등급 매기기 및 집단 성희롱 사건을 보면서, 사진 찍을 때 어깨를 펴지도 못하던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앞섶을 잡아당긴 추억의 사진을 가진 여자들을 종종 마주친 기억도.

가슴을 조이는 브래지어는 중학교 때부터 착용했다. 어른들이 하고 다녀야 한다고 가르쳤고, 학교에서는 검사도 했다. 부끄럽고 슬프게도 나는 이 규율을 내면화해서 하루 종일 브래지어를 하고 다녔다. 노브라로 다니면 정숙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잘 때도 했다. 그 때문인지 흉곽과 유방의 발달이 좋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그 시절의 브래지어를 전부 불태워버리고 싶다. 신체가 성장 중인 소녀들에게 브래지어는 특히 해로우며, 소녀들뿐 아니라 성인 여성들도 브래지어를 하고 있으면 흉곽의 움직임이 제한되어 호흡이 불편해지고 눌린 부분의 혈액과 림프액 순환이 나빠지며 소화불량이 생긴다. 브래지어는 유방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조사 결과 한국의 여성들 대부분이 브래지어를 늘 착용하며, 절반 이상은 24시간 내내 한다고 한다.

그림 : 김나희

브래지어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유방이 꽤 큰 경우, 압박하지 않고 단순히 받쳐주는 모양의 브래지어라면 등 쪽으로 유방의 무게를 분산시키고 가슴 쪽의 부하를 줄여주어 자세와 움직임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 또 빠르게 뛰거나 도약하는 등의 운동을 할 때,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탑 모양의 브래지어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눌리지 않으며 바람이 통하는 상태가 바람직하다. 어떤 경우라도 조이는 압력을 가하는 속옷은 해롭다.

나는 임신, 출산, 육아 과정에서 모유수유상담가 자격증을 따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이론과 실제가 이렇게나 농밀하게 밀착되고 결합되는 공부를 하긴 처음이었다. 내 유방에 대해서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십 대 초반부터 브래지어로 조여왔던 유방을 풀어놓고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아기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피부와 맞닿은 순간의 기쁨! 내 유방이 이렇게나 생산적일 줄은 몰랐다. 우리 아기는 생후 6개월 동안 우유를 한 방울도 먹지 않고 오직 내 젖만 먹고 컸다. 하위 10%의 체중으로 작게 태어났는데 생후 6개월에는 상위 5%의 체중으로 아주 오동통해졌다. 그리고 만 세 돌 반까지 수유를 지속했다. 수유기에는 유방조직이 성장하기 때문에(그리고 모유수유 및 비교적 좋은 생활습관 덕에 체중이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기 때문에) 나의 몸도 난생 처음 이른바 ‘S라인’의 무슨 피규어 같은 상태가 되었다. 오호라, 글래머들은 이런 기분으로 사는구나. 그 기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껴보았다. 아쉽냐고? 그렇지는 않다. 단기간 경험해본 것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정말 무거웠기 때문이다. 등과 어깨에 부담이 될 정도였다. 소중한 경험을 남기고 원래의 가벼운 가슴으로 돌아와서 다행이고, 나는 지금의 내 가슴이 마음에 든다. 말랑하고 할랑한 가슴은 유방암 자가검진하기에도 아주 좋다. 정숙함이란 코르셋에 갇혀서 24시간 내내 맞지도 않는 브래지어를 하고, 사진 찍을 때는 앞섶을 잡아당기던 사람이, 유방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과정도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