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 노동·정치·사람 웹진 편집장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사퇴했다. 청와대에 재직하면서 흑석동 재개발 예정지역의 상가를 본인의 자금과 은행 대출 등을 합쳐 25억 7천만 원에 매입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불법적인 행위가 이루어졌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억제를 공언한 정권의 핵심부에 있는 공직자가 정권의 정책 방향과 다르게 개인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이 과연 옳으냐는 비판과 25억은커녕 몇억조차도 갖지 못한 대다수 서민들에게 그런 행위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느냐는 질타에 결국 사퇴하였다.
이를 두고 김의겸을 옹호하거나 이해하는 목소리도 상당히 들린다. 대출이나 매입 과정에서 어떤 불법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언론인과 교사로 재직한 맞벌이 부부가 그 나이에 그 정도의 부동산은 살 수 있는 것 아니냐, 투기라고 하지만 투기와 투자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누구나 부동산을 사면서 일정한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부동산 재테크를 했다고 문제 삼는다면 정권 핵심부나 고위 관료는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도덕군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냐 등등. 거기다가 현 정권보다 훨씬 더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는 않을 보수 야당이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는 반론도 있다.
사실 이런 반박이 전혀 일리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각자도생만이 합리적인 해결책인 사회에서, 정권의 핵심부나 고위 관료라고 해서 재테크든 투자든 개인의 차원에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 그 자체를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여야를 막론하고 아니 정계만이 아니라 관계나 학계 등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들이 대부분 다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도덕적인 기준만을 고집할 경우, 그 실제의 결과는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이나 자신도 하면서 남은 비판하는 ‘내로남불’이 되기 십상이다. 모두가 도덕군자가 아님에도 도덕이나 윤리적 원칙만을 내세울 때 그 결과가 오히려 위선과 내로남불로 귀결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의 숙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 논의가 단지 누가 나쁜 놈인지 가려내거나 누가 물러나야 한다로 끝나버려서는 안 된다. 그건 오히려 위선과 내로남불을 더 강화시킬 수 있다. ‘재수 없이’ 걸리면 물러나고 아니면 지금처럼 말과 행동을 따로 해서라도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게 맞다는 식의 행위 양식이 정착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히려 김의겸의 사퇴가 아쉽다. 대변인직을 포기하더라도 내가 앞으로 살길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인 측면도 있으므로(이게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가령 김의겸이 다음과 같이 대응하는 건 불가능했을까. 나도 평범한 사람이고 은퇴할 때도 다가오다 보니 부동산에 투자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나의 노후대책 수준을 넘어선 시세차익이나 임대소득을 올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말을 무조건 믿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와 같은 노후대책형 부동산 투자자가 지나친 시세차익이나 임대소득을 얻을 수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 만약 중간에 팔아서 시세차익을 얻을 경우, 대출금 상환과 그간의 이자 비용 등을 제외한 시세차익 대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겠다. 임대소득 역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차인의 계약갱신을 보장하고 재계약 시 임대료 상승도 최대한 억제해서 건물주로서의 투자금에 대한 기본적인 자본이득 이외의 소득을 올리지 못하게끔 하겠다. 대변인직을 걸고 이런 정책의 제도화를 추진하고, 그것이 내외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다면 그때 물러나겠다. 이렇게 정면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몽상일까.
사실 나 역시 이런 대응이 몽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정치 특히 제도정치는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대한 논의가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놈 나쁜 놈, 물러나라”가 아니라(현재 한국 엘리트층의 구성상 그 뒤의 사람도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비슷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나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정책적 논의는 실종되고 특정 개인의 거취만 결정되면 근본 문제는 또 덮인다.
이런 모습은 진보정당이라고 다를 바 없다. 창원 성산의 보궐선거에서,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은 민주당과 후보단일화를 했다. 소선거구제라는 현실에서 후보단일화 그 자체를 무조건 백안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후보단일화를 한 이후이다. 단일화 경선에서 정의당의 이름으로 민주당을 이겼다면, 그다음에는 정의당 내지 진보정당다운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창원성산에서 정의당의 선거운동은 민주당 즉 집권여당의 선거운동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힘 있는 국회의원이 되어 정부여당과 협력하여 창원경제를 살리겠다, 적폐세력인 자유한국당에게 의석을 내줄 수 없다, 이런 류의 주장만 내세우는 선거운동이 민주당 후보의 선거운동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적어도 이번 보궐선거만 본다면 보다 진보정당다운 선거운동은 민중당이 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반노동 정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등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중당의 손을 흔쾌히 들어주기도 마뜩잖다. 진보정치의 독자성보다 민주당과의 협력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과거에는 오히려 현 민중당 계열이 더 심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정의당에 비해 소수파로서 정의당의 표몰이 행태에 당하고 있지만, 과거 본인들이 다수파일 때는 진보신당 등 당시의 소수파에게 역시 비슷한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였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당이든 민중당이든 둘 다 비슷하다. 본인들이 다수파일 때는 손쉽게 패권적인 모습을 보이고 진보정치의 독자성보다 민주당과 협력해서 의석 하나 차지하는 것을 우선시하면서, 자신들이 당할 때는 이를 격렬히 비판한다, 어차피 현실정치적 계산이 우선이면서 다른 쪽을 비판할 때는 일종의 도덕이나 윤리적 원칙을 내세운다.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위선과 내로남불이다.
이런 독설은 정의당이나 민중당 둘 다 나쁜 놈이고 나 혼자만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어쩌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게 어떤 개개인이 나쁜 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나 당장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입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특정 정파를 비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또한 그런 행태를 제어할 수 있도록 내부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가 이야기되어야 한다.
또다시 몽상을 해본다. 가령 평소에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다가 선거 때는 공동으로 대응하는 선거연합정당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 정당법상의 제약이 있다지만 그건 대외적인 것일 뿐 내부 제도는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그런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선거 때 지역구나 비례후보 선출이 문제가 되겠지만 이 역시 상호합의만 한다면 얼마든지 선출방식을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 합의가 되겠냐고? 당장의 유불리만 따지고 상대를 힘으로 제압할 생각만 한다면 당연히 합의할 수 없고 결론은 각자도생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예전의 이념이 무엇이었든) 다수파의 우경화와 소수파의 고립은 거의 필연적일 것이다.
각자도생이 아닌 사회를 꿈꾼다는 진보정당 스스로가 각자도생으로 양쪽 모두 애초의 빛을 잃어가게 된다면 슬픈 일이다. 진보정당조차 우리 사회를 바꾸기는커녕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버렸다는 이야기니까. 그 일그러진 모습을 나 역시 함께 가지면서도, 그래도 몽상이라도 해보고 싶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에서 너를 들여다본다’ 니체 <선악의 저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