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위원장

청소년들에게 노동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아도 그 교육이 어떤 교육을 뜻하는지, 무엇을 하자는 건지는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전국에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는 네트워크 성원들끼리도 어쩌면 동상이몽일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법’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최소한의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청소년 노동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해 못 할 말도 아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노동’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교육에 붙인 이름만 갖고는 무슨 생각인지를 헤아리기 어려우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노동‘인권’교육에 대해서 하는 평가와 비판을 들으면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노동‘인권’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다 같은 것 같진 않다.

우선 오늘은 노동‘법’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부터 생각해보자. 수많은 노동 관련 법률 중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걸까? 전국적으로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교육에서 노동법은 어떤 식으로 다루어지고, 법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이하 전남센터)에서 진행하는 수업에서도 특성화고 2학년 수업에서 근로기준법을, 또 특성화고 3학년 수업에선 헌법 33조와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재보상보험법 등 노동 관련 법률을 다룬다. 그러나 그 수업들은 절대로 노동‘법’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다. 하지만 학기마다 전체 강사가 돌아가면서 시연을 하고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수업 준비 과정에서 전남센터 강사들도 때로는 교육 목표를 잘못 이해하고 노동‘법’ 수업을 시연하다가 문제제기를 받곤 했다. 그런 강사들은 대개 청소년들이 알바노동을 할 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근로기준법의 조항을 깨알같이 설명하느라 수업 시간이 모자라다. 근로계약서의 세부 조항과 근로기준법만 연결해서 설명하더라도 한 시간이 훌쩍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수업은 그러지 않아도 피곤한 학생들에게 자장가가 되기 십상이다. 강사 입장에서는 알바노동을 하는 청소년들이 많으니 학생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내용이라고 여기고 열성을 다해 강의해봤자 학생들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다. 나름 짝꿍을 정해서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는 역할극도 해보고 때로는 강사가 악덕 사업주로 변신해서 근로계약을 맺는 역할극을 해봐도 학생들은 역할극이 끝나고 강사가 근로기준법 설명을 시작하자마자 책상에 엎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설령 자지 않고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도 다음 해 수업 때 만나서 물어보면 “주휴수당? 그거 처음 듣는 말인데요. 먹는 거예요?” 하는 표정을 짓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노동‘법’ 수업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필요한 내용이 학생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는 것만이 단지 문제라면 어떻게 하면 그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프로그램을 다시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한 거니까.

가령 몇 가지 사례로 생각해보자. 모 지역에서 특성화고 학생들 몇몇이 그 학교 지도 교사와 함께 노동인권 캠페인을 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한 학생이 든 피켓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청소년들이 7시간 넘게 노동을 하는 건 불법이예요’ 그러나 알바노동을 하는 청소년 중엔 하루 7시간 넘게 일하는 청소년도 많다. 방학에도 그렇지만 특히 주말만 알바를 하는 경우는 더 그렇다. 그러니 청소년노동인권 캠페인을 하러 나온 학생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불법으로 만들어버린 거다. 주말밖에 일할 시간은 없고, 돈은 벌어야겠는 학생들은 어쩌라고? 이번엔 주말에만 하루 8시간씩 일하는 청소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학생은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이 넘으니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 이 수업을 듣고 학생이 상담을 하러 왔을 때 상담사들이 매우 난처해한다. 현실에선 고용노동부가 청소년의 법정노동시간대로 계산을 해서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상담사들의 이런 호소를 들은 어떤 강사는 자기 수업에서 주말만 일하는 경우엔 15시간 넘게 일해도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건 과연 타당한가? 또 한 강사는 초보 시절, 수업 나눔에서 이런 고백을 한 적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권리 인식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열나게 가산수당에 대해 설명을 했단다. 그랬더니 “그런 것도 받을 수 있어요?” 하면서 학생들의 반응이 꽤 뜨거웠단다. 그런데 가산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까지 설명하고 보니 학생들은 대부분 5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실망만 더 키웠더라고.

이번엔 전남센터의 특성화고 3학년 수업을 예로 들어 한 번 생각해보자. ‘건강하게 일할 권리’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수업의 중반을 넘으면 학생들에게 스티커 한 장에 노동재해의 사례를 하나씩 담은 스티커 모음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모둠별로 한 장씩 나눠준 전지에 원을 그리고 모둠원들과 토론하여 노동재해로 인정될 사례 스티커는 원 안에 붙이고, 인정되지 않을 사례는 원 밖에 붙이게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목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강사는 열심히, 일종의 OX 퀴즈를 진행한다. 알다시피 OX 퀴즈는 O냐 X냐의 정답이 중요한 거다. 학생들이 재미있게 활동을 마치면, 강사는 신나게 사례 하나하나를 설명하기 바쁘다. 이건 왜 노동재해이고, 이건 왜 노동재해가 아닌지를 열심히 설명하는 거다. 그러나 과연 현행법이나 현재까지의 판례상 어떤 사례가 산재 보상을 받았고, 어떤 사례가 산재 보상을 받지 못했는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물론 노동재해는 사업주에게 ‘무과실 책임’이 있고, 노동자의 건강권은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부주의나 실수로 재해를 당했더라도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들었다면 노동재해임을 인식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을 그런 식으로 마치고 나면 학생들은 노동재해 판정이 매우 쉬운 줄 안다. 그뿐인가? 스티커에 있는 사례 역시 우리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와중에도 해마다 결과가 달라진다. 작년 수업까진 회사 통근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난 사례만 노동재해로 인정이 된다고 했는데, 올해부턴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통상적인 출퇴근의 경로로 이동하였을 경우엔 노동재해로 인정이 된다.

위 사례에서 본 것처럼 법 조항의 내용보다는 법의 취지가 훨씬 중요할 때가 있고, 법은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법 자체보다 법의 역사성, 다시 말해 법은 힘의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고 또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그래서 전남센터에서 근로기준법을 다루는 수업을 할 때 그 수업의 교육 목표는 청소년 노동과 관련된 근로기준법을 통하여 학생들의 ‘권리의식을 일깨울 수 있다’이다. ‘주휴수당 같은 법률 용어를 외우거나 그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도, ‘자기 임금계산을 스스로 정확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도 아니고 말이다. 한 시간 동안이나 근로기준법을 다루는 수업에 참여했어도 학생들은 자기가 일하는 사업장에 몇 명이 일하고 있는지, 자기가 정확히 언제 몇 시간 일했는지 정도만 알아도 상관없다. 오히려 우리 강사들이 이 수업의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를 알 때는 수업 시간 내에 혹은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알바를 하는 학생들의 상담이 몰려들 때이기도 하지만, 이 수업 목표의 달성으로 뭉클해지는 건 정작 시간이 한참 지나서다. 수업을 진행한 지 1년이 지나고 다음 해에 3학년이 된 학생들을 만나러 갔는데 학생들이 우리가 작년 수업 중에 나누어준 우리 센터 상담소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흔들어댈 때. 누군가는 1년째 그 명함을 간직만 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언젠가 그 명함을 꺼내 상담소로 전화를 하고, 또 그중 누군가는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우리 상담소의 지원을 받아 스스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하거나 사업주를 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법을 다루는 수업은 법에 갇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긴장해야만 한다. 문제는 노동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법으로 무엇을 일깨우고 무엇을 함께 찾아갈 것인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