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 노무사, 노동·정치·사람 회원
나는 공인노무사이다. 노동 관련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며 그 밖의 다른 일은 잘할 줄 모른다. 노동관계, 임금, 각종 인사처분 및 해고, 산업재해, 기타 이를 둘러싼 여러 민·형사적 쟁점들이 내가 다루는 업역의 전부다. 노동자들은 고민이 있거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나를 찾는다. 오랜 기간 연락이 되지 않던 지인이 내게 연락할 때면 무슨 사연이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는 오래전 지인이 연락을 해오면 먼저 물어본다. “무슨 일 있구나?” 그럼 그들은 멋쩍은 듯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에 섭섭함을 느끼진 않는다. 본래 나의 일이 그런 것이고 이러한 쓰임이 있다는 것에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노무사는 물음에 답해야 하는 직업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상담하는 이유가 스스로 답을 찾기 어려워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길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많은 상황을 접해보고 경험에 의한 데이터를 쌓아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노무사는 사람과 사건을 많이 접해야 하는 직업이다.
내가 어떠한 물음에 대답하는 경로와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의뢰인의 목적이다. 그것이 금전이든 복직이든 또는 보상적 성격을 가지는 무엇이든 나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의뢰인이 도달하고자 하는 곳으로 안내한다. 일종의 가이드 역할과 같은 것이다. 수년간 함께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이제는 제법 가보았던 길도 다시 가보게 되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의 마음 상태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농담으로 “관상을 본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직감적으로 이 사람은 어디까지 가겠구나, 여기서 멈추면 이 사람은 만족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든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법적으로 불리한 사실을 한두 개 가지고 나타난다. 통상 노동자가 노동관계의 법률적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러한 행위를 사용자와의 신뢰를 깨는 일이라 생각하는 측면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와 같은 가이드가 필요한 이유도 불리한 법적 사실 구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회로를 찾고 때로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비용이 많이 들고 노동자의 심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의뢰인에게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나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쉽게 가도록 돕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용자가 노동관계 컨설팅을 받듯이 노동자도 스스로 유리한 사실을 만들어내고 이를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나는 노동자의 인내와 결단력 있는 행동을 요구하며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위로한다.
나는 이러한 활동을 수년간 해왔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적으로 불리한 사실관계의 구성이 완료된 사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달라진 반응 역시 볼 수 있었다. 한 의뢰인의 경우 내가 사건을 수행하기 이전에 이미 원하는 것을 가져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더니 꾸준하게 내가 쓴 글을 구독했고 이를 직장에서 실천했다고 한다. 법적 사실관계의 구성이 이미 의뢰인에게 많이 기울어진 사건은 대리인에게도 반가운 사건이다. 마치 잘 닦아진 아스팔트를 가는 것과 같다. 이런 사건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되겠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냉소적인 반응도 만만치 않다. 아마도 이런 반응이리라 생각한다. “미리 준비하라고? 대리인이라고? 실제 일이란 것을 해보기나 했나? 그렇게 사회생활하면 다 잘려요!” 이러한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나 또한 공감하고 이해한다. 왜 모르겠나. 대한민국에 살면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서 다 가르쳐 준다. 군대에 가니 병영문화가 그랬고, 취업을 해보니 깡패 같은 직장상사가 가르쳐 주었고, 아르바이트를 해보니 “아~ 이건 노예야”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곳에서 생활인으로 살아본 사람이면 다 안다.
나는 냉소적인 의뢰인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린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길을 가보고 싶어지고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혹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은 아닌가요? 물론 침묵하고 이탈하는 것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는 날이 혹시 있을지 모르니 알고 계시는 게 손해는 아닐 거예요” 실제로 내가 마주하는 의뢰인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일이 자신의 마지막 경력경로인 경우도 있고, 가장의 역할이나 생명의 위험 등도 고민해야 하지만, 의뢰인은 이를 덮어두고서는 자신의 인격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진지한 생각에서 나름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게 가능은 합니까?”라는 물음에는 “그래도 알고 계시면 그렇게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