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환 | 금속노조 미조직전략조직실장

 

잘 짜인 각본, 복수노조 건설
창원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라는 사업장이 있습니다. 2015년 6월까지는1) 비행기 엔진과 자주포 등을 생산하는 ‘삼성테크윈’이었는데, 삼성그룹이 구성원들의 의사를 단 한 번도 묻지 않은 채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삼성탈레스 등과 함께 2014년 11월 일방적인 매각을 발표했습니다. 매각이 발표된 이후 노동자들은 금속노조에 가입2)하고, ‘일방매각철회’를 요구하는 투쟁을 이어왔습니다(http://blog.daum.net/mshskylove/15766814 참조). 하지만, 회사 측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의심되는 기업별 노동조합인 삼성테크윈노동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른바 복수노조가 된 것이지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사안이었습니다. 삼성과 포항제철(현재 포스코) 등이 유령노조 또는 소수 인원의 기업노조를 통해서 사업장 내 노동조합 건설을 막아왔기 때문이었죠.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사업장 내 복수노조 허용’은 2011년 7월 1일부터 허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만들어진 법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에게 (민주)노동조합으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뺏기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었습니다(http://blog.daum.net/mshskylove/15766627 참조).
그렇게 자본을 위해 만들어진 ‘복수노조 허용 및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를 당시 삼성테크윈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폐해는 많은 노동자들을 절망으로 이끌었습니다(http://blog.daum.net/mshskylove/15766805 참조).

2년의 투쟁 그리고 다수노조 확보, 그러나
‘일방 매각’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하는 동안 당시 지회장을 비롯한 6명이 해고되고 수십 명이 정직 등의 징계를 받는 등 탄압이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앞에 선 간부들과 함께 흔들리지 않았고, ‘교섭대표노조’를 만들기 위해 기업노조 조합원도 만나고 아직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금속노조에 가입을 권유하며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확보하고 교섭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교섭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조합의 요구가 ‘과하다’며 피하고, 노동조합에서 ‘핵심요구안’을 추려서 제출하면 ‘검토해보겠다’며 시간을 끌어왔습니다. 교섭이 1년을 넘겼지만, 결국 임금인상도 단체협약 갱신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교섭대표노동조합이 교섭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서도 교섭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다시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2018년 말에 다시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았습니다. 분할된 사업장 중 핵심 사업장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지상방산에는 여전히 금속노조 조합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사가 ‘창구단일화’를 통해서 ‘개별교섭’을 하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각 사업장 기업노조와 밀려있던 임금 협상 및 단체협약 갱신’을 합니다. 물론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이러한 합의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노동조합 활동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디테일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도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긴 했지만, 조합원들과의 각종 회의와 토론 교육 등을 통해 대응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허를 찔렸습니다. 회사가 “단체협약은 갱신일로부터 2년으로 한다”는 합의서를 기업노조로부터 받아낸 것입니다. 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문구로 보이지만, 노동조합의 힘을 빼려는 대표적인 조항이었습니다.
금속노조는 단체협약 갱신일은 ‘4월 1일’로 정하고, 그 이후에 체결이 되더라도 소급해서 적용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32조는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2년을 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고, 회사 측의 방해로 교섭이 늦어지더라도 유효기간을 소급하는 합의를 통해 2년 이내에 교섭을 하도록 되어 있어서 회사에서 ‘교섭을 해태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사가 기업노조와 합의한 내용대로라면, 금속노조와 교섭해 온 1년 여의 시간을 공중으로 날려 버리고 새롭게 2년의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교섭할 때마다 체결일을 기준으로 2년의 유효기간을 갖게 하자는 말입니다. 그러면 현행 노조법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사실상 최대 3년까지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니, 지금처럼 금속노조와의 1년간의 교섭에서 시간을 끌고 다시 기업노조와 교섭 후 체결을 한다면 3년 6개월에서 4년에 한 번씩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되는 것입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조항 하나로 회사는 엄청난 이익을 챙긴 것이지요.

결자해지(結者解之), 조직적인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이렇게 현행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조직적인 부당노동행위를 해 왔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습니다. 이미 2015년 초부터 노동조합에서 수없이 많은 의혹을 제기하고 수많은 고소·고발을 해 왔지만, 이에 대해 침묵하던 공안기관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2017년 연말을 중심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습니다. 결국 당시 노사관계를 담당했던 임원 및 직원 중 일부가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되었고, 그 수사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금속노조를 우리 사원으로 보지 말라. 노조탈퇴는 이번 연말3)까지 해야 한다”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문구가 나오고, ‘금속노조를 위축시키고 기업노조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이 버젓이 문서로 작성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장관리자 우군화 방안’을 작성하고 실행해서 ‘반장 노조탈퇴 진행 현황’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2015년 9월 경 2사업장(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금속노조 소속 37명이 노조에서 전원 탈퇴했고, 2015년 12월경에는 2사업장 금속노조 소속 반장 47명 중 25명이 노조에서 탈퇴했습니다. 탈퇴하지 않은 조합원들은 반장 직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삼성그룹 노무전략문건’이 한화그룹에서 실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이게 정말 정상적인 기업의 노사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요?

 

2019년 1월 15일 경향신문에 실린 한화테크원 간부들의 노조활동 방해 관련 기사 <“금속노조는 사원 아냐” 탈퇴 압박 … 한화테크원 간부들 노조활동 방해> 갈무리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2019년 2월 11일부터 공식적으로 경영에 복귀한다고 합니다(http://blog.daum.net/mshskylove/15766828 참조). 한화그룹은 특성상 ‘의리(?)를 중시’하고 ‘그룹의 재가 없는 행동은 불가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내려온 한화 측 인사들도 ‘그룹 기획실’ 출신이 많았습니다. 결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및 자회사에서 벌어진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그룹에서 모를 리 없다는 말입니다. 한화그룹은 ‘디테일을 통한 이익’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대화상대로 보는 것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순리가 아닐지.


1) 2015년 6월 29일 성남상공회의소에서 삼성테크윈 주주이자 노동자 수백여 명이 ‘일방매각철회’를 요구하며 주주총회 투쟁을 했지만, 8시간의 투쟁 끝에 140여 명이 연행되고 매각은 주주총회에서 통과됐습니다.

2) 아직도 지회 명칭은 ‘삼성테크윈지회’입니다. 회사 이름은 삼성테크윈에서 한화테크윈으로 다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바뀌고, 4개사로 분할(에어로스페이스를 모기업으로 해서 한화테크윈, 한화지상방산- 2019년 1월 1일부터 장갑차 등을 생산하는 한화디펜스와 합병, 한화파워시스템, 한화정밀기계 등 4개 기업으로 분할되었습니다)되었지만, 지회 명칭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얘기합니다. “2014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투쟁하고 있다. 회사 이름에 맞춰서 지회 명칭도 바꾸고 싶지만, 작은 것이라도 매듭이 지어져야 하는데 단 하나도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회 명칭도 변경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3) 2015년 연말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