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위원장
전남의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은 현장실습에 나가서 뇌사 상태가 되고 목숨을 잃은 두 명의 학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사건 이후, 인권운동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전남에서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두 사람이 만났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 소속 교사 한 명과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해왔던 활동가 한 명. 철도 해고자 3명을 포함한 지역 활동가 몇 명을 모아 단 여섯 사람이 ‘청소년노동인권교육 강사단’을 꾸리고 1기로 모여 공통교안을 만들고 2기 강사단학교를 열기로 했다.
그즈음 지역에서 그런 일이 도모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인터넷의 강사단 카페에 제 발로 찾아가 쓰일 곳이 있으면 써달라는 글을 남겼다. 곧바로 연락이 왔고, 나는 2기 강사단학교의 강사로 섭외된 것을 시작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현재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이하 전남센터)에서 어느 기수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은 나 혼자인 셈이다.
기수로는 2기지만 첫 번째 강사단학교를 여니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진보정당, 노동조합 등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꿘출신’들이 많았다. 2014년 2학기, 처음으로 학교별 신청을 받아 16개 특성화고에서 시범수업을 해보니 고민이 많아졌다.
우선, 이른바 ‘꿘출신’ 활동가들은 다들 너무 바쁘다. 차분하게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다들 저마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단 두 시간의 교육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다. 기본적으로 ‘가르치겠다는’ 입장으로 학생들을 쉽게 대상화하고 있는데다 심지어 PPT 슬라이드가 시뻘거면 급진적인 줄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흔하다. 한 마디로 교육철학도 없고, 학생들의 삶에서 출발하여 학생들과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단 얘기다. 그래서 같이 차분히 공부하고 같이 토론하자고 일정을 잡으면 대개 다들 바쁘셔서 약속을 못 지킨다. 심지어 대부분 운동권에서 한 말발 하던 분들이니 마이크깨나 잡아본 경험이면 교육이 되는 줄 아는 자신감조차 넘쳐 보인다. 다 그런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른바 운동권이라 불리는 활동가들이 얼마나 공부를 안 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2015년 강사단학교부터는 예비강사를 모집할 때부터 작전을 바꿨다. 우선 공개모집을 하지 않았고, 이런저런 활동으로 바빠 보이는 분들은 현재 하고 있는 활동에 전념하시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리고 운동 같은 거 몰라도 좋으니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같이 공부하고 같이 고민할 의지가 있는 분들을 알음알음 조직했다. 강사단학교를 열고 보니 ‘참교육 학부모회’ 정도에서 활동하거나 딱히 활동이랄 것은 엄두도 못 냈던 경력단절 주부들이 많았다. 강사단학교 첫 시간에 “민주노총, 하면 떠오르는 것은?” 하고 물으니 심지어 “무서워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조차 있었다.
‘전남청소년노동인권 강사단(이하 강사단)’은 강사단 밖에서는 노동인권교육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안에서는 무엇보다 강사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시급했다. 공통교안의 초안을 만들어 교육위와 운영위에서 검토하여 확정하고, 강사들이 그 교안을 바탕으로 함께 공부해서 수업을 준비하고 전체 강사들이 돌아가면서 시연을 하고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수업준비교육이 제일 먼저 시작되었다. 매해 연초에 여는 강사단학교는 2015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열렸는데, 학기가 시작될 무렵 1년에 두 번은 어김없이 수업준비교육을 진행했다. 수업이 없는 방학을 이용한 35시간의 겨울공부와 15시간 정도의 여름공부, 전남 청소년노동인권 운동의 현안이나 센터 운영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공부도 하는 1박 2일의 여름캠프 등의 강사역량강화 교육도 이제 당연한 듯이 정착되었다. 2018년부터는 센터가 보다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을 담보하기 위해 팀별 활동체계로 조직체계를 전환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공식적인 강사역량강화교육 이외에도 매월 팀별 학습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체 강사들이 공통교안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각 수업의 목표를 같이 세우고 수업을 진행한 뒤 같이 평가하고 토론하면서 교안을 갱신하기 위해서다. 강사단에 들어온 첫해에는 강사들이 대개 공통교안을 외우다시피 해서 수업하기도 바쁘고, 강사들의 공부와 경험에 따라 공통교안의 수업 목표를 함께 정하고 토론하는 일에 대해 느끼는 어려움이 다 달랐다. 따라서 함께 교안을 갱신하는 일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공부이자, 운동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학생들과 함께 나눌 이야기들에 대한 관점을 최소한으로나마 합의하는 일이었다.
공부하는 만큼 토론할 게 생기고, 토론하는 만큼 합의할 수 있는 게 커지고, 합의된 만큼 교안은 갱신되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노동이란 무엇인가부터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에 이르는 고민을 나누고, 또 청소년들의 노동 현실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일은 무엇인지 토론했다. 나는 이 과정이 수업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우리에게도 구체적인 학습과 실천 속에서 운동의 방향을 토론하고 운동의 지평을 한 뼘씩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 활동가들이 전남센터의 교안을 달라는 경우가 꽤 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운동하면서 생산한 것들을 ‘공공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안을 공유하는 것 자체는 전혀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남센터의 교안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생산되고 6년째 끊임없이 갱신되는 것이어서 달랑 수업지도안 몇 장 혹은 PPT 슬라이드 몇 장으로 이 교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나는 이제 믿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끊임없이 함께하는 전남센터 강사들조차도 자기 공부와 내공에 따라 이 교안에 대한 이해 정도가 다른데, 타 지역 강사라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쨌거나 전국적으로 ‘빡쎄다’고 소문난 센터의 학습 시스템과 운영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 그중엔 달랑 1년에 두 시간 하는 교육에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여타의 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워 포기한 사람도 있었고, 강사료 수입만으로는 생계가 보장되지 않다 보니 다른 직업과 병행할 수 없어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 번째의 경우는 매우 안타까운 일로, 장기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숙제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견디며 살아남은 전남센터의 강사들은 대개 ‘청소년노동인권운동’을 매우 중요한 자기 운동의 한 축으로 여기거나, 노동인권 ‘교육활동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정립해가는 중인 듯하다. 2017년 청소년노동인권전국네트워크 워크숍이 전남에서 있었다. 전남의 ‘노동인권교육 과정’을 사례로 발표하기도 했다. 내가 발제를 마치고 내려가니 강당 뒤편에서 다른 지역 강사들과 전남센터 강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지역 활동가가 웃으며 나를 불렀다. “명인 샘, 여기 좀 와 봐. 전남센터 강사들이 불만이 엄청 많은데?”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실컷 흉보게 놔두세요” 얼핏 봐도 전남센터 강사들은 전남의 ‘빡쎈’ 강사교육시스템에 대해 교육위원장인 내 흉을 보는 척하며 엄청 자랑하고 있더라.
그 워크숍이 끝나고 전남센터 강사 한 분이 내게 했던 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매우 엄한 분이어서 데모를 안 한다는 각서를 쓰는 조건으로 자식들이 대학에 갈 수 있었던 가정에서 자랐고, 그래서 대학 다닐 때 대자보 한 장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던 분이다. 경력이 단절된 주부로 우리 센터에 들어와 3년째 강사 활동을 하고 있는 그분이 내게 말했다. “명인 샘, 활동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저, 이제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그분은 이제 누가 뭐래도 명실상부한 전남센터의 활동가로서 올해부터는 교육위원으로 활동하기를 결의하고 다른 강사들의 학습을 촉진할 촉진자로 성장 중이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노동인권교육은 우리가 진행하는 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일’이며, 동시에 이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들과도 끊임없이 함께 성장하는 일이다. 그리고 교육활동이란, 내가 뿌린 씨앗이 언제 어디서 싹이 나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 몰라도 묵묵히 바닥에서 겨울을 견디며 씨앗을 뿌리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