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희 | 한의사, 노동·정치·사람 회원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의 어느 월요일 아침. 넓은 운동장에 전교생이 줄 맞추어 서 있고 저 높은 단상의 교장 훈화는 끝날 줄 모른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시고 머리가 핑 돈다. 좀이 쑤시다가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라리 픽 쓰러지면 좋겠는데 그렇다 한들 제대로 기절까지는 안 가서 답답하다. 다음 주에도 조회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저 암담하다.

그 시절로 되돌아가면 “아! 짜증 나! 더는 못 참겠다!!”하고 뛰쳐나가든지 “조회는 불편하기만 하니 없애자”라고 대자보를 붙이든지 하겠지만, 그때는 그런 대안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혈압과 빈혈에 부동자세가 겹쳐 두뇌에 혈액 공급이 떨어져서 생긴 문제였다. 피를 위로 뿜어주기 힘드니까 머리에는 피가 부족해지고 다리 쪽으로는 피가 쏠린다. 우리 다리 쪽 정맥(피가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길)은 분수처럼 중력을 거슬러 심장으로 피를 밀어 올려줘야 하니, 피가 역류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판막(밸브)이 있다. 심장 방향으로 피가 흐를 때만 밸브가 열리고, 다리 방향으로 피가 되돌아오려 하면 밸브가 닫혀서 거꾸로 흐르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다. 와! 정말 좋은 설계다. 이 밸브 덕에 우리가 서 있어도 피가 다리 쪽으로 몽땅 몰려서 다리는 퉁퉁 붓고 머리는 하얘져서 기절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만일 이 밸브가 없다면 15분만 서 있어도 순식간에 혈액이 다리 쪽으로 몰려서 순환하는 전체 혈액량의 10~20%가 손실되는 대형 참사가 생긴다.

하지만 자꾸 역류하려는 압력이 강해지면 결국 밸브가 고장난다. 같은 자세로 오래 서 있거나 오래 앉아 있으면 이렇게 분수처럼 밀어 올리기가 힘들어지고 밸브가 고장나는 일이 잘 생긴다. 우리의 몸은 다리 근육이 계속 움찔움찔 움직여서 쭉쭉 ‘짜주는’ 도움을 줘야만 다리의 피가 심장으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피가 올라가지 못하고 다리 쪽에 괴어 있으니, 핏줄이 수용 한계를 넘어 늘어지고 굵어지거나 비정상적인 우회로를 만들게 된다. 이게 뱀들이 다리에 있는 것처럼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하지정맥류다.

하지정맥류는 유전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임신으로 악화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임신하기 한참 전인 십대 때부터 하지의 혈액순환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고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면 어지러웠고 다리는 잘 붓고 무겁고 혈색이 나빴다.
초중고 12년 동안 아무도 같은 자세로 오래 서 있거나 오래 앉아 있으면 정맥의 피 흐름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를 나는 무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알았다.

다리 근육이 움찔움찔 정맥을 짜줘야 혈액순환이 잘 될 수 있으므로, 다리 근육을 강하게 수축하는 운동 – 예를 들면 점프나 달리기, 자전거 -을 틈틈이 자주 하고 걷거나 눕거나 뛰거나 물구나무서는 등 자세를 자주 바꿔주는 것이 좋다. 같은 자세로 30분 이상 앉아 있으면 정맥은 벌써 힘들어지기 시작한다(허리도 마찬가지로 같은 자세로 30분 이상 가만히 있으면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초중고 수업은 사실상 인권 침해라고 볼 수 있다. 수업 중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제자리걸음이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근육이 뭉쳐서 정맥을 누르고 있으면 혈액순환이 더 나빠진다. 이럴 때 침 치료가 도움이 된다. 머리가 어지럽고 피곤하고 혈색이 어둡고 다리는 무겁고 무력하고 월경통이 심한 증상 등 하지의 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를 치료하는 한약도 있다. 하지정맥류가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많이 진행된 하지정맥류는 뱀처럼 구불구불해진 정맥을 제거하거나 막아버리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