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위원장

 

몇몇 시도를 제외하면, 2018년 현재 노동인권교육은 전국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지역마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각 시도의 교육청이나 기타 지자체에서 책정한 예산으로 학교에 강사를 파견하여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는 식이다. 아직 지자체가 노동인권교육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학교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에서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조직되어 나름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별로 조직된 이 네트워크는 ‘전국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만나 현안에 관해 논의하고 1년에 한 번씩 워크숍을 열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보면 비교적 후발주자인 전남은 지역 운동조직들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전남 청소년노동인권교육 강사단’이라는 단일 조직으로 2014년에 출발했다. 그리고 그해에 전교조 교사들의 옆구리를 찔러 학교 예산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신청하게 하고 16개 학교에 학급별 수업을 진행했다. 이를 시작으로 2015년에는 ‘청소년노동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게 하고 도 교육청 주관으로 특성화고에 한해 전 학년 의무교육을 실시하게 했다. 2016년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하여 활동하면서 전남도청과 목포시청에 ‘청소년 노동상담’을 전담하는 상담소를 설치하게 하고 그 상담소를 위탁운영하는 등 노동인권교육과 노동상담, 청소년 노동자의 권리 지원 활동은 물론 당사자 운동의 지원을 위해 청소년 노동인권 동아리의 지원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노동인권교육 수업을 하러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우리가 진행하는 수업 말고도 ‘노동법’ 수업을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때로는 ‘예절교육’ ‘직장인의 화장법’ 등 일종의 취업교육을 진행하는 업체에서 취업교육의 일환으로 ‘노동법’교육을 포함시키고 홍보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공인노무사협회에서 학교에 노동법교육을 제안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아직 노동인권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도 적진 않지만, 이제 어떤 식으로든 적어도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교육은 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정치연구소에서도 노동‘법’교육을 학교 정규교육으로 실시하라는 이슈를 제기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이른바 ‘노동’ 자가 들어간 이런 교육들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다뤄지고 있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만일 나에게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함께하는 딱 두 시간의 ‘노동’ 관련 교육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등학교 2학년이 아니라 중학교 1학년이라면? 어쩌면 이 두 시간이 이 학생들에게는 평생 동안 ‘노동’ 자가 들어간 교육에 참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만일 두 시간이 아니라 네 시간이라면? 혹은 여섯 시간이나 여덟 시간이라면? 시간이 늘어나면 무엇을 이야기할지에 대한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될까? 만일 노동정치연구소의 주장대로 학교 정규교육으로 ‘노동’ 관련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리고 그 내용은 누가 정하게 될까? 혹은 누가 정해야 할까?

또한 이러한 교육은 누가 해야 할까? 교사? 공인노무사? 노동조합 활동가? 노동조합 활동가는 아니더라도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활동가? 인권교육가? 노동인권 전문 강사? 이 교육을 하는 사람에겐 자격이 필요할까? 만일 자격이 필요하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 딱히 자격 조건에 제한을 두지 않더라도 노동교육을 할 사람들이라면 갖춰야 할 것은 없을까?

지금 이 교육을 진행하고 있거나 이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청소년’은 누구일까? ‘미래’의 노동자? 노동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시민? 노동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 또 그런 사람들에게 ‘노동’은 무엇일까? 학생들이 학교에서 하는 장시간의 학습은 그들에게 노동일까, 아닐까? 학생들과 ‘노동’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근로기준법? 노동계의 현안? 임금노동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일? 노동의 가치? 노동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노동의 가치’에 대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뿐만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권’은 어떤 의미일까? 이른바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람에게는 ‘인권’이 목숨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겐 부차적인 옵션이다. 또한 인권운동이 정체성의 정치로 발달해온 저간의 사정은 특정 인권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주력해온 운동을 제외하면 다른 부문의 인권에 완전히 무지한 경우도 꽤 많다.

또 노동인권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교육’이란 무엇일까? 아무리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도 적어도 제도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기성세대는 하나 같이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온몸으로 체화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교육철학을 익히고 실천하는 게 쉬울까? 그런 사람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인권침해는 또 얼마나 클까?

게다가 학교라는 현장은 사실상 온갖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다. 다양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말하더라도 교사들과 학생들의 생각과 요구가 전혀 다르고, 학교 관리자들과 교사들의 고민이 다르며, 정규직 교사들의 애환과 비정규직 교사들의 그것이 다르고, 노동인권교육으로 1년에 두 시간 정도 출강하는 외부 강사의 이해관계가 또 매우 다르다. 1년에 딱 두 시간만 그 학교 현장에 있더라도 노동인권교육을 하는 강사들은 취업률/진학률, 학생인권과 교권과 비정규직 강사의 이해관계가 수시로 충돌하는 현장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인권교육’의 초점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현재 지역마다 진행하는 ‘학교로 찾아가는 노동인권교육’은 이러한 무수한 질문들 속에 놓여있으며 지역에 따라, 또한 이 교육을 담당하는 주체들이 몸담은 조직과 상황에 따라 이 질문과 고민의 수위도 풀어가는 방식도 매우 다르다. 한편에서는 노동인권교육의 ‘정규교과화’나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또 한편에서는 이 교육의 ‘제도화’에 대한 큰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심지어 ‘노동법교육’이냐 ‘노동교육’이냐 ‘노동인권교육’이냐조차도 각기 매우 큰 함의를 내재한 논쟁의 주제다.

이 주제로 연재를 시작했으니 다음 회부터는 현재 내가 활동 중인 ‘전남’의 사례를 중심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하면서 떠오른 이러한 질문들과 그 질문들에 실천으로 답해온 과정을 찬찬히 써볼 예정이다. 위 글을 통해 이미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생각한다. 현재 전남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 청소년노동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고민은 단지 ‘청소년’이나 노동인권‘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이 질문들에 차분차분 실천적인 대답을 만들어올 수 있었다면 나는 현재의 노동 정치가 이렇게 망해가고 있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실천으로 만들어가고 합의하며 또 다른 질문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국, 노동 정치가 가야 할 방향을 질문하고 합의하며 실천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