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사람 신임 공동대표 김혜경·이덕우 인터뷰

노동·정치·사람(이하 노정사): 안녕하세요. 두 분 먼저 대표로 선출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원래는 회원인터뷰가 회원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듣고 서로 알고 지내자 하는 취지로 만든 코너인데, 두 분에 대해 모르실 회원들은 안 계실 거 같고 대표님으로서 몇 가지만 간단히 여쭙겠습니다.
노정사의 시작은 원래 노동정치연구소였습니다. 당시에도 회원인터뷰를 몇 번 진행했지만, 정작 연구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나누지 못했어요. 두 분께서 애초에 연구소가 왜,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혜경 대표(이하 김혜경): 17년도 8월에 처음 준비 모임을 하면서 연구소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들었어요. 그때 당시에 노동당이 내용적으로 굉장히 사정이 안 좋았죠. 그래서 이용길 전 대표님께서도 노동당 탈당을 하시고 한꺼번에 많은 동지들이 당을 나왔어요. 그러니 우리가 뭔가 따로 노동정치를 하긴 해야 하는데, 담을 그릇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단체나 이런 건 생각 안 하고 노동정치연구소를 만들자고 했어요. 일단 조직적으로 진보정치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그릇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내용을 갖자고 얘기를 했던 거 같아요. 한 13~14명 정도 모여서 강남 중국집에서 식사하면서 시작을 했죠. 그때는 이렇게 빨리 사무실을 차리고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두 번 정도 얘기를 더 했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사무실이 생겼어요. 공식적으로 ‘노동정치연구소’ 이름도 달고. 당시에도 내용적으로는 목표가 뚜렷하게 있었어요. 아까 사업보고 때 얘기한 것처럼 노동교육문제, 노동교과서 만드는 문제, 노동법원 만드는 문제, 이렇게 세 가지 큰 목적을 가지고 노동정치연구소가 이 목적을 달성하면서 사람들을 조직해 내고 조직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한다. 그런 목적으로 만든 거예요. 제 기억은 그래요.

이덕우 대표(이하 이덕우): 기억에 대해서는 제가 우리 대표님을 따라갈 수 없어요(웃음). 날짜라든가 시간이라든가.

김혜경: 하하하하하 그게 2017년 8월 13일이었어요(웃음). 나는 중요한 시기는 잊어버릴 수가 없어. 머리 나쁜 사람들은 그런 것만 기억하는 거야(웃음).

노정사: 오늘 그 노동정치연구소가 ‘노동·정치·사람’이라는 단체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노동·정치·사람은 어떤 조직인가요? 사람들에게 어떤 곳이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김혜경: 그냥 노동과 정치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지 뭐.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 그래서 아까 이름 정할 때 나는 사람‘들’하고 ‘들’ 자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얘기 안 했는데, 그냥 노동정치사람 그러면 뭔가 뒷부분이 허전한 게 있어. 차라리 사람‘들’이라고 했으면 포용성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런데 거기서 또 그 얘기 하면 시끄러워지니까 내가 얘기를 안 한 거야(웃음). 그래서 애매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 사람들끼리 하는 거다. 노동이 올바른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고, 그리고 정치라고 하는 것은 우리하고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생활인데 이 생활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다. 아주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다른 이념을 갖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할 일은 아까 창립선언문에 나왔던 거 하면 되는 거고 하하하하.

노정사: 두 분이 자원해서 대표님이 되셨어요.

“내가 지금 해야 할 역할은 발로 뛰면서 회원들뿐만 아니라 노동정치 진보정치를 같이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다니면서 만나는 거죠. 나는 평생을 발로 뛰는 성령을 받아서(웃음)”

김혜경: 자원. 하하하하하하 오랜만에 고문 딱지 딱 떼니까 너무 시원해. 맨날 고민 당했는데. 뭘 해야 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사실 민주노동당 당대표 끝나고 나서부터 고문을 19년간 계속했는데 제일 내가 상처받고 속상했던 부분이 뭐냐면, 노동당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비대위를 구성해서 우리 고문단하고 의장님(이덕우 대표)하고 같이 당이 제대로 되도록 혁신위원도 하고 힘들게 두 달 정도 활동을 해서 얘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거야. 귓등으로도 콧등으로도 안 들었다 이거야. 그 결과가 지금 노동당의 결과에요. 그래서 그런 걸 보면서 이거 고문의 역할이나 힘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뭐냐는 생각이 든 거지. 내가 노동당 대표가 됐다면 그렇게 처리 안 하지, 솔직한 얘기로. 그래서 내가 나이는 많지만, 민주노동당 당대표 할 때만 해도 육십 대 초반이었는데 지금은 칠십 대 중반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상이 뭔가 활기차게 나가야 할 부분이 많은데 고문의 입장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 답도 안 나와서 너무 답답한 거야. 그래서 이번에 노동·정치·사람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을 보다 더 많이 만나고 활발하게 뛸 수 있는 입장이 되려면 내가 대표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내가 고문 안 하고 대표 하겠다, 그렇게 자원을 한 거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되게 웃기는 얘기일 거야(웃음). 고문을 15년간 하다가 대표 한다고 자원해서 손들면 망령들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죠. 근데 사람들이 좀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뭔가 있다면 그 역할에 맞는 자기 처지를 가져야 한다는 거야. 내가 고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대표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잖아요. 근데 내가 지금 이 단체에서 해야 할 역할은 뒷짐지고 앉아서 어드바이스하는 고문 이런 역할이 아니고, 발로 뛰면서 회원들뿐만 아니라 노동정치 진보정치를 같이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다니면서 만나야 한다는 거죠. 나는 평생을 발로 뛰는 성령을 받아서(웃음). 우리 정일우 신부님이 말씀하시더라고. “사라(김혜경 대표 세레명)는 발바닥 성령이야 ”

이덕우: 발바닥 성령, 그거 정확한 얘기에요.

김혜경: 네. 왜냐면 발로 뛰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아무리 머리를 갖고 해도.

이덕우: 진짜 잘못한 게 뭐냐면, 명퇴시킬 사람을 명퇴시켜야지 명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우리 김혜경 대표님을 대표단 이런 데서 이제 그만하셔도 되겠네요 이러면서 고문이랍시고 앉혀 놓으니까. 그리고 고문으로 만들어 놨으면 고문이 하는 얘기를 좀 들어야 될 거 아니야.

김혜경: 듣지도 않고 막. 직함만 주고. 임명만 하고. 임명은 해요 또. 임명장 주면서. 그래서 2년 동안 꼼짝도 못 하게 해 그걸로.

노정사: 네, 그렇게 두 분 오랜만에 다시 ‘선수’가 되셨어요(일동웃음). 코치에서 다시 선수가 되셨는데, 임기 안에 이것만큼은 내가 꼭 하고 말 테다 혹은 회원들에게 같이 하자고 말씀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김혜경: 나는 우리 이덕우 상임대표님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데, 바꿔서 생각을 해보면 발로 뛰어야 하는 입장인 거죠. 우리 대표님은 직업이 있으신데 그 본업을 떠날 수 없는 거고. 그래서 둘이 역할 분담을 한다면, 나는 지방이고 어디고 우리 회원들만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진짜 올바르게 노동정치 진보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다 찾아가겠다, 그런 결심이에요. 여기 돈이 없으니까 내 사비를 들여서라도, 내가 우리 딸한테 “돈 내놔. 나 어디 좀 갈 거야”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돌아다니면서 다 만나고. 일단 만나봐야겠다 생각해요. 오늘 아침에도 한 동지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어요. 대표님 출판기념회 하는데 몰랐다, 페이스북 보고 오늘 알았다, 그리고 오늘 연구소 새로 창립하는 걸 몰랐다는 거야.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자기 나름대로 진보정치 좌파정치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하고 모임을 지금 하고 있단 얘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야, 혼자서 떨어져서 몇 사람 만나가지고 좌파정치 한다고 하면 뭐 하냐. 여기 같이 회원으로 들어와. 그래서 이제 같이 하는 거야. 함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 몇몇 사람끼리만 하면” 그랬더니 알았습니다 대표님 연락주십시오 하길래 “일단 들어와서 회원으로 가입하고, 그쪽에서 만날 때 날 불러. 그럼 내가 나려가서 같이 만나자” 그랬더니 알았대. 이렇게 뭔가 서로 정보교류가 되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날 만나러 오는 거보다 내가 만나러 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거야. 그때 우리 이덕우 대표님은 차비만 주면 돼 나한테(일동웃음). 내가 대신 가는 거니까. 돈 많이 버셔서 나한테 투자를 하시라고 하하하하하. 난 빈털터리야. 빈민운동밖에 안 했어. 어디 가서 단돈 10원도 못 꿔. 그런데 우리 대표님은 그래도 돈을 버실 수 있으니까 나한테 차비는 주시라고.

이덕우: 차비에다가 식사비까지(웃음)

김혜경: 당장에 21일에 제주도 오라고 연락이 와서 내가 비행기표를 사야 하는데, 사실 제주도까지 다녀오려면 돈이 좀 많이 들지. 근데 연구소 돈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걱정을 하고 있었거든요. 오라는 데는 또 많이 생기는데. 창원에서도 오라 그러고, 어디서도 오라 그러고. 그러니까 활동비를 날 주시라고. 활동비가 아니라 교통비를. 하하하하 역할 분담해.

이덕우: 대표님이나 저나 똑같은 대표니까요, 그건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연구소에서 당연히 사업비로 해야 하는 것이고, 사업비가 많이 나가면 나갈수록 좋은 거예요. 그리고 사업비를 많이 쓰면 또 모자른 것은 어떻게 하든지 충당을 해야지. 아까 회의할 때에도 얘기했지만, 국가도 예산을 세워 놓으면 거기에 맞게 국가가 운영이 돼요. 그런 것처럼 우리도 사업을 이렇게 하겠다 해서 실제로 하다 보면, 모자라면 어디 가서든지 해결할 방법이 생길 거예요. 안 되면 회원들한테 우리 이렇게 노동·정치·사람 만들어서 잘하자고 해서 대표님 열심히 뛰고 하는데 회비 조금 더 내 아니면 회원 더 가입시켜 이렇게 하면서 바뀌어 나가는 거예요.

김혜경: 회비를 더 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조직을 하라고 해야지(웃음)

이덕우: 그러니까 우리 김혜경 대표님은 전국 팔도강산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만나시고, 저는 여기 혜화동에 딱 똬리 틀고 앉아서 회원들 열심히 격려하고 확장하고 그렇게 해야 할 거 같아요.

노정사: 두 분 다 일차적으로 회원들을 많이 만나고 같이 조직하시는 게 목표이시군요. 두 분이 대표를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죄송한 마음도 들고,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사실 그만큼 놀라웠어요. 대표님들에 비해서는 ‘아기’인 저조차도 지치고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두 분은 계속해서 자원해서 대표를 하실 수 있을까, 그 힘이 어디서 나올까 궁금했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후배들한테 이렇게 하렴, 이렇게 하면 기운이 좀 난단다, 조언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혜경: 우리 둘은 다 천주교 신자들이야 알고 보니까. 내가 가진 신앙이 안 되는 것, 할 수 없는 것, 이런 것들을 그냥 넘겨버릴 힘이 되는 거야. 하면 할 수 있다. 근데 그걸 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난 그게 가능하고, 같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누가 배려해 주느냐 나는 하느님이 해주신다고 믿었거든. 그래서 그 마음을 가지고 꾸준히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만나고, 물론 그러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그런 것들을 함께 극복해 온 거지. 나 혼자 했으면 못했을 거야. 같이 하는 이 힘을 믿음으로 내가 가지고 있을 때, 할 수 있어요. 힘이 나요. 내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여러분들이 나하고 함께하지 않는다면 나는 할 수 없어요. 그러나 같이 해준다고 했을 때는 내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는 만큼만. 도를 넘어서는 건 어렵겠지만. 기적이라고 하는 건 그냥 상상적인 개념이나 이념이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 모여서 나눔을 할 때, 우리 난협(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 엄마들도 얘기했잖아. 나눌 때 뭔가 되더라, 그냥 살게 되더라. 그게 사는 방식이다 이거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두렵지 않아 사실은. 사람 만나는 게 왜 두려워요. 어떤 사업을 하기 위해서 누굴 만나러 다니는 게 아니고, 사람 그 자체가 중요하고 좋고 만나야 하기 때문에 만나러 다니는 거지. 어떤 결과, 예를 들어 회원이 돼야 해, 이런 목적을 갖고 다녀야 하면 나 안 가 못 가.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 ‘세상이 이런데 우리가 바꾸자고 나섰던 거 아니냐, 지금 여기서 포기할 거냐? 아니다, 세상은 아직 다 바뀌지 않았다. 아직도 너무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 이걸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걸 같이 나누고 고민하면서 만나면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가진 가치관과 판단과 이런 생각들이 다 있고 그럼 함께해보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거라고 봐.
지금 172명의 회원들이 있는데, 나는 그동안에 연구소 하면서 한 명도 회원으로 못 데려왔어. 왜냐, 연구소가 뭐하는 덴데? 지금까지 정당활동 하면서는 그래도 후원금을 받고 도움을 받았지만, 연구소는 뭐 하는데? 그러면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난 조직을 할 수가 없었어 사람들을. 근데 이제는 누구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떳떳하게 내놓고 얘기를 할 수 있어. 이런 걸 하고자 하니까 도와달라, 아니면 함께하자 제안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용기가 난 거지. 내가 그럼 차라리 앞장서서 나서는 게 빠르겠다 하는 생각이 든 거야(웃음). 고문이 돼서 조직하러 다니는 것보다는 대표가 돼가지고 조직하러 다니는 게 신나지 않냐? 하하하하하(일동박수). 신나는 일을 하고 살아야지.

이덕우: 누구든 다 그렇잖아요. 아이 뭐 내가 안 해도 되지 이런 생각 들죠. 또 제일 힘든 것이 사람한테 실망하고 사람한테 상처받고 이런 거거든요. 근데 땅에 넘어지면 넘어진 그 땅을 밟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말처럼 그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은 또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그리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뭔가 일을 해보면 혼자서 생각하기보다는 둘이서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자기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게 보여요. 또 세 명이 만나면 또 다른 의견, 나은 의견이 나와요. 이래서 세상 사는 거 혼자 사는 거 아니구나 싶어요.
그리고 못사는 사람들은 계속 뺏겨만 왔잖아요. 조금씩 나아졌다고 해도 조금 나아졌다가 되돌아가거나 오히려 악화되기도 하고. 아주 끔찍한 얘기지요.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 이게 뭐예요. 스물네 살짜리가 그렇게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그 엄마가 오죽했으면 나라를 저주한다고까지 했을까. 이걸 바꾸려면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이건 진짜 잘못됐으니까 바꾸자고 계속 얘기를 하는 수밖에 없죠. 그렇게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어요. 87년 6월항쟁 해도 다시 또 돌아가고, 촛불‘혁명’이라고도 했지만 지금 보면 또 그런 형태로 돌아가고. 그걸 바꾸려면 끊임없이 누군가가 얘기하고 같이 고민하고 싸우고 같이 연대하고 이럴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려면 결국 사람이에요 사람. 그래서 노동정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란 말이죠. 진짜 사람대접받고 사람답게 살자고 하면서 당도 만들어 보고 여러 가지 일을 해 봤지만, 그때마다 아이구 이게 아닌데 하면서 뒤통수 맞는 느낌이랄까 상처받는 느낌이랄까 이런 것들 때문에 아주 솔직히 얘기하면 답답한 때도 있었고 상처받는 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 생각은 그걸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는 방법은 결국 또 사람에게서 찾는 수밖에 없다 이거예요. 더군다나 우리 대표님이 자원해서 “나 명퇴시키지 말고 현역으로 돌려줘!” 이러니까. 하하하하 이거 어쩔 거야.

“결국 사람이에요 사람. 노동정치,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란 말이죠.”

김혜경: 하하하하 사실 이거 내가 젊은 사람들한테 도전한 거야. 내가 나이는 먹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면 이렇게 뛰면서 살자는 거야. 힘 좀 내고오- 어엉? 요즘에 맨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인터넷만 하고 이러니까 사람들이 뭔가 멕아리가 없어. 머리 발전은 얼마나 됐는지 몰라도 다 보면 멕아리가 없어 진짜루우. 활발하지가 못해.

이덕우: 자꾸 만나야 하는 거야 기본적으로.

김혜경: 맞아.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 만났을 때 가슴이 뛰어야 하잖아. 이 사람하고 만났을 때 가슴이 뛰어서 내가 흥분되고 뭔가 주고받음이 확실하게 있고. 멕아리가 없으면 나도 멕아리가 없어져.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은 거야. 내가 나이는 먹었지만 젊은 사람들한테 힘을 넣어주고 가슴 뛰게 하는 일을 아직은 할 수 있겠다, 왜 못 하냐, 나이 먹었지만 하면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면서 막 도전하고 싶은 거야. 나 가만히 안 있겠다, 두고 보지 않겠다 그런 생각인 거지. 우리 딸이나 아들들이 들으면 “엄마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하지. 칠십엔 내가 못했는데 지금 내가 운전 배워서 돌아다닐까 하면 엄마 제발 좀 가만히 좀 있으라고 해. 그런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지. 우리 애기도(손주) 내년이면 중학교 올라가니까 걔네들 생활과 함께 나도 내 생활을 활동적으로 하는 게 도움이 되는 거지. 내가 그냥 뒷방 늙은이처럼 앉아서 빨래도 해주고 밥이나 해주면 즈이들도 안 좋잖아. 그래서 도전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 난 고비고비마다 도전을 해요.

“이거 내가 젊은 사람들한테 도전한 거야. 내가 나이는 먹었지만, 이렇게 뛰면서 살자는 거야. 힘 좀 내고오- 어엉?

이덕우: 내가 이번에 딱 느낀 것이 “사라 아줌마 드디어 뛰쳐 나왔다. 그래서 열세 살 어린 이덕우 가슴에 불을 붙였다!

김혜경: 하하하하하 책을 써! 하하하하하

이덕우: 근데, 불은 붙었는데 얼마나 또 힘들까 하하하하하하하

김혜경: 아니야 힘들 거 없어. 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즐거워.

 

정리 | 정정은 노동·정치·사람 웹진팀
사진 | 박성훈 노동·정치·사람 웹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