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에서 주최한 2018년 봄 심포지움에서 발제한 내용을 나누어 올린 것임>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그의 시 ‘바이마르 헌법 제1조’에서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그런데 나와서 어디로 가지?”라는 물음을 던진다. 주권자의 무력함에 대한 한탄, 주권자를 배반한 권력의 만행을 고발하는 시인 동시에, 최초의 현대적 헌법이라고 찬탄받았던 바이마르헌법이 나치에 의해 유린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처절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이마르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이 그 헌법을 자신의 헌법으로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절대적 의미에서 헌법을 “특정 국가의 정치적 통일과 사회적 질서의 구체적인 전체상태”, 즉 국가 그 자체로 보는 견해에 따르면, “정치적 통일체의 실존을 그 전체에서 규정할 수 있는 능력”이 헌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권력, 즉 헌법제정권력이다. 헌법제정권력은 달리 말해 주권자이며, 개헌에 있어서 이 주권자는 헌법개정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된다. 헌법이 누구의 것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브레히트의 탄식을 시집(詩集) 안에만 머물게 할 수 있다. 현행헌법이 누가 만든 것이며, 누굴 위한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체제에 대한 마르크스의 명제-“군주제에서 우리는 체제의 국민을 가진다. 민주제에서 우리는 국민의 체제를 가진다.…체제가 국민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체제를 창조한다.”-는 헌법과 주권자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계급도구주의적 법이론에 따르면 “경제적 토대가 법적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 계급지배의 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헌법은 결국 한 사회의 지배계급의 승리선언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현행헌법에 따라 형성된 입법, 행정, 사법에 걸친 헌법현실을 되짚어볼 때, 우리 사회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가 관철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국가이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현실화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시장지상주의자들에게 특화되어 있는 체제라고 평가될 것이다.
외견상 지배계급의 통제로부터 독립되어 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구조적으로 지배계급의 통제에 제약되고 있는 국가형태에서 정부(국가)가 중립을 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헌법이 “특정 국가의 정치적 통일과 사회적 질서의 구체적인 전체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단지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만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형태로 헌법이 존립할 수 없으며, 오히려 지배계급을 비롯한 사회의 제 계급이 헌법을 둘러싼 정치투쟁을 통해 그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계급의사가 국가의사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헌법체제가 중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공상을 벗어나 “공평의 외관을 그 근저에 있는 지배와 착취의 실체적 구조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인식을 갖춘 역량 있는 주체를 개헌의 주체로 등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주체형성을 위하여 필요한 과정은 개헌을 통해 바뀌는 삶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개헌이 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어떤 법과 제도가 어떻게 개정될 것인가? 이 간명한 질문에 답이 주어질 수 있을 때 헌법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분명하게 가늠된다. 이해관계로 대립하는 계급 간의 투쟁 속에서 형성되는 헌법규범은 결국 승자의 결단에 가까워질 것이고, 헌법을 통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자기 계급의 이해를 사회 보편의 이해로 전환할 수 있는 지위를 점하게 된 계급은 이후 입법을 통해 구체적인 헌정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바꾸게 될 것이다.
노동헌법의 측면에서 판단해보자. “경제질서를 구성하고 결정하고 있는 규범 하에서 노동질서를 규정하고 있는 규범의 총체”로서 “노동관계를 규제했던 노동규범, 노동이데올로기, 노동가치”를 노동헌법이라고 전제하자. 개헌을 하게 되면 노동관계법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현행헌법에서 사용되고 있는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꾸면 우선은 현행 ‘근로기준법’이 ‘노동기준법’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근로’가 ‘노동’으로 바뀌면 자본친화적, 노동배제적 한국사회가 노동친화적으로 바뀔 것인가? 주당 노동시간을 최대 68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는 행정해석의 근거가 되고 있는 현행 제59조는 바뀐 ‘노동기준법’에서 삭제될 수 있을 것인가? 바뀐 ‘노동기준법’은 현행 제11조에 의해 법 적용을 제한받고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전면적으로 적용될 것인가? 파견법이나 노조법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하여 환골탈태할 것인가? 그 법들이 노동계급의 이해를 담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의 반대편에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자본가 계급의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현행헌법 제119조 제2항은 폐기될 수 있을 것인가? 폐기된다면 자본가들에게 어떤 이익이 발생할 것인가? 국외 투기자본의 침탈을 막고, 노동유연화를 가속하면서 국내자본의 이윤창출구조를 튼실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금산/은산분리정책을 완화하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및 각종 규제를 철폐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문제는 누가 개헌을 하는가로 귀결된다.
(2) 주체 없는 개헌 논쟁
개헌을 둘러싼 정치세력간의 공방의 양상이 과거와는 정반대로 바뀌었음을 주목하자. 개헌하자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다. 아닌 말로 새로운 헌법이 만들어지면 그 순간부터 헌법 바꾸자는 이야기는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시기 개헌논란을 돌이켜보면 논란을 만들어낸 주체들이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제나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였으며, 이를 대신할 새로운 체제, 예컨대 내각제 등을 거론하면서 개헌논란이 불거졌다. 그런데 역시 언제나 새로운 권력구조를 주장하는 측은 권력을 잃은 측이었고, 현재의 권력구조를 방어하고자 하는 측은 당연히 현행 헌법구조 속에서 권력을 획득한 측이었다. 그러다가 집권세력에게 불리한 정치적 상황 전개, 예를 들면 집권 말기쯤 되면 집권세력 쪽에서 정세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말 뿐인 개헌의제제시가 이루어지곤 했다.
이러한 형식이 거의 고정적인 개헌논란의 형식이었지만 현재는 정 반대이다. 지금은 오히려 집권한 세력이 주도적으로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반대로 실권한 세력 쪽에서 개헌논의를 회피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개헌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개혁과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을 성공시켜야 하는 현 정부 입장에서 개헌은 개혁을 위한 출발점이고, 이는 곧장 “개헌=개혁”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내기에 유리하다. 반대로 수구세력의 입장에서 개혁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정치전반에 걸쳐 퇴출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의 개헌은 이러한 개혁을 추동하는 동력이 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요컨대 이러한 구도 속에서 “반개헌=반개혁” 혹은 “반개헌=적폐”라는 등식이 만들어진다.
실제 현실을 보더라도 이러한 구조가 자유한국당 등 수구정치세력의 발목을 잡는 효과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명시적으로 개혁을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개헌에 찬성할 수도 없는 모순구조 속에서 수구정치세력의 고민은 깊어진다. 국회 개헌특위가 초안까지 만들어내는 동안 수구정치세력에서는 자신들만의 개헌안조차 제대로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개헌안을 제출할 때 현재의 상황에서 반개혁으로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수구정치세력들은 기존에 헌법 제119조 제2항의 삭제를 주장해왔음에도 지금은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이거 잘못 꺼내들 경우 반개혁세력의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몰릴 수 있다보니 감히 이런 안을 제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과 수구세력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개혁의제들이 개헌안으로 제출되고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기간의 개헌정국에서 시민사회 내부에는 몇몇 주도적인 개헌의제그룹들이 형성되어 활동을 했다. 국가전략포럼,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 정치개혁공동행동,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헌법개정여성연대,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등 단체들이 개헌논란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런데 여전히 대중적인 개헌논의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계급 간 갈등양상이 현저하게 분출될 수 있을 만한 개헌의제들은 잠복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 개헌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회 합의안이 나와야 한다. 대통령 발의안은 현재 상황에서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가결이라는 조건을 달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회 안에서 여야가 합의한 안이 제출되고 이에 대한 투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기존 국회 내 개헌특위의 안이 있고, 개헌특위 안의 상당부분은 청와대안과 기조가 거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얼핏 보면 국회 개헌안이 청와대 개헌안의 수준에서 그다지 차이 없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제시된 안 중 자유한국당 등 수구세력이 일정하게 합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논란이 되는 중요한 몇 가지 의제는 애초 발의된 정부안이든 국회 개헌특위 안이든 어떤 초안들에서도 일정하게 수구세력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총리인선과 관련된 문제 등을 포함한 권력구조개편 문제는 여하한 합의선까지 유연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기본권 등 중요한 개헌 사안은 거의 논의에 부쳐지지 않거나 일부 후퇴할 것이다. 사실상 주권자의 기본적 인권과 관련된 사항들은 부수적 논의에 머물게 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각 초안들에서 기본권 규정들은 일부 미진한 구석은 있지만,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현안이 되었던 인권사항들을 포괄하고 있다. 그럼에도 논리적 정합성을 결여한 부분들이 상당히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러한 사안들은 정치권 주도의 개헌과정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 오히려 민간영역에서 가중되고 있는 이에 대한 찬반논란은 정치권의 개헌논의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긍정적으로 보면 기본권에 대한 부분은 사회적인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졌으므로 큰 논란이 불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주체와 과정이라는 개헌의 질적측면을 볼 때 결국은 주체와 과정이 정치권에 편향됨에 따라 나타나는 부정적 측면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개헌이 궁극의 목표라면 진보적인 측면에서는 현재보다 후퇴한 안으로 합의를 할 수밖에 없으며, 기본권 등 주권자의 권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부분들은 권력구조개편 등의 이슈에 그저 부차적인 수준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사회적으로 특히 현 정부에 일정하게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세력으로부터 이럴 거라면 굳이 왜 개헌을 한다고 난리를 쳤는가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이 정권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되면 이후 개혁을 위한 동력을 확보하는데 곤란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이 모든 한계상황들은 주권자가 직접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기에 발생한다. 개헌을 둘러싼 주권자들이 계급과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 주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이 주도하여 진행하는 개헌은 사회변혁의 여파를 기대할 수 없다.
(3) 주체 조직화의 과제
민중이 직접 개입하고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개헌을 한다는 건 상상으로는 가능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서로 다른 입장을 제시하여 투쟁하고 타협하는 정치적 과정을 거친 후 보편성을 담보하면서도 시대정신과 사회변혁의 의지를 담는 헌법을 만든다는 것은 지난한 과정을 예정한다.
그런데 이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고 국회 내부의 논의가 진행 중인 현재(2018.4.20.) 상황에서 풀뿌리에서부터 개헌의 동력을 만들고 주체를 조직화하는 과정을 밟을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졌다. 이 상황에서 주체와 과정에 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자는 주장은 지나치게 늦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주체의 조직화는 개헌안의 내용이 어떻게 되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로 남을 것이다. 어떤 헌법이든 그것이 ‘현행’이라는 접두사를 붙이게 되는 순간부터 개정의 요구는 나오게 되어 있으며, 특히 이 시점에서 논의되는 개헌은 사회 전반의 개혁과 맞물린 의제이므로 조직되는 개헌의 주체는 장기간에 걸쳐 개혁의 주체로 활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조직되는 주체의 당면과제는 현재 논의 중인 개헌안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이 될 것이다. 즉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사장되거나 국회에서 이보다 더 후퇴한 내용을 담은 합의안이 만들어질 때, 그리고 그러한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지게 될 때 대응할 수 있는 주체가 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코앞에 닥친 개헌정국에 대한 대응이지만, 더 멀리 보면 현재의 개헌정국이 개혁정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대중적 의지를 확보한다는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개헌논란 와중에 제시되었던 각종 의제들을 보다 장기적으로 사회의제화 하고 이를 현실적인 논란으로 만들면서 입장에 따른 이해의 관철을 위한 장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를 고려하자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지금까지는 정치권이 깔아놓은 개헌논란에 수동적이고 부수적으로 빨려들어가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역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헌의 수준에서 이야기되지 않고 있는 보다 전복적이고 급진적인 대안체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동시에 그에 대한 실천전략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것이 개헌논란이 간과한 근본적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자세가 될 것이며, 반동의 반혁명을 제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시민단체나 인권단체, 민중운동조직 등 대중조직은 각자의 영역에서 해당 영역에 관한 의제를 설정하고 광장을 열 수 있다. 대중조직은 자체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기획을 만들고 관련 주체를 모아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같은 의제에 대하여 정 반대 입장의 주체들이 존재한다. 대립되는 입장의 주체들은 같은 사안을 두고 정 반대의 해법을 내놓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다. 해법이 도출되지 않는 한 논의는 진영 안에서만 머물게 되며 개혁의 방향은 제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양상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역할은 정당에 있다. 정당은 대중의 이해관계를 수렴하고 정책을 만들어 제도화하면서 동시에 사회전반의 변혁을 위한 장기적 과제와 실천경로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의 정당구조는 보수정당 일색이다. 이들이 진보적 방향으로 개혁의제를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 자체가 숙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