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에서 주최한 2018년 봄 심포지움에서 발제한 내용을 나누어 올린 것임>
이상으로 개헌의 주체와 과정에 대한 현재의 문제점을 간략하게 짚어보았다. 주체와 과정이 개헌에 미치는 영향은 규정의 내용에까지 미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소소하지만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최근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개헌의 방향에 대하여 일정하게 제시되는 일군의 견해들에는 독특한 양상이 보인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주제와 내용을 헌법에 규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즉 헌법 안에 국가구성의 틀거리와 주권의 소재, 기본적 인권의 항목과 의의와 보장의 방식, 권력구조의 형태와 견제장치, 환경과 생태에 관한 각종 권리담론과 국가의무, 경제정의에 관한 사항, 직접민주주의의 방식, 지방분권에 관한 내용, 정치개혁에 대한 구체적 방향 등을 가능한 한 모든 주제를 포괄하여 상세하게 적시하려는 태도이다.
베네주엘라 헌법 등에서 발견할 수 있듯, 국가체제 내에서 발생하는 의제에 관한 거의 대부분의 규정을 헌법에 둠으로써 입법에 따른 혼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식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헌법에 이처럼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사회적인 주제와 의제 전반을 상세하게 담는 형식으로 개헌을 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인가? 개헌이 될 때 기본권에 관한 내용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채, 다만 “역사적으로 확립되고 국제인권규범의 규정과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를 통해 보장된 인간의 권리에 관한 모든 기준에 따라 국가는 주권이 미치는 범위 안의 모든 사람에게 그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규정 하나만 둔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한국의 헌정사에서 보아왔던 헌법의 형식은 사회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모든 의제를 다 담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원리와 원칙만을 간결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형태의 헌법이 한국만의 독특한 형태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다른 국가들의 헌법과 비교할 때, 한국의 헌법보다 더욱 상세한 규정을 둔 헌법도 많고, 더 간단한 헌법도 있으며, 한국의 헌법이 전혀 전례가 없는 형식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헌법의 형식은 이러해야 한다는 논의는 거의 생략되어 있으며, 과문한 탓인지 개헌에 관한 논의과정에서도 거의 들어보질 못했다.
헌법의 형식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어쩌면 비중 있게 논의할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생각을 키워보면, 헌법의 규정으로 확정할 수 있는 수많은 의제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가장 첨예하게 논쟁을 유발하는 부분은 권력구조부분이다. 여야는 ‘총리인선’과 관련해 충돌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국회의 총리추천제를 요구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총리인선은 대통령의 전권임을 주장한다. 기실 이러한 내용이 개헌의 가능성을 담보한 논란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려니와, 이정도 의제가 개헌의 향방을 가늠하게 된 현재의 상황이 다름 아니라 주권자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총리제가 유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주권자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미국식 정부통령제는 안 되는가? 굳이 총리라는 중간과정을 두어 대통령은 책임을 면하고 총리에게는 권한이 없는 상황을 유지해야 하나? 총리문제에 대해 여야가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논란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정부개헌안을 두고 보자면, 현행 헌법은 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으로 그 책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지만 정부개헌안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다. 그렇다면 총리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자신의 권한행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기본권에 있어서 안전권, 건강권, 환경권, 정보기본권 등을 강화 또는 신설하고 소수자 인권에 대한 원칙을 설정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 및 소외계층, 소수자의 문제해결 의지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특히 기본권 중 충돌하는 부분에 대한 전체적인 구조정합성의 부재가 드러난다. 환경권의 경우 개정안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구절이 삽입되었다. 그런데 과연 이 ‘지속가능한 발전’은 헌법적 가치로 환경권과 함께 승인되어야 하는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형용모순이 헌정질서의 기본 원리가 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환경보전의 의무가 ‘국민의 의무’ 중 하나로 승격되는 바, 인민이 의무를 가지는 경우 이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없다.
한편 생명권을 보장했는데, 이 때 생명권과 ‘낙태의 권리’가 충돌하는 것에 대해 이번 개헌안에서는 이를 해소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동물권 역시 마찬가지인데, 국가의 소극적 의무를 규정하긴 했으나 과연 ‘동물권’이 동물의 권리를 보장한 것인지, 아니면 동물을 바라보거나 동물과 함께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안전권의 보장이 자칫하면 국가가 안전을 빙자하여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헌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이 있어야 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도식적인 헌법관에 사로잡힌 기성 정치권의 고루함에서 비롯한다. 이 고루함을 넘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권자의 폭넓은 참여다. 그러나 참여하는 주체가 한정됨에 따라 기성 정치의 관점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 풍성해야 할 개헌논의는 비루해지고, 치열한 갈등과 대립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점을 드러낼 기회는 상실되며, 소통과 타협을 통해 합의 가능한 보편적 가치를 창출하는 정치적 역량은 실종된다. 이 와중에 제출된 각종 개헌안은 아름답고 몽환적인 내용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헌정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주권자들이 헌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한, 그 모든 수사는 그저 ‘아무 말 대잔치’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