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에서 주최한 2018년 봄 심포지움에서 발제한 내용을 나누어 올린 것임>
(1) 주체의 문제
개헌 드라이브를 통해 목적한 개혁의 효과적 수행과 피아 대척의 프레임 구축이 의도대로 조성되기 어려운 상황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가?
개헌이나 개혁을 진척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일을 하는가이다. 누가 이 과제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물은 누구를 위한 개헌이냐 혹은 누구를 위한 개혁이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헌 또는 개혁 논란에서 그 주체는 대통령과 의회다. 현재의 정치구도를 만들어낸 촛불광장의 시민들은 개헌논의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촛불의 열망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탄핵정국에서 촛불은 개헌을 요구하지 않았다. 주권자이자 헌법개정권력인 국민이 개헌을 요구하면서 촛불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촛불광장의 요구는 무거운 개혁의 과제를 남겼지만, 그 개혁의 열망이 곧장 개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박근혜 탄핵정국의 촛불은 헌법적 측면에서 볼 때, 체제의 전복 내지 전환을 요구하는 혁명의 과정이었다기보다는 헌정질서회복을 요구하는 저항권 행사의 장이었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적어도 표면적으로 촛불은 개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있는 헌법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추론과 예단을 통해 촛불이 개헌을 요구한다고 의제할 일이 아니라 과연 헌법개정권자의 의사가 개헌에 닿아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촛불정국 전에는 헌법이 문제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파괴한 자들이 문제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다가 탄핵 및 조기대선정국이 도래하면서 입장을 바꿔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금까지 개헌논란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곧장 이번 개헌이 기득권 중심의 이해관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혐의를 짙게 만든다. 현존 사회질서의 모순에 대항하는 계급 간 쟁투는 전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개헌논의는 정치질서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주체의 전환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 청산되어야 할 ‘적폐’세력의 상당수가 개헌이라는 개혁작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태이다.
지난 1년 동안 개헌정국의 와중에 국회와 청와대가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형식과 절차를 가지기는 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여론의 수렴일 뿐이지 반영까지 모색된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국회 개헌특위의 개헌안 초안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행사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열렸는데, 여기 주도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주로 특정 종교집단에서 조직한 개헌 반대 세력이었다. 청와대가 국민과 함께하는 개헌을 위하여 온라인 토론장을 열었으나 다양한 사회세력이 자신들의 의사를 헌법 안에 반영하기 위한 개입과 참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 판이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주권자들의 대다수는 개헌에 대하여 별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개헌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많은 의견을 제출하는 일부 적극적 참여자들의 태도가 주권자들의 보편적 태도는 아닌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개혁과제의 해결이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건 이미 개혁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여당 야당을 가릴 것 없이 현재의 기성 정당과 정치집단은 개혁의 주체로서보다는 대상으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과도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경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개혁 대상이 자신의 살과 뼈를 바르는 개혁을 한 바는 극히 드물다. 한국사회에서는 기득권이 스스로를 개혁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법원이나 검찰, 국정원 등 개혁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셀프 개혁에 맡겼다가 개혁은커녕 오히려 퇴행하는 사례만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개혁을 요구하는 주권자들이 개혁의 내용을 스스로 만들어나가고 그 안에서 합의를 이루어내야만 한다. 개혁을 위한 개헌이든 입법이든 주권자들을 배제한 채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면 결국 주권자의 이해가 배제된 결과물이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남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할 때 주체의 문제는 거듭 강조해도 부족하다.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개헌은 국민을 위한 개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개헌이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치’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를 충족하는지는 의문이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뿐만 아니라 국회 개헌특위가 마련한 개헌안, 더불어 각 정당 및 시민사회 일각에서 제출된 개헌안들이 그 내용적 함의는 차치하고 사회적으로 그다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이유는 개헌의 주체가 되어야 할 주권자들이 개헌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개헌 논의는 정치인과 일부 전문가들만의 말잔치에 머물고 있다.
(2) 시기와 방식의 문제
현재의 국면이 개헌을 위한 절호의 국면인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 시점이 개헌의 국면이라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촛불이 열망했던 일련의 개혁과제들이 개헌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내용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과정과 실효성의 측면을 두루 검토하여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검토와 판단을 통해 개헌이 개혁과제 해결의 조건임이 드러난다면 현 시점을 개헌의 국면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개헌논란으로 인해 개혁과제의 해결이 지체되거나 불분명하게 된다면 현 시점을 개헌의 국면으로 규정하는 것은 중대한 판단착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을 해야만 하는가?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서는 개혁을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될 수 있으면 빨리 개헌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6월 지방선거는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직후이기에 정권의 초반에 해당하고, 대중적 지지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겐 적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주권자들에게도 적기인지는 불투명하다. 적어도 지금처럼 주권자들이 반향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시기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장기적으로 여론을 조성하면서 ‘적폐’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개헌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을 고민할 수는 없었을까?
박근혜 탄핵으로 촉발된 조기대선의 과정에서부터 주요 대선후보들이 모두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개헌의 범위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할지조차 주권자들과의 논의가 없었다. 정작 개헌을 의제로 띄워놓은 후 실질적인 개혁조치들은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면서 1년이 흘러갔다. 우려했던 대로, 이처럼 조급하게 기일을 정해놓고 진행하는 개헌이 성과를 낼 수는 없었다. 광장의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 이외의 의제들을 접하고 생각하고 수렴하는 과정에서 시간은 필요했다. 개혁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와 이해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과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촉박한 일정 속에 기한을 정해놓고 결과를 내겠다는 조급증이 개혁의 동력을 상실시키고 있다.
주권자가 직접 참여하는 장을 어떻게 열 것인지에 대한 숙의도 부족했다. 개헌을 위한 논의를 어디까지 어떻게 확산할 것인가? 그 방식은 무엇이 되어야 하나? 모든 주체가 다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연다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특히 참여가 어려워 결과적으로 논의 과정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의 이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이처럼 선결되어야 할 사안이 충분히 만족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로, (i) 촛불 국민과의 약속 이행, (ii) 투표율 제고와 혈세 절약, (iii) 차기 대선과 지방선거 시기의 일치를 통해 선거회수 감소 및 비용절감, (iv) 국민을 위한 개헌으로서 권력을 내려놓는 계기 마련이라는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이 중 (i)과 (iv)는 같은 내용이며 (ii)와 (iii)이 같은 내용이다. 크게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이번 개헌은 오로지 국민을 위한 것으로서 국민과의 약속 이행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해야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이유치고는 대단히 옹색할 수밖에 없다. 앞의 이유는 어느 누가 개헌안을 발의하든 똑같은 이야기일 뿐이고, 뒤의 이유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비용을 이야기하는 모순을 야기한다는 측면에서 반민주적 발상이다.
민주주의에는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돈을 아끼기 위한 것이라면 선거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며, 그 비용은 민주주의를 하기로 마음먹은 주권자들에 의하여 ‘혈세’로 마련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통해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마련하려면 선거는 필수적이며,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의제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선거가 이루어져야 한다. 효율성을 도모한답시고 이런 선거 저런 선거를 한 몫에 끝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주장이나 그 전에 발표되었던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의 3월 19일 기자간담회 발언은 민주주의를 절차적 요식행위로 전락시킨 문제가 있다.
(3) 정체성의 문제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현 정부의 정체성조차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현 문재인 정부는 (i) 한반도 평화와 남북 평화통일의 기초를 놓는 정권 (ii) 개혁의 근간을 마련하고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하는 정권 (iii) 정치개혁의 장을 마련하여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정권이라는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판단은 대통령 선거 당시 후보의 공약 및 대통령 당선 이후 지금까지 보여줬던 일련의 정치적 행보를 통해 입증이 가능하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이러한 자신들의 성격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
그러나 청와대 개헌안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자신들의 정체성조차 확인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통일지향을 가진 정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헌법의 구조를 평화와 통일에 적합한 방향으로 정립하는 것이었다. 이를 두드러지게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현행 헌법의 제3조와 제4조를 정비하는 것이었다. 제3조는 영토조항이며 제4조는 평화통일조항인데 이 두 조항이 충돌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평화통일조항이 과연 평화통일을 목적하는 것이냐 방법과 상관없이 흡수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냐는 문제제기가 계속되어왔다. 그렇다면 이번 정부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게 이 모순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줬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는 격랑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만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미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5월 또는 6월 중 조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종전선언 후 조미수교 등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는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한반도에 평화체제의 정착을 모색할 수 있는 전환사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한반도 평화 및 장기적으로는 남북 평화통일의 기초를 다져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이 상태에서 한국정부는 전략적으로 스스로의 정체성과 지향을 드러내는 제도적 기반조성을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전임정부 및 전전임정부와는 달리 이러한 시대적 소명을 자신의 정치적 책무로 인식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문재인 정부는 보다 분명하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면서 더 먼 장래를 전망하면서 국가체계 자체를 한반도 평화체제에 걸맞은 형태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3월 26일 발의된 대통령 개헌안을 보면 이러한 시대적 요청 및 정부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현행헌법 제3조와 제4조의 모순과 긴장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대통령 발의안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발의안은 현행헌법 제3조와 제4조를 그대로 두고 있다. 만일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조미국교정상화가 진행된다면 한국은 조선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외교관계의 형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헌법의 제3조가 온존하고 있는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은 조선의 영토고권이 작동하는 지역, 즉 타국의 영토를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헌법을 가지게 된다. 자칫 다른 나라의 영토를 강제병합하겠다는 의지를 헌법에 피력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현행헌법의 원리 중 하나이자 항구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헌법 원리인 국제평화주의에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와 같은 영토조항이 존재하는 한 장래 조선과의 외교적 호혜대등관계의 수립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으며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들이 계속 존치되는 근거를 방치하게 된다.
촛불 시민들이 보여준 정치참여의 효과를 살리는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들을 헌법적 규범으로 정착하는데 매우 소극적인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대해서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담은 헌법 규범의 강화는 촛불의 의지를 담는 중요한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일 터이다. 하지만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예상보다 낮은 수준에서 이 의제를 소화하고 있다. 법률안의 국민발안과 국민소환은 도입되었지만 현행헌법과 다른 형태의 국민투표는 도입되지 않았다. 또한 헌법개정안의 국민발안제도는 신설되지 않았으며 국회의원 외에 헌법기관에 대한 국민소환도 없다.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최대한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체계에 비추어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주권자들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며 공화국 시민의 자기책임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직접민주의적 제도들의 도입은 긍정적 의미를 가진다. 물론 국민발안제, 국민소환제, 국민투표제로 대표되는 직접민주주적 제도들 그 자체를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진보적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제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는 별개로 그 제도의 운용의 측면에서 제기된다. 이러한 측면을 십분 고려한다고 할지라도,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직접민주제 도입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특히 보도자료를 통해 “직접민주주의 확대 등 국민의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을 염두에 두면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정권의 정체성을 드러내지도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