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에서 주최한 2018년 봄 심포지움에서 발제한 내용을 나누어 올린 것임>
문재인 정부가 강력한 개헌 드라이브를 주도하는 이유는 다음 질문에서 기인한다. 개헌을 유보한다면, 개헌이 가져올 수 있는 효과에 버금갈 정도로 개혁이 가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 정부가 자임하는 스스로의 지위와 성격 및 여기서 기인하는 책무를 이해해야 한다. 현 정부는 자타가 공인하듯 촛불민심이 만들어낸 정부이다. 이는 달리 말해 현 정부는 촛불의 요구를 자신의 책무로 받아 안은 정부임을 말한다. 촛불이 요구한 소위 ‘적폐’의 청산과 사회개혁은 현 정부가 완수해야 할 주요 과제이다.
그런데 이 개혁을 수행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적폐’세력은 온 사회 구석구석에 잠복하여 암약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기득권이기조차 하다. 현재 국회의 구성을 보라. 여기 ‘적폐’ 아닌 자가 몇 %나 될까?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관료사회에 고질적인 ‘적폐’적 관행은 기실 그 ‘적폐’를 통해 이익을 보는 관료들에 의해 자행된다. 이들은 국회가 바뀌든 정권이 바뀌든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청산의 대상으로 존재하지만 결코 청산되지 않았다. 사법부도 예외는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아예 사법부가 정치적 가치마저 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지경에 와 있는데, 정작 정치권이 사법부에 기대는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경유착을 통해 이익을 보는 민간부문이 공공부문과 결탁해 만들어내는 ‘적폐’는 개혁의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부는 효과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도출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헌법을 바꾸는 것이다. 법 중의 법, 최고규범인 헌법을 개정하여 그 안에 개혁을 위한 일련의 방향성을 확정하고, 그 헌법을 기반으로 각종 법제를 정비하여 개혁을 위한 민주적 및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는 촛불의 요구를 완수해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이러한 판단에는 개헌을 개혁의 출발점으로 볼 것이냐, 혹은 개혁의 완결점으로 볼 것이냐의 전혀 다른 기준이 작동한다. 물론 개헌이 개혁의 시점이냐 종점이냐는 식으로 일도양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점을 달리할 때 과정이 달라지는 것은 두 말 할 여지가 없다. 양자의 차이를 살펴보자.
우선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만한 수준의 개혁을 진행한 후 그 결과를 종합하거나 결과물의 양산을 전제로 하여 헌법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개혁을 완성하는 선언으로서 개헌, 다시 말해 개혁의 종착점으로서 개헌이 가지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개혁의 결과를 종합하여 개헌을 한다는 건 그 때가 언제가 될지 가늠할 수가 없다. 거꾸로 소위 ‘적폐세력’들이 농간을 지속해서 개혁이 지속적으로 좌초된다면 개헌의 시기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 헌법으로 기본적인 개혁의 방향을 확정해 놓은 후, 그 헌법의 이름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개혁의 출발점으로서 개헌이 가지는 의의다. 물론 이러한 개헌 역시 시대적 흐름과 민의의 요구가 잘 맞아 떨어질 때 가능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황을 고려할 때, 개혁에 대한 일련의 요청이 분출하고 있는 현재가 개헌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시점이라고 판단할 여지는 충분하다. 바로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을 통한 개혁이라는 로드맵을 설정하고 추진할 동기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 그동안의 정치 지형을 고려한다면, 빠른 개헌을 통해 더 효과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인다. 현재의 국회가 스스로 자성에 기반을 둔 입법을 통해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관료집단도 마찬가지고, 민간 영역에서는 더더욱 갈 길이 멀게만 여겨진다. 이들에게 맡겨 놓는 한 개혁은 항구히 요원하고 개헌은 쿠데타가 나기 전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적폐청산의 엄중한 책무를 부여받은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러한 상태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므로 개헌을 함으로써 개혁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을 가질 수 있다.
이 경우는 헌법이 개혁의 플랫폼으로서 역할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헌정질서 내에서 개혁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헌법 안에 그 원리와 원칙을 천명해 두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헌법이 개혁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부족하다면 개헌을 할 수밖에 없는 당위가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헌법이 가지는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할수록 개혁과제는 개헌의 부산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촛불투쟁의 과정에서 시민들은 다양한 주제의 개혁의제들을 구체적인 구호로 제시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등의 6대 긴급현안을 비롯해 재벌체제의 개혁, 정치개혁, 불평등사회 개혁, 공안통치기구 개혁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일소하라는 명확한 요구가 광장을 덮었다. 이러한 개혁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개정되는 헌법 안에 그 해결책들을 명백히 규정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헌법적 전제를 선결적으로 완성한 후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동시에 자칫하면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이들 개혁과제 중에는 개헌과 직접 관련되는 의제도 있고 관련성이 모호한 의제도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굳이 개헌이 아니더라도 현행헌법 하에서 입법으로 해결 가능한 의제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개혁에 관한 사안은 거의 대부분 헌법의 개정이 없더라도 가능한 사안이며, 현행헌법에서 모호하거나 불완전하게 규정되어 있는 지방분권과 같은 사안 역시 입법으로 해결할 방법은 충분하다.
정작 위험한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들을 개헌사항으로 미루면서 상황을 교착시키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 따라 개혁을 미루기 위해 개헌을 이용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THADD 배치 문제, 지방분권문제, 각종 사회권 보장의 문제 등은 진보와 보수의 입장 차이에 따라 개헌문제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입법사항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렇게 논란이 지속되면 개혁은 정체된다. 이 과정에서 개혁 동력은 추진력을 얻지 못한 채 소진되고 개헌논의만 남은 채 개혁은 실종될 것이다.
집권 1년을 경과하는 동안 개헌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바로 이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개헌을 개혁을 위한 플랫폼으로 삼으면서 개혁의 선결조건으로 하는 과정에서 개헌추진이 교착국면에 빠진 것이 현 상황이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는데, 개헌추진이 벽에 부딪히면서 본격적인 개혁추진이 중단되어버렸다. 개헌논의가 소모전으로 진행되면서 동시에 개혁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개헌도 안 되고 개혁도 안 되는 이중의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지고 있다. 더구나 적폐세력과의 대립지형조차 퇴색되어가기에 이르렀다.
분명히 개헌은 개혁보다는 훨씬 효과적으로 사회적 의제확산과 결정적 변화를 일시에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기는 하다. 사회의 총괄적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 개헌을 할 필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개혁은 사안별, 시기별로 과제해결의 경중이 달라지고 해당 부문 외에 사회적 영향력이 파급되는 것을 실감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개혁과제의 해결을 개헌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방식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개헌으로 일시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하여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