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논란에서 가장 뜨거운 부분은 뭘까? 기본권? 경제민주화? 헌법전문?
아니다. 이런 주제들은 주권자들이 직접 개헌을 논할 때야 비로소 뜨거워진다. 작금의 개헌논란의 주체들은 주권자들이 아니라 정치인들이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는 개헌논란 중에 가장 뜨거운 건 정치인들의 관심사가 뭘지 감이 잡힌다. 다름 아니라 권력구조 개편의 문제다.
싸움의 각은 잡혀 있다. 현재의 대통령제를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이를 변형시킬 것이냐.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제출되는 안이 4년 연임 또는 중임제이다. 변형시키고자 하는 측에서 제출하는 안이 의원내각제 내지는 이원집정부제이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중에 어떤 것이 좋고 나쁘냐는 건 일도양단 하듯이 확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여기다가 이원집정부제니 뭐니 하는 건 다 이 양 제도를 편의적으로 조합한 것이라서 종류도 다양하고 내용도 복잡하다.
참고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절충형으로 이원집정부제가 이야기되는데, 이게 분권형대통령제니 혼합정부제니 권력분산형 대통령제니 이원적 의원내각제 내지 이원집행권제 등 별 희안한 명칭으로도 불리는 참이라 그게 딱 어떤 정형적인 무엇이라고 설명하긴 곤란하니 그냥 이원집정부제라고 이야기하자.
아무튼 이번 싸움붙이기는 대통령제로 할 거냐 내각제로 할 거냐 혹은 이원집정부제로 할 거냐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한국의 사정 상 그냥 대통령제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보고, 이를 전제로 문제제기를 좀 하고싶은 것이 있다.
한국헌법에서 권력구조를 논하는 교과서적 설명은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형태”이다. 대통령제면 대통령제고 의원내각제면 의원내각제지, 이게 무슨 이원집정부제도 아닌데 이요소 저요소 들어갔다는 게 뭔 소린가? 교과서는 현재 헌법에 따라 구성되는 권력구조 중에, 국무총리제를 두고 있고, 행정부가 법률안 제출권을 가지고 있고,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직할 수 있고, 국회는 행정부에 대해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의 해임건의권을 가지고 있는 등의 제도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실질적인 측면에서 이게 무신 ‘의원내각제적 요소’인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런 구조를 가지고 있어봤자 사실상 국회가 정부의 인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도 없으며, 굳이 있다면 청문회보고 열받은 여론이 심상찮을 때나 영향이 있을까, 오히려 정부와 여당이 결탁해서 의회를 거수기로 만드는데 더 큰 기여를 하는 제도 같은데, 이걸 무슨 ‘의원내각제적 요소’라고 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이런 문제의식에 더해서 만일 개헌할 경우 분명하게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바로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 금지다. 지금처럼 국무총리를 비롯해 각부 장관 등 국무위원의 자리에 국회의원 갖다 꽂는 거 이제 그만 좀 하자는 거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보도가 있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권력구조 개편방에 대해 “여당이 국회 다수파를 구성해 국회의원 중에서 국무총리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는 국회 총리 추천제를 제안”한 것이다.
관련기사 : 경향신문 2018.3.16. – “여야 개헌 합의 땐 국민투표 늦출 수도”
심상정 의원은 이러한 방안이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도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 여당과 행정부가 더욱 강하게 결착하는 효과만 낳게 될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대통령제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3권 분립이 기계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이다. 독재자들이 이 효과를 희석시키려다보니 무슨 “한국형 민주주의” 운운하면서 국회를 거수기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 했던 거고. 따라서 지금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여당이 대놓고 짬짜미 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하는 것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의원내각제적 요소” 같은 망상은 권력구조를 설명하는 교과서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유권자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건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권력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취지에서이지, 언제든지 국회를 떠나 대통령의 수족이 되어 정부의 요인이 되어 정부의 입장에서 일하라는 것이 아니다. 현행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국무위원이 되는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잃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의 정원이 300명이라고 할 때, 이 300명 중 일부가 국회의원의 역할을 버리고 국무위원을 하게 되면 정부를 견제할 국회의 힘이 그만큼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건 “의원내각제적 요소”라는 미명으로 칭찬될 일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제 임무를 폐기하는 것으로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게다가 이들은 국무위원을 하다가 그 자리를 물러나게 되면 아무런 중간 절차도 없이 국회로 복귀한다. 자신을 국무위원으로 써 준 대통령 임기 중에 다시 국회로 복귀하는 전직 국무위원들이 정부를 견제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국회의원을 국무위원으로 갖다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 솥 밥 먹던 동료였던 다른 국회의원들이 청문회 등에서 박하게 굴지 않음에 따라 대통령이 큰 무리 없이 국무위원을 데려다가 써먹을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국무위원이 되는 건 다음 정치행보를 위한 유력한 경력을 추가하는 것이 되다보니 권력욕 강한 국회의원이라면 또한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는 거고.
기왕에 개헌 된다면, 국무위원은 대통령이 제 마음대로 뽑아다 쓰게 보장하고, 국회에서는 더 칼같이 이를 견제할 수 있는 형식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게 낫겠다. 하지만 현재 나온 각종 개헌안들을 보면 이 부분은 아예 논의도 되지 않고 있다. 국회나 보수정당 또는 정부에서 나오는 개헌안이야 지들 기득권에 충실한 입장에서 만든 거니 그렇다고 쳐도, 비교섭단체 정당이나 원외정당 혹은 진보단체의 개헌안에서조차 이런 이야기가 없다는 건 의외다.
사실 이것만 봐도 지금 개헌논란이 깊이 있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더 뭘 바라겠는가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