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에 대한 주제 중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기본권의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이냐이다. 현행 헌법을 보면 주권자는 “국민”으로 되어 있고, 기본권의 주체는 죄다 “국민”으로 되어 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의 대밀를 장식하면서 제정한 메이지 헌법에는 기본권의 주체가 “신민(臣民)”으로 되어 있다. 어차피 메이지 헌법이라는 게 천황에게 주권은 물론이려니와 모든 권력을 부여한 헌법이다보니, 인민들이 주체적인 시민으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기껏해야 천황에게 복무하는 신하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이상하게 제헌 이래 한국의 헌법은 9차례나 개정이 되는 와중에도 언제나 주권자는 “국민”이었고, 기본권의 주체는 “국민”이었다. 물론 제헌 당시 “인민”이냐 “국민”이냐를 가지고 따지기는 했지만, 이후 개정에서는 아예 이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다. 뜬금없이 메이지 헌법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메이지 유신 당시 헌법에 명기한 “신민”과 한국 헌법에 적시된 “국민”의 의미가 그다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87년 현행헌법은 과거 독재정권이 요구했던 “국민”과는 다른 의미에서 헌법 상 “국민”을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단어의 발음이 같음에 따라 오해는 남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헌 논란에 이 주체를 국민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개진되는 것은 흥미롭다. “국민”을 인민으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주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헌법이 적용되는 형식을 취할 것인가?

주체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권리의 보장과 의무의 부과를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근대 이래 권리와 의무는 함께 간다는 것이 마치 법체제의 기본적 원칙처럼 이야기되면서, 헌법에서도 기본권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의무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의가 있다. 그런데 이 원칙은 시민법의 원리이기는 하나, 국가체계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적인 의무로서 제공해야 하는 어떤 권리보장을 권리의무의 등가교환관계로 해석한는 것은 맞지 않다. 기본적 인권은 그 주체가 특정 국가에 대해 어떤 의무사항을 제공했느냐와 관계 없이 보장받아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어떠한 의무제공 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권리 이외에, 권리의무의 등가교환관계가 필요한 어떤 사안이 있는가이다. 공화국의 온존과 발전을 위하여 그 구성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를 먼저 봐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국방과 납세의 의무다. 흔히 “국민의 4대 의무”라고 해서 국방, 납세, 교육, 노동의 의무를 든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이 4대 의무를 달달 외워가며 불변의 원칙으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공화국 구성원의 의무라는 건 국방과 납세의 2대 의무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경우,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디까지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예컨대 국방의무를 다하지 않는 외국인의 경우에, 이들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잠재적 적성국의 국민이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데, 그 적성국과의 외교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선거 혹은 투표에서 해당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개헌 할 때 “국민”을 “누구나” 정도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기본권의 주체에 있어서는 보편적 인권을 향유할 주체인 “누구나”와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인 “국민”을 구분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이건 결국 국한된 형태이기는 하나 어차피 현행 헌법과 마찬가지로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하는 것일 뿐이지 않은가?

기왕에 개헌할 때 “국민”을 “누구나”로 바꾸는 것에 동의한다.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볼 때, 현행헌법 제24조와 제25조의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로 할 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선거권과 피선거권(공무담임권)의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정도로 하면 될 듯하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부분만큼은 ‘국민’을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어차피 이 칼럼의 목적이 한국사회 내의 이해당사자간 싸움질을 붙이고자 하는 것이므로, 이 건 역시 싸움질을 할 건수가 되니까 이렇게 이야길 했을 터이다. “국민”을 “누구나”로 바꾼다고 하면 국가주의자들이 경악을 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난리가 날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싸움을 붙이고 싶어도 이게 그다지 싸움질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인식이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기본적 인권은 국민에 한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수준으로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대중적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싸움붙이기라고 해놓았지만, 시간 갈 수록 회의가 든다. 이거 싸움도 안 붙는데 괜히 이러고 있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