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의욕을 가지고 개설했던 “내 삶을 바꾸는 개헌” 사이트의 의견접수가 3월 9일로 마감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constitution.go.kr/
2월 19일부터 3월 9일까지 20일 간 이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주권자들의 의견을 접수했다. 의제로 상정된 안건에 대해 제시된 의견만 50만이 넘는 것으로 보아 일단 흥행에 성공한 듯이 보이긴 한다. 개인적으로도 비록 온라인에서 실시된 의견접수이지만 이러한 과정이 실행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회 개헌특위의 지지부진함에 대응하는 청와대의 이러한 개헌 노력이 실상은 현 정부가 실질적인 개혁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지, 의욕이 있다면 그 실천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과연 지난 촛불민심이 요구했던, 그 광장에 쏟아져 나온 주권자들이 요구했던 바가 현행 헌법 체계의 변화냐(즉 개헌이냐) 아니면 현행 헌법 체계에 따른 헌정질서의 회복이냐 하는 것이며, 개헌을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이 과연 그 열망에 부응하는 적절한 방식이었느냐는 거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문재인 정부는 개헌의제에 개혁이슈를 함몰시킴으로써, 개혁의 동력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고, 개혁을 해야 할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했다. 지난 1년 동안 개헌이슈를 살리는데 들였던 노력을 입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치활동으로 전환했다면 어땠을까?
1년이라는 시간이 짧다면 짧지만, 권력을 장악한 측의 입장에서 보자면 또한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 시간동안 촛불민심을 등에 업은 청와대가 여당과 함께 적극적인 공조를 펼쳐 다양한 개혁사안을 입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면 개헌이슈 살리는 것보다 적은 노력으로 오히려 대중들의 관심을 촉발할 사안은 무수히 많았으리라 본다.
예를 들면, 정치개혁관련사안을 개헌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입법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했다면, 노동이나 복지사안을 개헌의제로 던져놓고 말 것이 아니라 입법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을 경주했다면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안들을 입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정치적 노력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될지 안 될지도 모를 개헌만을 가지고 자신들의 역할을 의견접수창구 수준으로 한정한 채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 지금까지 정부여당의 태도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로써 자신들이 촛불의 요청에 답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는 알리바이를 확보함과 동시에 민감하고 골치아픈 정치적 사안들을 자기 책임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을 바꾸는 개헌”의 의견접수가 끝난 이후 구체적인 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어차피 수순에 따르자면 자문위원회가 접수된 의견을 바탕으로 개헌안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의 개헌안이 제출되지 않을 때 대통령이 제안을 하게 될 것이고, 국회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다. “내 삶을 바꾸는 개헌” 사이트에서 벌어진 일단의 논쟁은 오프라인에서 그다지 반향을 거두지 못할 것이고, 청와대발 개헌안이 제출되더라도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그다지 없다. 이 경우 국회에서 청와대의 개헌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청와대는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통과되지 못한 이유를 자유한국당 등 적폐세력의 준동때문이라고 몰아갈 수 있다.
청와대의 입장에서 어찌보면 꽃놀이패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결과는 결국 개혁을 송두리째 제자리걸음을 걷게 만든다. 개헌이 물 건너간 후 개혁을 논의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개헌에 힘 쏟아부었다가 그게 안 되면서 받게 되는 내상은 개혁을 위한 동력을 상실케 할 것이다. 요컨대 청와대가 밀어부치고 있는 이 개헌정국은 청와대로 하여금 자신들이 할 일을 다했다는 만족감을 갖도록 만드는 외에 한국사회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이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면 좋을까를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개헌논의를 할 거 같으면 굳이 청와대나 국회가 나설 필요가 없다. 그냥 그런 건 시민사회가 논의하는 수준에서 충분하다. 굳이 국회와 청와대가 정치력을 동원해 이 논의를 진행하는 건 그 결과물이 실질적으로 나오도록 해야 할 책무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역량만 낭비하고 주권자들에게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며 결국 이도저도 안 될 개헌논의를 하는 건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의 한계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우리 이니”가 하는 건 무조건 최고고 “문라이트”가 비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야 이것만으로도 해피할지 모르겠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