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더불어민주당이 의총과정에서 개헌안 당론을 논의하던 중, 현행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꾸는 안을 검토했다. ‘자유’라는 단어를 빼자는 것이었다. 당장 난리가 났다. 당명에 ‘자유’라는 말을 쓰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적화통일노선이라며 울부짖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찌라시성 극우매체들은 인민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를 운운하며 전공을 살린 색깔론을 설파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제4조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 게시판을 빌려 간략하게나마 두 차례 정도 언급한 바가 있으므로(“개헌을 한다면 3조와 4조부터“와 “개헌이슈 싸움붙이기 4 – 이적단체냐 평화통일이냐” 참조) 그와 연결해서 싸움박질이 가능할 수 있는 부분을 조금 더 들여다 보겠다.
1948년 제헌 당시, 헌법 전문에서 이 부분은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라고 되어 있었다. 즉 현행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제제도”라고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민주주의제제도”라는 말은 이승만 정권, 장면정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진행된 각 개헌에서도 계속 살아있었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제제도” 대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들어간 개정헌법은 다름 아닌 유신헌법이었다. 자유는 인민을 탄압할 자유 이외에 없다는 자세를 견지했던 쿠데타 유신정권이 자신들의 자유를 선언하기 위해 삽입한 단어가 바로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였던 거다.
이 말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뺀다니까 화들짝 놀라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떠든 자들이 속해있는 정당이 “자유한국당”이라는 것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지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언론을 탄압할 자유, 블랙리스트를 만들 자유, 자본과 결탁할 자유, 4자방 할 자유 또는 정유라 말 사줄 자유 정도를 뜻한다. 그런 자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라는 말이 빠지니 멘붕에 빠지는 이유는 결국 자신들의 적폐할 자유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변인이 ‘자유’라는 단어를 빼겠다고 발표한지 불과 4시간 만에 이를 번복했다. ‘자유’를 빼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우 치사한 짓이다. 기앙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야지. 현행 헌법 전문과 제4조에서 언급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단어는 기실 더불어민주당이라면 진작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소했어야 할 구절이다. 남한의 유력 정당 중 그나마 한반도 평화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정당이라면, 현행 헌법에 규정된 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구절이 남북관계에 있어 절대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모를 리가 없다. 유신헌법에 박정희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집어 넣은 것이 영구분단의 선언임을 생각지 않을 수도 없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흉기가 되는 사례를 우리는 이미 경험해봤는데, 그게 바로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다. 물론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한 개헌사항으로는 제8조 제4항의 개폐여부도 걸려있지만, 이건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아무튼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근원적인 원리는 다름 아니라 ‘전투적 민주주의’라는 것이었다. 이 전투적 민주주의라는 건 과거 독일의 나치와 같은 파쇼적인 정치세력들이 민주주의를 왜곡하거나 심지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할 때 이러한 세력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적에게 민주주의적인 장을 열어줄 필요가 없고, 자유의 적에게 자유를 보장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전투적 민주주의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를 들여다보면 이게 말인지 됫박인지 구분이 안가는 상태가 되는데, 민주주의의 적이나 자유의 적은 뭘로 어떻게 구분할 것이며, 그 구분의 주체는 누구이며, 그 구분의 결과는 ‘반자유 또는 반민주’로 규정된 일군의 무리를 말살하는 것이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사례 필요 없이, 역대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혓바닥 살이 빠지도록 부르짖었던 자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뭔 짓을 했는지를 보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만 보더라도, 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가장 강조했던 자들이 바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였으며, 이들이 주로 한 일이 조작간첩사건이나 민중학살이나 삼청교육대나 뭐 그런 것들이었다는 건 별도의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다.
사실 헌법 제1조 제1항에서 국체를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 것만으로도 그 무게가 범상치 않다. 그 외에 인위적으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끌어다 놓고 그 앞에 벼라별 수식을 붙일 필요도 없다. 차제에 이처럼 그 의미조차 불분명한 단어를 덕지덕지 붙이지 말거나, 정 뭐하다면 제헌 당시처럼 “민주주의제제도”라는 정도로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솔직히 말해, ‘자유’라는 아름다운 말이 박정희나 박근혜, 전두환이나 노태우, 이제와서 ‘자유한국당’ 같은 자들에 의해 때를 타는 게 매우 기분 나쁜 일이다. 이러니까 자유라는 말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게 된다. 적어도 이 자유라는 말이 불의한 자들이 지들 멋대로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취지로 계속 쓰여서는 안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