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터진 개헌이슈가 실은 영 꺼림칙하고 탐탁치 않아서 자꾸 ‘겐세-‘를 놓게 되는데… 기왕에 절차에 대한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생각했던 터라, 이번 싸움붙이기에서는 이걸 한 번 다뤄보자.

현행 헌법은 제69조에 규정을 두고,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선서를 하도록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 선서에 따르면 대통령의 제 1 책무가 바로 “헌법을 준수”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한국 헌정사에서 대통령에 앉았던 자들이 저지른 온갖 위헌적 작태에 경종을 울리느라 이러한 규정을 두지 않았을까 하지만, 웬걸, 이 선서는 제정헌법때부터 존재했다.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나라의 상당수가 한국이나 미국처럼 대통령의 취임선서를 취하고 있다.

어쨌거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삼부 수장 중 유일하게 대통령만이 이 선서를 한다. 3권 분립에 따라 서로 맞다이를 놓는 사이라고는 해도 헌정수호를 자신의 책무로 하여 취임과 동시에 주권자 앞에서 선서하도록 요구받는 직책은 대통령밖에 없다.

헌법 상 대통령 선출 규정과 이 제69조는 연관되어 의미를 가진다. 이 규정을 구조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무엇보다 대통령은 당해 헌법에 의하여 선출된 사람이고, 헌법의 규정에 따라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현행의 헌법을 수호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대통령에게는 무엇보다 “지금 여기”의 헌법이 자신의 존재근거이자 자신이 지켜야 할 보루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제128조에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도록 하고 있다. 형식논리로 보자면 이 규정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존재근거를 부인하고 자신의 책무를 버릴 수도 있다고 보장한다. 즉 자신을 뽑아준 헌법 대신 다른 헌법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며, 지금의 헌법을 굳이 지키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된다. 제69조와 제128조는 이처럼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순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통령제를 둔 국가들 중 대통령에게 독자적인 헌법개정안 발의권을 부여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 베네수엘라, 스페인, 이라크, 폴란드 등이 있다. 그러니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게 우리 현행헌법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현행 헌법은 형식논리상 분명히 이러한 모순구조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실질적으로 헌법현실과 헌법규범의 괴리를 해소하는데 행정부 수장의 역할을 인정한다고 한다면 어디까지가 가능할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백보 양보해서 제69조 선서의 의의를 넓게 인정하여 대통령이 각종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범위가 어디까지일지는 논란의 여지가 남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권력구조의 변화를 요하는 개헌안을 발의한다면, 이 대통령은 개헌 이후에도 계속 대통령의 직을 수행해야 하는가? 언젠가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이 문제를 거론했을 때 일각에서는 논의 자체를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던데, 이건 문제를 삼으려면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자신의 존립근거와 직결되는 권력구조를 변경하는 개헌안을 제출하는 것이 적절한지부터 의문이다. 이러한 개헌안을 낸다는 건 자신을 현직에 오를 수 있게 만든 제도적 근거 자체를 본인이 부정하는 것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런 개헌안을 낼 수 있다고 치더라도 그럼 바뀐 헌법 아래서 개헌안을 제출한 대통령의 임기가 계속 되는 것이 적절한가?

이 문제에 대해 논란이 거의 없는 것이 또하나의 의문이기는 하다. 예를 들어 지난 정권당시 503씨가 임기 초에 권력구조 개편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하긴 뭐 이런 궁금증은 본질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만, 어쨌든 그건 글타 치고.

적어도 권력구조 개편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면, 그 개헌안은 현직 대통령이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또한 권력구조의 변경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권력구조 자체가 바뀐 헌법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분노하여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워낙 이런 주장을 하는 야당도 없을 뿐더러 기껏 주장하는 사람이 나 정도밖에 안 되어 큰 논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함정…

<보론>

앞서 대통령의 개헌안 제안의 범위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했는데, 조금 더 생각할 부분이 있다.

현행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기가 많이 남은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중심으로 하는 개헌안을 제안하고 이 개헌안이 통과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새로운 헌법 아래서 개헌안을 제안한 대통령의 임기는 새 헌법규정에 따라 소급되지 않고 직무를 마칠때까지 보장되는가?

형식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부칙에 현직 대통령의 임기만료에 대한 규정을 삽입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부칙을 규정하는 것이 헌법 본문의 규정이 취한 본래적 의미에 부합하는가? 만일 그러한 부칙이 가능하다면 아예 새로운 헌법의 본문에 “이 헌법의 효력은 개정제안당시의 대통령에게 소급하여 인정된다”는 규정을 두는 건 부당한가?

헌법 제69조, 제128조 제1항 및 제2항이 가지고 있는 이 묘한 모순과 굴절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대통령이 개헌안을 제안하지 않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개헌안을 제안하더라도 대통령은 개헌안의 국민투표 관리의 임무까지를 대통령의 직무로 하고 개헌안이 통과될 경우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하지만 뭐 이런 이야기는 아직 어디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 같지 않으므로 크게 논란이 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