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7년 11월 20일 수원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에서 진행하는 연속강연회에서 강연한 글입니다.

 

시민이 원하는 헌법
정치와 권력구조 그리고 헌법

윤 현 식(노동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

 

#1.
10월 15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오스트리아 국민당이 1당에 등극하면서 국민당 대표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국민당에서 만 14년 전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2011년 통합부 장관과 2013년 외교부 장관에 올랐다. 올해 31세인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국민당에 입당해 청년당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2.
뉴질랜드는 9월 23일 총선을 치렀고, 그 결과 노동당, 녹색당, 뉴질랜드제일당의 연정이 결의되었으며, 이에 따라 10월 19일 노동당의 재신더 아던 대표가 뉴질랜드 총리로 확정되었다. 재신더 아던은 제니 시플리, 헬렌 클락에 이어 뉴질랜드의 세 번째 여성 총리이며, 37세의 여성이다. 재신더 아던은 노동당 당원으로 일찌감치 유력 정치인들의 보좌관을 거쳐 2008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후 3선에 당선되면서 정치활동을 이어왔다.

#3.
오스트리아와 뉴질랜드 모두 선거의 비례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다. 정당의 설립과 활동이 자유로우며, 정당의 가입 및 정당활동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 있다. 특히 뉴질랜드는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이 개정된 이후 보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긍정적인 사회변화를 이끌고 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의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우파 정권이며, 특히 제바스티안 쿠르츠의 대표취임 이후 더욱 우익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해왔다. 반면 재신더 아던의 노동당은 총선을 앞두고 불과 40여일 전에 대표를 바꾼 상태에서 부동산문제 및 청년문제 해결에서 보다 진보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들어가며

한국사회에서 제바스티안 쿠르츠나 재신더 아더는 등장할 수 있는가? 이들보다 먼저 한국에 이름이 알려진 그리스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스페인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이시아스, 홍콩 우산혁명의 아이콘 조슈아 웡 같은 정치지도자는 우리 사회에 과연 현신할 수 있을까?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의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저들의 사례는 그저 사례에 머물 뿐이다. 제도는 주권자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하는데 모든 장치를 동원하고, 사회의 인식은 정치를 모리배들의 협잡 정도로 사고하는데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와 사회적 인식에 대한 비판과 현상 극복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견고한 성벽에 던져진 계란의 운명으로 끝나왔고 여전히 그렇다.

2016년 연말부터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이 ‘적폐청산’을 외쳤고, 2017년 봄에 기어이 ‘적폐정권’을 무너뜨렸다. 연인원 1천 7백만의 촛불이 모여 이루어낸 이 성과는 주권자의 의지가 정치적으로 관철되고 민주주의를 생동하게 하는 것은 주권자의 참여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주권자의 의지, 촛불 시민의 열망이 제대로 결실을 맺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어렵다. 그 의지와 열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주체의 각성과 참여가 지속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인식과 제도가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식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제도의 변화는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가 없다. 특히 사회적 이해관계의 보편성 획득을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제도화라고 할 때, 이 제도화를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정치체제의 변화는 시급을 요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은 제도화를 추동할 정치체제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정작 새로운 정치체제를 발현할 책임은 여전히 구체제에 기생하고 있는 정치권에 맡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적폐정권’을 끌어 내린 주권자가 관심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나서야 할 일 중 하나가 정치제도의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 전체가 주권자의 관심과 참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현행 정치관계법의 문제는 무엇인가? 어떤 법부터 이야기해야 하며, 그 법의 어떤 조문부터 이야기해야 하는가? 더 나가서 정치제도의 문제는 헌법적 문제인가?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하며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흥미로운 점은 이들 각각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대안이 나와 있으며 일정한 합의지점도 도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문제들의 구체적인 내용과 해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중요한 고질적 문제 : 승자독식

한국의 정치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 가장 심각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승자독식체제’이다. 말 그대로 이긴 자가 모두 가져간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민주주의의 원리라는 측면에서 대단히 위험한 요소가 된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의 운영주체가 인민이라는 점, 간단히 말해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 인민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 한편 민주주의의 운영 원리 중 대표적인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그런데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것은 전체 인민의 의사를 고루 반영한다기보다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원칙이다. 이 경우 효율성에 치우친 나머지 사회적 소수의 입장과 견해를 무시하게 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운영원리를 빙자한 다수의 폭력이 되고 만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온전히 존치시킬 수 있는 하나의 원칙은 소수의 입장과 견해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비례성의 원칙이다. 비례성의 원칙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가 평등선거의 원칙이다. 평등선거의 원칙은 다시 두 가지 원칙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1인 1표의 원칙이며, 다른 하나는 1표 1가(價)의 원칙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투표에서는 누구나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하며, 그 표의 가치 또한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선거는 모두 이 원리에 의거해야 하며 그래야만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많은 지지는 많이, 적은 지지는 적게 그 가치에 맞는 자신의 대표를 가져야 한다는 원리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비록 소수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입장과 견해가 사회 전체적으로 배제되거나 매장당하지 않고, 다수와 함께 공론의 장에 머물 수 있어야 하며, 끊임없이 그 존재가 부각될 수 있는 구조를 보장받아야 한다. 더불어서 민주주의 체제는 소수도 언제든지 다수가 될 수 있으며, 다수도 어느 순간에는 소수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하며 인정하여야 한다.

승자독식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원리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 승자독식은 소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번 승부가 갈린 후에는 어떠한 시스템의 변화도 불가능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패자가 된 소수는 승자에게 복종하던지 아니면 그 구조에서 사라져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소수에게 일정한 틈을 열어놓을지라도 그 틈은 승자의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고 심지어 사라질 수도 있다. 승자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틈은 오로지 승자의 여유에 불과할 뿐이며, 제도적으로 그 틈이 확실하게 인정되지 않는 한 소수는 언제까지나 소수의 위치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처럼 소수의 지위가 영구히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투쟁은 격화되고, 공고한 체계를 넘기 위해 유혈이 낭자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정치제도는 승자독식을 당연한 것으로 승인한다. 흔히 정치관계법이라고 통칭하는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이 승자독식의 제도적 장치들이다. 우선 이러한 정치제도의 문제점들로 인해 발생하는 승자독식의 현실은 어떠한지 간단히 살펴보자.

 

승자독식의 현상

공직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대의기구와 대통령 등 대표자들로 나타나는 승자독식의 현상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회의원 선거를 보자.

* 경향신문 201585일자

위 언론사의 기사는 상당히 오래된 자료에 근거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나타난 현상은 다음과 같다.

국회의 승자독식(* 새누리당은 이후 자한당으로 당명 변경 및 바른정당과 분당)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를 보자.

정당 비례득표 득표율 지역구 비례대표 의석계 의석비율 성과가치
더민당 6,069,744 25.54 110 13 123 41.00 1.605
새누리 7,960,272 33.50 105 17 122 40.67 1.214
국민당 6,355,572 26.74 25 13 38 12.67 0.474
정의당 1,719,891 7.23 2 4 6 2.00 0.277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득표율로 계산하면 16% 이상의 성과가치를 거두었으며 새누리당은 12% 이상의 성과가치를 얻었다. 다시 말해 두 당은 지지율에 비해 각각 16%와 12% 이상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반면 국민의당은 지지율의 절반 정도 의석을 확보하는데 그쳤고, 정의당의 경우는 지지율에 비해 불과 4분의 1 정도의 의석을 확보하는데 머물렀다. 물론 이러한 계산은 지역구 선거에서 나타난 지지율은 별개로 계산한 것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나타난 지지율을 따로 분석하지는 않았으나 지역구에서는 또 다른 양상으로 승자독식의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취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는 보수 양당의 지역할거 현상을 심화시키면서 군소정당들의 제도권 진입을 막아버린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소위 ‘사표론’이다. ‘사표론’은 다시 ‘비판적 지지’라는 형식으로 전환되면서 보수 양당으로 표를 몰리게 하는 한편, 여기서도 큰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든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갈리든 간에 패배한 쪽의 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결국 지역구 선거에서도 표의 비례성이라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고 오로지 승리한 측의 표만이 가치를 가지는 표로 남게 된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지역할거구도에 일정부분 균열이 갔다고는 하나 특히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부산과 대구 일부를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에게 내줬을 뿐 큰 의미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 지지기반이었던 광주전남에서 국민의당에게 완패했다. 한편 촛불정국에서 새누리당이 분열하여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뉜 후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다당제 체제가 들어섰다고 하나 이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결국 지역기반의 양대 보수정당이 이후 정계재편에서 어떻게 구획을 정하느냐에 따라 과거회귀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하는 이유는 기존의 승자독식구조가 이루어져왔던 방식 때문이다. 전국단위의 지지율과는 별개로 영남보수당과 호남보수당이 국토를 반분하여 독식하는 구태가 재연되는 한 정치개혁의 가능성은 없다. 양대 보수정당은 이 구도를 통해 이익을 보는 한 현재의 승자독식구조를 개선할 의욕을 가지지 않는다.

 

지방의회의 승자독식

지방자치의 수준에서는 이 불비례성이 더욱 심각해진다. 다음 표는 광역의회 선거에서 불비례성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6회 지방선거 결과

* 신나희, 비례민주주의연대 내부세미나 자료집(2017) 인용

* 갤러거 지수 : 선거제도 불비례성 측정지수, 0에 가까울수록 비례성 보장

지역 갤러거지수 지역 갤러거지수 지역 갤러거지수
서울 23.39 부산 33.60 대구 23.97
인천 12.18 광주 19.37 대전 22.39
울산 32.81 경기 14.00 강원 22.58
충북 11.56 충남 18.17 전북 21.74
전남 19.13 경북 12.70 경남 29.09
제주 9.35 세종 11.99    

 

이 표는 ‘표의 등가성’이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제6회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55.5% 득표율로 울산광역시의회의 95.5%를 차지했으며, 59.2%의 득표율로 경남도의회의 의석을 90.9% 차지했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67.1% 득표로 전남도의회의 89.6%를 장악했으며, 71.3%의 득표율로 광주광역시의회 의석의 95.5%를 차지했다. 지역구 선거가 중심이고 비례대표가 소수인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하다. 광역뿐만이 아니라 기초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타나는 ‘사표론’은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거두는데, 풀뿌리차원에서부터 군소정당이나 신진정치인들의 참여기회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반을 대표하지 못하는 선출직 공직자

대통령, 교육감, 자치단체장 등의 선거는 승자독식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대통령선거만을 놓고 분석해보자.

1987년 이래 현행 헌법 아래서 치러진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인의 총유권자 대비 지지율을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1987-노태우 32.60%

제14대 대통령 선거 1992-김영삼 33.91%

제15대 대통령 선거 1997-김대중 31.97%

제16대 대통령 선거 2002-노무현 34.33%

제17대 대통령 선거 2007-이명박 30.52%

제18대 대통령 선거 2012-박근혜 38.94%

제19대 대통령 선거 2017-문재인 31.60%

이상에서 보듯이, 1987년 헌정체제 이후 7차례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를 획득한 당선인은 단 한 명도 없으며, 3분의 1 이상을 득표한 당선인은 3명에 불과하다.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민주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이러한 결과는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각 선거의 결과를 보면 결국 유권자 전체의 3분의 1의 지지를 얻느냐가 당락을 좌우한다. 그런데 유권자의 3분의 1 수준의 지지라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3분의 2의 유권자가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거나 유보하는 입장에 서있음을 의미한다. 공약추진을 위해 필요한 대중적 지지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일관된 정치행보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거나 입장을 유보한 대다수의 유권자들의 입장과 이해가 이러한 대표자의 체제에서 충분히 공론화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승리를 견인한 3분의 1 정도의 유권자들 외에 3분의 2에 근접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은 승자독식의 체제 아래서 배제된다. 비율의 차이는 있겠으나 교육감선거나 자치단체장, 더 나가 지역구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 효과가 나타난다.

 

승자독식으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

이처럼 표의 등가성을 왜곡하면서 나타나는 승자독식이 어떠한 국가적 및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가? 지역할거에 의거한 보수 양당의 승자독식으로 인해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폐해는 지역감정의 심화일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특히 국가의 대표이므로 지역에 국한된 사고를 넘어 전체 국가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당선이 되는 순간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 선출직들의 숙명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출신의 근본인 지역의 이해를 외면할 수 없다. 결국 지역의 입장을 외피에 두른 채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지역 간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동시에 승자독식체제는 기득권의 강화에 도움을 준다. 한 번 위치에 올라서면 모든 것을 독식할 수 있기에 다른 도전세력보다 우월한 지위에 오를 수 있다. 공직선거법 상 선거운동의 여러 가지 규제는 군소정당이나 신진정치인들에게는 장벽으로 작동하지만 현역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무리가 없다. 오히려 현역들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각종의 프리미엄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여성, 청년,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들에게 정치적 공간을 내준다는 것은 곧장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과 연결된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수자들이 제도권 정치 안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공공연하게 드러낼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인적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승자독식체제가 가지는 문제점 중 하나는 평화, 문화, 복지 등 사회적 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승자독식의 구조에서는 승자의 이해관계가 우선되고 사회전반에 걸친 평화, 문화, 복지 등의 제 문제는 부차화된다. 왜냐하면 승자독식의 구조에서 사회전반에 걸친 평화, 문화, 복지 등의 제 문제는 다음의 승리를 담보해주는 의제이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지지기반을 잃게 만들 수도 있는 위험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다음의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지지기반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우선이지 사회 전반의 보편적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쟁은 불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승자독식이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등장을 막고 기득권층의 독점적 정치행위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보수 양당은 지지의 정도에 비해 과분하게 많은 의석을 확보한다. 반면 군소정당은 지지의 정도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그나마 이것도 원내정당의 경우일 뿐이고, 원외정당은 언제나 사표론에 시달려야 하며, 비판적 지지라는 망령에 의해 지지층의 표마저도 가져올 수 없고, 계속되는 선거패배는 정당으로서의 능력 자체에 대한 대중의 부정으로 이어지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쉽다. 여성, 청년, 소수자 등의 정계진출은 보수 양당의 선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예 길을 열기 어렵고, 기껏 기회가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민주적 정당성의 외피를 필요로 하는 보수 양당의 알리바이 확보에 이용되는 경우가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승자독식구조는 민주주의의 원리와는 배치되며 정치발전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체제이다.

각종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승자독식구조는 해체될 것 같지 않다. 정치관계법이 이 구조를 완고하게 유지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관계법을 개혁해야 할 현직 정치인들은 입으로는 바꿔야 한다고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승자독식구조 안에서 일정한 위치를 점유한 그들이 자신의 기득권에 스스로 칼을 들이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제도들이 어떠한 형식으로 이처럼 왜곡된 정치현실을 뒷받침하고 있는가?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제도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이 이러한 승자독식체제를 보장하는 3대 정치관계법이다. 각각의 문제점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정당법의 문제

현행 정당법은 정당 설립의 자유와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관리체계 안에서 최대한 효과적으로 정당을 관리하기 위한 구조로 짜여 있다.

정당은 최고의 정치결사체이다. 법적으로 보자면 사적인 정치결사 혹은 법인격 없는 사단의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정당은 결사체에 함께 하는 구성원들, 즉 당원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구성된 조직체이다. 그런데 현행 정당법은 정당으로 하여금 ‘국민의 이익’을 담보하도록 요구하고 있다(§2). 정당의 강령과 정책, 그리고 그 정치활동이 ‘국민의 이익’이라는 보편적 이해와 맞닿을 수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정당의 입장에 달려 있으며, 그 입장이 ‘국민의 이익’에 합치된다면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국민의 지지 여부에 따라 정당은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법이 정당으로 하여금 ‘국민의 이익’을 담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요구이며, 정작 정당이 ‘국민의 이익’을 담보하고 있는지 여부를 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처럼 이념적 측면에서의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정당은 존속을 위하여 형식적으로나마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조직을 건설하고 활동한다고 내 걸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정작 현행 정당법은 절차적인 측면에서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할 수 있는 정당의 건설과 활동을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과도한 정당등록의 요건이다.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이 설립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5개 광역지자체에 광역시도당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각각의 광역시도당은 최소 1천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당이 건설될 수 있는 최소요건으로 적어도 5천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만 한다. 더불어 정당의 중앙당은 오직 수도에만 소재할 수 있다. 이러한 규제로 인하여 적은 수의 당원을 보유한 정당은 정당등록을 할 수 없다. 또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정당은 애초부터 설립이 불가능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행 정당법은 기초단위를 지역거점으로 하는 지구당 설립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시도당을 두든 지구당을 두든 정당의 구조에 관한 사항은 각 정당이 알아서 할 일이다. 법으로 규격을 정하여 정당의 내부 구성을 획일화하는 것은 각국의 상황을 보더라도 매우 드문 현상이다.

또한 현행 정당법은 당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19세 미만의 사람은 정당 입당 및 선거운동 등 정당의 활동을 할 수 없다. 외국인은 당원이 될 수 없으며, 공무원과 교원도 정당의 당원이 되기 어렵다. 외국인에게 당원자격을 금지하는 것 역시 타국 사례에서 보더라도 희귀한 것이며, 공무원과 교원의 정당활동 금지 역시 기본권의 제한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한편 현행 정당법은 명문의 규정으로 이중당적을 금지하고 있는데, 당원의 이중당적을 금지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정당의 판단에 따를 일이지 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국가가 법으로 제한할 일은 아니다.

한편 과도한 정당등록요건으로 인하여 부당한 정당등록 취소가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정당등록요건을 갖추어 등록을 하더라도 등록 이후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정당등록이 취소되게 된다. 그런데 정당은 그 부침에 따라 예를 들어 당원이 빠져나갈 수도 있고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 정당의 존속 여부는 정당의 역량에 달린 것이며, 예컨대 선거를 통해 평가받으면서 성쇠가 좌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적 요건을 기준으로 정당의 등록을 취소하게 된다면, 한 때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당의 존립 자체를 부정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정당의 정치활동의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정당정치의 근간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편 현행 헌법은 위헌정당의 해산을 규정하고 있다(§8④). 그런데 정당은 등록과정에서 그 목적과 활동 자체가 위헌성을 가지고 있을 때 이미 등록이 불가능하다. 혁명정당이 왜 등록을 하겠는가?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면 그것은 앞서 정당에게 ‘국민의 이익’을 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등록정당이 위헌정당으로 판정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헌법재판소에 맡겨지는데, 유권자의 직접판단을 외면한 채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하여 정당이 재단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 질서에 부합하는지조차 의문이다. 여기에 더해 정당법에는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정당의 대체정당을 창당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40). 기능을 할 수 없는 규정이다. 위헌정당의 대체정당임을 무엇으로 확인할 것인가? 설령 어떤 신생정당이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정당의 이념과 활동을 승계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고 할지라도, 이 경우 정당창당 자체를 막겠다는 것이 원칙적으로 적절한가는 물론 절차적으로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또한 해산된 정당과 같은 명칭의 정당명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41). 해산된 정당의 강령이나 정책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념적인 지향을 외부에 드러내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도 그 명칭을 쓸 수 없다는 건 지나친 간섭이다.

정당법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은 이처럼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설립의 자유와 정당활동의 자유를 행정관리체계의 틀 안에서만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당법의 구조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에 편리하게 만들어놓은 구조이다. 이 구조에서는 당연히 승자독식의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기성 질서에 도전하는 신진정치세력들은 승자독식의 구조 안으로 편입되기 매우 어렵다.

정치자금법의 문제

정치자금법 역시 승자독식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증인 동시에 승자독식구조를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정치활동에 필요한 재원에 있어서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편향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정당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이 어떻게 충당되고 있는지, 특히 국고보조금이 어떻게 편향적으로 배분되고 있는지를 보면 승자독식구조의 현실을 잘 알 수 있다. 다음의 몇 가지 표를 보자.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15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
* 당비수익은 월정액 소액 당비와 부정기 특별당비가 합산된 것임
* 따라서 [월 당비/1인]은 월정액의 경우 그 액수가 더 낮아질 것임

2015년 정당별 당원 당비납부 현황

정당 당원수 납부자수 납부율(%) 당비수입 월 당비/1인
새누리당 3,020,776 378,463 12.5 11,493,777,232 2,531
더불어민주당 2,671,954 256,197 9.6 6,124,959,140 1,992
정의당 28,603 18,107 63.3 1,919,089,151 8,832
노동당 12,487 5,642 45.2 1,612,673,202 23,820
녹색당 7,449 4,590 61.6 770,465,783 13,988

 

2015년 정당별 국고보조금 지급액

지급시기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1/4 분기 4,885,872,350 4,443,505,830 530,871,820 0 0
2/4 분기 4,892,802,530 4,436,832,320 530,615,150 0 0
3/4 분기 4,893,444,210 4,435,933,970 530,871,820 0 0
4/4 분기 4,898,248,430 4,430,738,100 531,263,470 0 0
총액 19,570,367,520 17,747,010,220 2,123,622,260 0 0
국고비율 49.6% 45.0% 5.4% 0 0

 

2015년 정당별 수입 대비 당비 및 국고보조금 비율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수입총액 75,095,910,740 60,427,788,365 10,147,723,255 2,531,286,881 1,173,036,168
당비수입 11,493,777,232 6,124,959,140 1,919,089,151 1,612,673,202 770,465,783
당비비율 15.3% 10.1% 18.9% 63.7% 65.7%
국고비율 26.1% 29.4% 20.9% 0% 0%

 

20155월 국회의원 의석 현황(*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12월 더불어민주당으로 전환)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의석 160 130 5 0 0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i) 보수 양당의 재정에서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지극히 적다(새누리당 15.5%, 더불어민주당 10.1%)는 점, (ii) 보수 양당의 재정에서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새누리당 26.1%, 더불어민주당 29.4%)는 점, (iii) 보수 양당이 가져가는 국고보조금이 전체 국고보조금 중 95%가 넘는다는 점이다. 국고보조금 지급의 목적은 정당의 정치활동이 가지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보장하면서 정당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목적에 비추어볼 때 현재 국고보조금제도는 정당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차원이라기보다는 거대 정당들의 국고 나눠가지기 수준에서 시행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정치자금법이 아예 이러한 승자독식의 구조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법 제27조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국고가 배분된다. 여기서 국고보조금은 경상보조금(통상 정당에게 배분되는 보조금)과 선거보조금(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총선거, 지방선거 시 정당에게 배분되는 보조금)의 두 종류로 나뉘는데, 그 배분의 내용은 동일하다.

먼저 (1) 국고보조금 중 50%를 교섭단체구성 정당에게 균등하게 분할 배분한다. 그 다음으로 (2)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정당 중 5석 이상 의석 정당에는 각 5/100씩 배분한다. 한편 (3) 5석 미만 및 의석 없는 정당에 대해서는 (i) 의석이 없을 경우 직전 총선 비례 득표 2/100 이상의 정당 (ii) 의석이 있는 정당은 지방선거 비례 득표율 0.5/100 이상의 정당 (iii) 직전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정당 중 직전 지방선거 비례 득표율 2/100 이상의 정당에 대해서는 보조금의 2/100씩 배분하게 된다. 이렇게 (4) 1~3까지 방식으로 지급하고 남은 금액 중 50%는 국회의 의석수 비율대로 배분한다. 그리고 나서 (5) 1~4까지 방식으로 지급하고 남은 금액은 총선 비례 득표비율에 따라 배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 따라 제20대 총선 결과에 따른 국고보조금의 배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자. 세부 내역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것이나 전반적인 배분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먼저 (1) 현재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4개 정당이므로 국고보조금 중 50%는 이들 각 정당에 우선 1/4씩 배분. 여기서 이 4개 당은 국고보조금 총액 중 각각 12.5%씩을 나누어 가진다. 다음으로 (2) 정의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하였으나 6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단 국고보조금 총액 중 5%를 가지게 된다. 한편 (3) 민중당과 대한애국당은 각 2석과 1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으나 위 (3)의 (i) ~ (iii)에 해당하는 사항이 없음으로 기본적 배분에서는 제외된다. 이후에 (4) 남은 45% 중 절반(22.5%)을 의석수대로 나눠 가지게 되는데, 이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총액의 9.2%, 자유한국당은 8.1%, 국민의당 3%, 바른정당 1.5%, 정의당 0.5%, 민중당 0.2%, 대한애국당 0.1%를 가져간다. 그리고 나서 (5) 잔여분은 직전총선 비례선거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므로 직전 총선 참여 정당 중 비례후보를 출마시켰던 정당은 자유한국당(총선 당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4당이므로 이 당들이 비례득표율에 따라 배분받게 되는데, 더불어민주당 7.54%, 자유한국당 5.75%, 국민의당 6%, 정의당 1.6%를 배분(잔여분 계산은 생략)받는다. 따라서 국고보조금 중 총액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은 29.2%, 자유한국당은 26.4%, 국민의당은 21.5%, 바른정당은 14%, 정의당은 7.1%의 국고보조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 그 중에서도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에게 우선 지급되는 지금의 국고보조금 제도는 경상보조금만으로도 이렇게 승자독식의 현상을 나타내지만, 선거보조금은 더욱 심각하다. 선거를 위해 뛰는 정당 중에는 원외정당들이 있지만 원외정당들은 선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알아서 충당해야 한다. 평상시에 국고보조 없이 알아서 충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경상보조금이 원내활동에 대한 지원이라고 이해하더라도 선거보조금마저 원내정당에 한정되는 현상은 결국 기득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국고보조금 제도가 기능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국고보조금만이 아니다. 정당기탁금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는 기탁금을 내는 개인의 정치적 의사와는 관계없이 돈이 사용된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 기탁금을 규정하는 정치자금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2조(기탁금의 기탁) ①기탁금을 기탁하고자 하는 개인(당원이 될 수 없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한다)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읍·면·동선거관리위원회를 제외한다)에 기탁하여야 한다.

제23조(기탁금의 배분과 지급) ①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기탁금의 모금에 직접 소요된 경비를 공제하고 지급 당시 제27조(보조금의 배분)의 규정에 의한 국고보조금 배분율에 따라 기탁금을 배분·지급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원외정당의 활동에 도움이 되기 위해 후원을 하고 싶을 때 기탁금을 내봐야 본인이 원하는 정당은 하등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기탁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수금하고, 그렇게 모인 돈은 국고보조금 배분율에 따라 배분된다. 국고보조금의 문제에서도 보았지만, 원외정당의 경우에는 이 기탁금제도의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는 본인이 원하는 정당에 직접 후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정치자금법은 공직선거 후보가 되려는 사람 또는 국회의원 등 현직에 있는 개인의 후원회만 들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중앙당에 후원하지 못하니 당연히 시도당이나 법적 기구로 인정받지 못하는 당협 등에는 후원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으로 결정받았는데, 헌법재판소는 중앙당 후원회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2015.12.23. 2013헌바168).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법 개정이 임박했지만, 중앙당 후원에 국한된 개정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며 시도당이나 지구당 후원 등 풀뿌리 조직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잔존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상당한 문제점들이 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현행 정치자금법이 어떻게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공고하게 유지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는 충분할 것이다.

 

공직선거법의 문제

3종의 정치관계법 중 드러내놓고 승자독식체제를 보장하는 법은 역시 공직선거법이다. 공직선거법은 그 구조 자체가 위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며, 세세한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차다. 대표적인 부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공직선거법은 유권자의 권리를 세세하고 과도하게 제한다. 연령에 따른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보자. 선거권의 경우 만 19세 이상이 되어야 선거권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 규정은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데, 선거권이 있어야 정당가입이 가능하게 만들어놓은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19세가 되지 않은 사람은 정당활동을 할 수도 없다. 한편 이 규정에 따라 선거권이 없는 19세 미만의 사람은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 더구나 국회의원에 출마할 자격은 25세가 되어야 하고 대통령이 되려면 40세가 되어야 한다.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대가 이렇게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서두에 언급했던 해외사례와 같이, 청년들이 활발하게 정계에 진출하여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가능성은 애초에 상실된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현행 제도에서는 31세의 청년이 십여 년의 정당활동을 거친 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도 문제다. 각 규정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검토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판단하자면, (i) 선거관리위원회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 (ii) 가장 활발하게 정강정책을 펼쳐야 할 선거시기의 운동이 오히려 평상시 정치활동보다도 더 많이 제한을 받는다는 점 (iii) 유권자들에게 직접적인 선전홍보의 과정을 사전에 봉쇄한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실질적으로 이처럼 과도하게 선거운동의 세밀한 부분까지 법으로 규정하여 제한한다는 건 관리차원에서도 비효율적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권력과 자본을 동원하여 선거과정을 왜곡시켰던 상흔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고, 그러한 구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에서 이처럼 선거운동의 내용을 상세하게 규정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관리자체가 어려운 규정을 통해 선거관리위원회의 권한만 강화시켜주면서 실질적으로는 효과도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변화된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규정을 그대로 두는 것은 유권자의 역량을 무시하는 국가후견주의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다양한 정치적 견해만큼이나 다양한 선거운동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 획일적으로 운동의 방식을 정해놓는 것이 현대사회에 적절한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민주공화국의 원리가 반영되지 않는 승자독식의 정치체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대의기구의 구성과정에서 비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소수자의 입장과 견해는 선거가 끝나는 즉시 주변화된다. 대의기구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견해는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소수라도 대의기구에 편입될 가능성이 사라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 현행 공직선거법의 체제다.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및 이와 유사한 자치의회 선거제도가 그렇다. 형식적으로 비례대표를 선출하고 있지만, 그 수가 매우 적고 지역구 소선거구를 중심에 놓고 있는 현행 선출방식은 표의 등가성 및 비례성을 담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단순다수대표제로 인하여 대표자로 선출된 사람과 정치세력의 민주적 정당성이 불안정하다는 문제가 있다. 앞서 보았듯이, 현재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면 총 유권자의 3분의 1 정도 수준의 지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지경이다. 당선자를 지지한 3분의 1 이외의 유권자로부터 정치적 결단과 정책을 지지받을 수 있어야 민주적 정당성을 통한 정치활동의 동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로는 이러한 동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는 대안이 결선투표제도다. 결선투표제가 효율이 떨어진다면 선호투표제도 고려할만 하다. 하지만 여전히 결선투표제의 도입 등에 대해서는 기득권으로부터의 저항이 큰 상황이다. 이처럼 다수의 승인이 전제되지 않는 유권자 일부의 대표체제는 근간의 취약성으로 인하여 정책의 추진에 상당한 곤란을 겪게 된다. 더불어 한편으로는 소수의 입장이 배제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의 입장이 과잉대표되는 구조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또 하나 검토되어야 할 것은 현행 공직선거법 체제로 인하여 대의기구 구성원들의 독점적 권력행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00명 국회의원 정수 체제에서 국회의원들은 당선을 위해서는 경쟁하지만 국정을 위해서는 경쟁이 부담스럽지 않은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된다. 유권자와 직접 소통을 통한 정책의 홍보와 실현 등 활발한 경쟁구도에서 정치활동을 벌이지 않더라도, 언론의 노출빈도와 화면의 설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음 선거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독점구조를 해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원 정수의 증원이다. 현재 300명 의원정수는 제헌 당시 공공연하게 설파되었던 ‘십만 선량’의 취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외국의 대의기구 구성과 비교할 때에도 현저하게 그 수가 적다.

국회의원 등 대표자의 정수 문제 : 독점적 지위의 보장

국가 인구 GDP/1인 하원의원 하원의석/인구 상하의원 상하원의석/인구
그리스 10,992,589 21,722 300 36,642 300 36,642
네덜란드 16,915,000 50,930 150 112,767 225 75,178
대한민국 51,342,881 26,482 300 171,143 300 171,143
독일 80,925,000 45,091 620 130,524 689 117,453
벨기에 11,239,755 47,261 150 74,932 210 53,523
스페인 45,454,053 28,944 350 132,754 616 75,429
영국 64,800,000 42,423 650 99,692 650 99,692
이탈리아 60,788,845 35,243 630 96,490 945 64,327
캐나다 35,702,707 52,270 308 115,918 413 86,447
포르투갈 10,477,800 21,429 230 45,556 230 45,556
프랑스 66,109,000 42,339 577 114,574 925 71,469
호주 23,780,000 65,600 150 158,533 226 105,221

* 강남훈, 평등선거 구현을 위한 선거법 개정 방향(2015) <표8> 일부 수정
* 영국 상원은 구성원이 800명에 달하나 귀족원으로서의 의미 외에 입법부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없어 제외

물론 지금 상황에서도 국회의원이 하는 게 뭐 있냐는 비판과, 정치혐오에 입각하여 국회의원 정수를 축소하자거나 심지어 국회해산론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증원하자는 주장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국회구성에 변화를 주고 국회의원에게 제공되는 특혜(국회의원 특권과는 다름을 유의하자)를 상당수 축소한다면, 정원을 늘림으로써 국정을 위한 경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단지 공직선거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회법 등 제반 정치관계법의 개정까지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현재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실에 인턴까지 포함하여 9명의 보좌진을 구성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조가 가져오는 폐해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국회의원실 하나가 아예 하나의 정당처럼 구실을 하게 됨에 따라 정당정치가 실종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특혜를 대폭적으로 축소하고, 정당중심의 정치를 가능하게 만들면서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에도 한국은 의원 1인당 인구비율이 월등히 높다. 표에는 없지만 핀란드의 경우 2015년 기준 인구가 약 5,475,526명인데 국회의 의석은 200석이다. 인구 2만7천여명 당 의원이 1명 꼴이다. 이렇게 따지면 한국은 1,800명 이상의 의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가 간 현실과 역사 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보더라도 한국의 국회의원이 얼마나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는 명확하게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적 대안

그동안 정치관계법의 개혁방안에 대한 논의는 넘쳐날 정도로 많이 나왔다. 그 대안들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당법의 대안

  • i) 중앙당의 수도 소재 의무규정은 폐지
    ii) 시도당 규정 및 당협 설치 규정 폐지 : 정당의 조직은 정당이 자발적으로 결정
    iii) 법정 발기인의 수 폐지 또는 최소화 : 해방정국에 만들어진 미군정법률 55조조차 발기인의 수는 3인 이상이었다.
    iv) 법정 시도당의 수 폐지 및 법정 당원의 수 폐지 또는 최소화
    v) 정당연합 혹은 연합정당을 구성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
    vi) 당원 자격에서 연령 제한, 국적 제한, 공무원 및 교원 제한 폐지
    vii) 이중당적 금지조항 폐지
    viii) 대체정당 금지 및 유사명칭 금지 규정 폐지 등

정치자금법의 대안

  • i) 기탁금제 폐지 및 중앙당, 시도당, 지구당 후원회 허용
    ii) 국고보조와 당비 매칭펀드제 도입 : 정당의 재정자립 강제
    iii) 선거보조금 폐지 및 선거완전공영제 실시
    iv) 노동조합 정치자금 기부 허용
    v) 정치자금 기부자 명단 상시 공개

 

공직선거법의 대안

  • i) 승자독식체제 해소 및 비례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혁 : 연동형 비례대표제 또는 전면비례대표제
    ii) 대표성 확보를 위한 제도개혁 : 결선투표제 또는 선호투표제 도입
    iii) 국회의원 정수 증원 : 국회의원 특혜의 폐지와 연동
    iv) 기탁금 폐지 또는 대폭 감액
    v) 각종 선거운동 규제 폐지 : 호별방문, 비례대표 연설대담 허용 등
    vi) 투표권 보장 : 투표일 법정공휴일 지정 및 법제화
    vii)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를 임기 중으로 연장

 

정치관계법의 문제는 헌법적 문제인가?

2016년 하반기부터 광장은 촛불로 가득찼다. 촛불은 적폐의 청산을 요구했고, 적폐를 양산하는 반민주적인 정권을 비판했다. 결국 촛불은 부패한 정권을 끌어내렸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을 경유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사회 일각에서는 헌법의 개정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개헌 작업에 착수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중 상당수가 헌법의 개정을 공약했고,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6월 국민투표를 선언하면서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촛불광장의 요구가 새로운 헌정질서를 요구한 것인지, 아니면 헌정질서의 파괴를 막자는 것인지를 두고 볼 때, 즉각적으로 개헌이 필요한 시기인지는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해 촛불의 요구를 제도적으로 완성하자는 주장을 펼치지만, 촛불광장의 민의를 개헌의 요구로 추정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또한 회의적이다.

한편 무수한 개헌과제 중에서 정치제도와 관련된 사안에만 주제를 한정할 때, 과연 정치제도의 혁신은 개헌으로만 가능한 것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라도 개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이제부터 정치개혁운동은 개헌운동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개혁이 굳이 개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개혁에 쏟아 부어야 할 동력이 개헌으로 몰려갔을 때, 개헌이 성공하지 못하면 개혁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정치개혁의 상당 부분은 개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승자독식체제를 영구존속하기 원하는 기득권층을 어떻게 파훼할 것인지이다. 이 부분은 운동의 차원에서 거론될 문제이므로 다른 시간에 논의할 것이다. 다만 내용적 측면에서 개헌이 필요한 부분과 필요치 않은 부분을 간략히 검토해보자. 현행 헌법 규정 중 직접적으로 정치제도와 관련되어 있는 규정은 다음과 같다.

정치관계법과 직접 관련 있는 헌법의 규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7조 ①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제8조 ①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②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③정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

④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제25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

 

제3장 국회

제41조 ①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

②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

③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4장 정부

제1절 대통령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②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③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④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⑤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7장 선거관리

제114조 ①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중에서 호선한다.

③위원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④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⑤위원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⑥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안에서 선거관리·국민투표관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으며,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내부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⑦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115조 ①각급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인명부의 작성등 선거사무와 국민투표사무에 관하여 관계 행정기관에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

②제1항의 지시를 받은 당해 행정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

제116조 ①선거운동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하에 법률이 정하는 범위안에서 하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②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

 

제8장 지방자치

제117조 ①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②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

 

제118조 ①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

②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쟁점이 되는 각종의 문제들 중 상당수는 개헌을 요구하지 않고,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의 개정으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헌법개정사항이라고 주장되는 몇 가지 문제만 살펴보자. 우선 결선투표제의 문제다. 결선투표제는 헌법 개정 사안인가? 헌법해석적으로 그리고 법리적으로 이 문제는 상당한 입장의 대립이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자.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선거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②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③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제67조 제2항이다. 규정에 따를 때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라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이렇다. 4000만 유권자가 모두 투표를 했는데 출마자 중 2명 이상이 똑같은 표를 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후보가 10명 나왔는데 그 중 3명이 똑같이 1000만 표를 받는다는 것은 확률계산으로는 가능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능에 가깝다. 이러한 규정이 나오게 된 이유는 둘 중의 하나인데, 이 규정을 만들 당시 성안자들이 제대로 상황인식을 하지 못했기에 발생한 실수이거나, 아니면 법률로 규정할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헌법에 규정하는 성실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입법적 해결로서 공직선거법에 결선투표제 내지 선호투표제를 규정하고, 다만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가 예외적으로 발생했을 경우에만 국회에서 결선투표를 하게 하면 된다. 사실 현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에는 결선투표가 헌법개정사안이 아니라고 했던 바가 있지만, 지난 대선 전에는 헌법개정사안이라고 입장을 바꾼 바가 있다.

한편 국회의원의 정수 변경이 헌법 개정사안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대통령 결선투표보다는 오히려 주장의 근거가 박약한데, 현행 헌법은 제41조 제2항에서 단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라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규정에 따를 때,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에서 정하면 될 일이고, 그 수가 300이든 2000이든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보다 더 심각하게 헌법 개정사안이라고 하는 부분은 국회구성의 방식이다. 즉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가 중심이 되어 있는 현행 선출방식을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전면 비례대표제로 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헌법은 제41조 제3항에서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헌사항이라고 하는 측에서는 여기서 ‘선거구’라는 것에 주목하는데, 과연 저 선거구라는 것이 지역구 선거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는 당시에 선거구라는 것은 오로지 지역구 외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구라는 것은 단지 소선거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광역선거구도 될 수 있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선거구를 만들 수도 있다. 더 나가 전면비례대표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비례대표를 광역 선거구단위로 선출할지 아니면 전국단위로 선출할지(이 경우에는 전국이 선거구가 된다)는 법률사항이며 헌법과 충돌하지 않는다.

다만, 유일하게 헌법개정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위헌정당해산제도이다. 위헌정당 해산은 아예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를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 개헌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외에 다른 사안은 일체 개헌사안이라기보다는 법률사안이다. 종국에는 개헌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헌을 할지라도 정치개혁이 개헌에 따라 진행되거나 완료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헌법에 이상의 문제들을 일제히 정리하여 완전한 규정을 갖추어놓는다고 할 때, 향후 정치의식의 변화와 사회환경의 변동에 따라 유동적인 대응이 충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정치개혁의 문제를 개헌의 문제로 등치시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1987년 현행 헌법이 들어선 이후,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정치관계법 체제에 대한 문제지적은 계속되어왔으며, 2천년대 들어와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목소리가 계속 높아져왔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 하면, 민주노동당 등 군소정당이 힘을 쏟아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했더니 비례대표의 수는 오히려 줄어드는가 하면, 지방의회 구성에서 4인 선거구는 죄다 사라지고 3인 선거구도 희귀한 상태가 되면서 지방의회의 양당 독식구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헌법이 문제여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

개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양당 독식구조, 300명 독점구조를 먼저 깨는 작업이 수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오늘날 개헌을 이야기하는 중심주체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과연 이러한 독식구조, 독점구조가 깨질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그 주체들이 바로 지금의 승자독식상황에서 기득권을 향유하면서 승자독식구조를 유지함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아닌 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형국이다.

 

나가며

저잣거리 술자리에서 안주 다음으로 가장 많이 씹히는 사람들 중 한 부류가 정치인들이다. 취한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어느 정치인의 이름이라도 올라오면, 이러니저러니 하는 평가가 종횡하다가 여차하면 ‘개’와 ‘쌍시옷’이 들어간 육두문자가 난무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술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 간에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에나 가능한 간극이 생기기도 한다. 술자리뿐만이 아니다. 명절 끼고 귀성하여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 간에 결코 해서는 안 될 이야기의 주제가 종교이야기와 정치이야기라고 하지만, 하필 명절에는 정치인들이 대거 곳곳에 출몰하여 민심 훑기에 여념이 없는지라 솔잖게 정치이야기가 밥상에 오른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재산상속 순위에서 밀리거나 심하면 “호적을 파는” 불상사가 생길 위험도 있다. 이런 부분만 본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모자라기는커녕 정치과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세간의 무수한 이야기의 대부분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인상비평이거나, 어떤 스캔들에 대한 구설수거나, 아니면 “정치하는 놈들은 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내용들이 차지한다. 물론 사회적 의제가 되는 여러 사안에 대하여 논의하는 일도 있지만, 그러한 중후장대한 이야기들은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이야기하려 해도 이야기할 밑천이 많지도 않다. 주로 자신의 이해와 관련되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겠지만, 자신과 이해관계가 별로 없거나 관심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실상이다. 구경거리 중에 싸움구경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가장 재미있게 생각하는 구경거리라고 하지만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싸움질은 재미보다는 반감을 사기에 알맞다. 그러다보니 정치사안에 대한 깊은 논의는 고사하고 정치라는 말만 나와도 지긋지긋하다는 푸념이 쉽게 튀어나온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정치평론이 횡행할지라도 그것이 ‘정치과잉’이기보다는 정치혐오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다른 형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와중에 개헌은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대중을 사로잡는다. 승자독식구조 안에서 기득권을 만끽하는 정치세력은 마치 개헌이 정치개혁의 바로미터인 듯이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개헌이 되면 정치개혁이 이루어질 것으로 대중들이 믿을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치개혁에 정치관계법의 개혁은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기득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이원집정부제니 내각제니 책임총리제니 하는 쪽에 힘을 싣고 있다. 개헌이 물 건너가면? 정치개혁 논의도 거기서 중단된다. 개헌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과 개헌은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다. 하지만 개헌논의에 휩쓸리는 와중에 개혁이 제 방향을 견지할 수 있을지 여부는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말 그대로 정치계에서 적폐를 청산하고자 원하는 주권자들의 관심과 참여에 달려 있다. 정치혐오와 정치적 무관심을 떠나 정치가 바로 내 밥줄을 쥐고 있다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주권자들의 예리한 눈과 호된 채찍질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가 바뀌면 내 삶이 바뀐다는 것을 각성한 주권자들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주인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