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정책위원 윤현식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5천만을 경악하게 만든 윤석열의 허무맹랑한 비상계엄 선포는 맨몸으로 계엄군의 총구를 막아선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으로 불과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자신을 국가로 오판한 윤석열의 망상에서 비롯된 셀프 쿠데타는 실패했으며, 내란을 획책한 수괴와 그 공범들은 이제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항간에서는 윤석열과 그 일당이 자행한 내란을 헌정질서 파괴행위로 규정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윤석열은 헌정질서의 파괴자가 아니라 붕괴된 헌정질서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멀쩡히 잘 돌아가던 헌정질서를 윤석열이라는 괴물이 불현듯 파괴한 것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의 이념이 작동을 멈추고, 인간의 존엄과 만인의 평등을 지향으로 삼아야 할 헌정질서가 심각하게 무너져 내린 바로 그곳에서 윤석열의 집권이 가능했다.
2016년~2017년의 겨울, 엄동의 광장에 선 수백만의 촛불은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박근혜 정권의 뒤를 이은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를 ‘촛불정권’이라 칭하며 공정과 정의를 내걸고 개혁을 주도할 것처럼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 이후의 세계가 달라지기를 염원했던 촛불을 배신했다. 허무하게 끝난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비롯해 용두사미에 그친 최저임금현실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의 최저임금산입, 해고기준 및 취업규칙변경기준완화 등 퇴행적 노동정책으로 노동환경은 급속히 열악해졌다. 차별금지법을 한정 없이 뒤로 미루고, 전월세 사기로 고통받는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는 지지부진했지만, 집권세력 구성원의 치부를 덮기 위해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국론을 어지럽히는 데는 적극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박근혜 정권 이래 중단없이 이루어진 헌정질서의 파괴의 현실이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면서, “기회는 평등할 것, 과정은 공정할 것,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문재인 정권의 이념은 식언이 되었고, 그 정권이 내걸었던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은 윤석열 정권으로 귀결되었다.
윤석열 정권의 헌정질서 파괴행위 역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취임 초부터 건설노조와 화물연대를 탄압하였고, 노동시간을 주 69시간으로 연장하는 등 노동현장의 시간을 전태일 열사의 시대로 돌려놓았다. 끊임 없이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였고 성별 분열을 조장했다. 이태원 참사, 아리셀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대형 인명사고가 끊임없이 벌어짐에도 음로론으로 치부하거나 안일한 대응을 지속했다. 개혁을 빙자한 의료대란을 일으켜 공공의료를 붕괴시키고 국민의 건강권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은 김건희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사롭게 행사했다. 이러한 헌정질서 파괴행위의 정점이 바로 터무니없는 비상계엄이었다.
윤석열 정권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동안, 한국 정치의 양대 세력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동참해 왔다. 윤석열과 김건희를 보위하기 위해 당력을 총동원하였고, 윤석열의 헌정질서 파괴행위를 적극 옹위한 국민의힘의 죄과를 별도로 따질 필요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한편으로는 윤석열에 의한 김건희 방탄 정국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이재명 방탄을 위해 당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면서도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국민의힘과 한치의 차이도 없었다. 반도체산업 육성을 빌미로 노동시간 연장을 위한 근로기준법 예외조항에 동의한다거나, 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유예 등에 합의하고, 주주의 배만 불리게 될 상법 개정안을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당장 국민의힘과 합당을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퇴행적이면서 반민주적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수호해야 할 헌정질서가 과연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자멸을 선택한 윤석열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다음의 세계는 어떠해야 할지를 논해야 한다.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것이 박근혜 이전의 시대로 회귀해서는 안 되었던 것처럼, 윤석열을 끌어내린 후의 세계가 문재인 정권의 재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이전의 나라와 윤석열 이전의 나라는 우리가 수호해야 마땅한 헌정질서가 작동하던 세계가 아니다. 노동자 민중의 존엄성이 보장받는, 만인이 평등하며 자유로운 민주공화국은 아직 도래한 적이 없다. 기득권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체제를 헌정질서라는 당의정으로 덮어 씌워놓은 현실을 폭로하고 깨트릴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진정으로 몸을 던져 지켜내야 할 헌정질서가 도래할 수 있다.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리와 행복이 보장되고, 당면한 기후위기에 철저하게 대응하며, 탈성장의 가치가 전제되는 경제의 민주화와 공공성 강화를 통해 사람들의 삶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지는 세계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망상을 현실로 만들려던 윤석열을 처단하는 것은 그 시작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세계가 또다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때가 되면 권력을 주고받으며 기득권을 영구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세계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깃발을 들고 광장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87년 이후 지속되어 온 보수양당의 권력분점을 종식시키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함이다. 사회를 개혁하고 세계를 변혁하기 위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담대한 걸음으로 출정하자. 투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