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원, 무엇이 먼저인가?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윤현식
윤석열에 의해 노동법원 설치가 사회적 의제로 촉발됐다. 그러다보니, 항간에서는 왜 노동계나 진보정치 측이 노동법원 의제를 먼저 제시하지 못했느냐는 질책이 나오고 있다. 보수의 핵심에서 노동법원 설치가 주장되는 동안 뭘 했냐는 의미다. 하지만 노동법원 설치에 관한 논의는 노동계에서는 매우 오래된 의제이고 정치권에서도 이미 더불어민주당조차 꾸준히 법안을 내오고 있기도 하다. 노동법원 설치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한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윤석열이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동안 왜 노동법원 설치요구가 진보진영이나 노동계에서 분출하지 않았는지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노동·정치·사람’의 조직화를 준비를 하면서, 향후 주력사업으로 세 가지 운동을 검토했었다. 이때 사업으로 제안되었던 운동은 (1) 노동자 정치세력화 조직 운동, (2) 노동법원 설치 운동, (3) 노동악법 개폐 운동이었다. 이 세 가지 사업을 모두 하면 좋겠지만, 조직 자체가 작은 규모였고, 역량에 걸맞은 사업의 구상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모색해야 했다.
이 가운데 우선 노동악법 개폐운동은 단체의 주력사업이라고 하기보다는 상시적인 사업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미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 다른 단위와 연대를 강화하는 선에서 실천방향을 설정했다. 남은 두 과제 중 노동·정치·사람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중심사업으로 선택했다. 특히 지역과 현장을 중심으로 노동조직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운동으로써 지역정당 운동과 이를 골자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운동을 핵심 사업으로 채택했다.
노동법원의 문제는 근본적인 측면에서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주요 사안이 있었는데, 첫째는 노동법원이 설립될 때 발생하게 될 노동문제 관련 심급의 문제, 둘째는 노동관계법의 문제, 셋째는 사법개혁의 문제였다. 이러한 주요 사안들에 관한 나름의 연구와 입장의 정립이 우선이었고, 이를 사회의제로 승화시켜 운동으로 만들어나가는 건 조직의 역량상 장기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우선 노동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심급의 중복 문제이다. 현재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하면 노동자는 구제신청 등 절차를 밟아야 한다. 먼저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한다. 구제신청이 기각되면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을 거친다. 여기서도 신청이 기각되면 이후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고등법원과 대법원까지 절차를 밟게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법원에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절차는 자칫 5심제를 거쳐야만 하는 지난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부당해고 등의 사건은 당사자인 노동자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로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해결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처럼 몇 단계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경제적 위난에 닥친 노동자로 하여금 절차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도록 강제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용자 측에서 구제절차를 일부러 장기화하는 경우도 수다하다. 노동법원이 생긴다면 적어도 현재의 단계보다는 거쳐야 할 절차를 줄이고, 결정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대폭 단축해야만 그 효과가 있다. 노동법원이 관할할 수 있는 노동문제가 어디까지인지의 논의는 열외로 하더라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소송이라는 건 그 자체로 노동자에게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노동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노동위원회가 합리적이고 정당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준다면 사실 이것보다 더 바람직한 건 없다. 통상 노동위원회의 결정은 사건 접수 후 2개월에 나오게 되는데, 판단의 적절성과 효과가 충분하다면 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가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게 노동자에 대한 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중앙노동위원회는 노동위원회에 제기된 노동분쟁 사건 중 96.6%가 지노위-중노위 단계에서 종결된다고 밝혔다. 지노위의 사건 처리 기간도 평균 47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시급한 건 노동위원회를 더 활성화하면서, 부당하고 억울한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서도 결정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노동법원을 설치할 경우, 실질적으로 5심제가 이루어지는 현행 절차를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노위의 기각 이후 중노위를 거치지 않도록 하고, 특허법원처럼 재판을 노동법원과 대법원의 2심제로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3심제가 이루어지게 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부득이 재판으로 가더라도 3심을 넘어가는 절차를 강요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특히 노동법원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지노위의 결정이 나오는 시간에 준하도록 해야 한다. 절차의 중복이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권리구제가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이로 인해 노동자의 비용과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노동법원을 굳이 설치할 이유가 없다.
다음으로 노동관계법의 문제다. 달리 말하면 입법부의 문제다. 노동위원회를 강화하고 노동법원을 설치한다고 한들 노동관계법 자체가 엉망이면 아무 의미가 없다. 아무리 정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떠들어본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법원은 그 법의 범위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관계법 역시 마찬가지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미적용, 비정규 불안정 노동을 합법화해주는 각종 법률, 노동3권을 무력화시키기 있는 노조법, 쟁의행위를 빌미로 손배가압류를 보장함으로써 전략적 봉쇄소송을 남발하게 하는 민사법 체계 등이 건재한 이상, 노동법원 아니라 그 이상의 기관을 설치한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노동문제들을 해결하긴 어렵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이 입법부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입법부가 스스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신뢰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이 중심이 되어 노동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이 전무한 상태에서 노동관계법의 재정비가 실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를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동법원의 설치를 위해서 역시 입법적 정비가 필요하다. 결국 입법부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노동법원의 설치와 그 운용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사법부의 현실이 노동법원의 설치에 기대를 가지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현재의 사법부는 노동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사실상 지노위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을만 하다. 예컨대 쟁의행위로 인한 사측의 손해를 노동조합이나 조합원 개인이 배상하라고 하면서 이를 강제하기 위해 임금 등을 가압류하도록 결정하는 법원의 태도를 보면 과연 한국의 사법부가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대법원으로 제기되는 상고가 폭증함에도 대법관을 늘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사안이 최종심급에서 얼마나 빨리 판단을 받아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처럼 노동분쟁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부족한 사법부가 빠른 시간 안에 사법구제를 통한 정의실현을 각성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오히려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수준의 제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구성되는 노동법원과 현재 수준의 대법원으로 인해 노동사안에 대한 질 낮은 수준의 결정이 확정된다면 향후 사법절차를 통한 노동문제 해결은 더욱 난망해질 가능성도 있다. 결국 노동법원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대법관의 구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법부의 개혁과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의 획기적 제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전히 노동·정치·사람의 장기과제로서 노동법원의 설치는 폐기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면밀하게 엮어내고 사회적으로 의제화하면 실천노선을 제기함으로써 운동으로 승화하하는 건 단지 일개 단체만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 노동법원 설치 문제가 사회적인 참여와 검토를 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윤석열이 꺼내든 카드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의제를 그렇게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뭔가 엄청난 것이 나온 듯 설레발을 치지만 전반적으로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이미 많은 논의와 깊은ㄱ 고민이 이루어졌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뒤 없이 덜렁 노동법원을 내놓은 윤석열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자신도 노동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과시하고 싶었을 뿐이었을까? 내막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의도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노동법원 설치 논란은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윤석열의 또 하나의 헤프닝이었을 뿐이라는 거다. 노동자들의 속이 더 썩어 들어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