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정치·사람 2020년 장애평등교육 후기

백선영 _ 부천에 사는 혜리엄마

 

노동·정치·사람에서 주관하고 김도현 씨가 강의한 공공시민노동, 알만한 사람들이 같은 시공간 안에서 함께 듣고 있다는 게 일단 좋았다. 아쉬운 점은 그만큼 활발한 토론 등이 후속으로 배치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현장 질의가 없다면 온라인 참가자끼리 노닥거리고 중계하는 방식은 어땠을지- 생각이 들었다. 공공시민노동이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지점에서 출발하는 너무나 옳고 정당한 이야기기에 딱히 제기할 거린 없어 보이지만, 어찌 됐든 미완의 체계이고 만들어가야 하는 거라면 후속의 과제들이나 서로 생각하는 대안들이나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들이 많을 듯싶었다.

단지 장애인 일자리 늘리기를 공공일자리로 규정해서도 안 되고 故 설요한 동지의 경우처럼 실적 올리기 경쟁에서 탈락하면 임금을 빼앗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설계되지도 않겠지만, 아주 집요하게 장애와 노동에 대한 인식 체계 등을 바꿔내지 않으면 결국 ‘공공시민노동’도 우리가 최대치로 요구하는 대로가 아니라 관료조직의 승인하에 절충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되진 않을는지 우려가 됐다(소수자 영역을 포괄하는 공공시민노동위원회의 구성과 위상 등을 강사는 이야기했지만, 아직까진 구체적인 밑그림이 부족해 보였다). 그랬을 때 저들은 여전히 자본 중심의 공공일자리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 그리고 강사도 말미에 이야기했듯이 장애인들만의 독자적 요구와 지원 복지정책 정도의 의미로 협소화되면 그냥 또 분리주의 이상이 아닐 듯하다는 점도 우려된다. ‘장애인은 특수하니까 데모도 문화활동도 교육도 알아서 해라, 임금 줄게’ 하는 방식에 어느 누가 선뜻 동의할지 -이건 공무를 보는 관료조직만이 아니라 체제를 내화한 다른 노동자도 마찬가지- 시민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리고 공공시민노동의 체계가 여전히 “신체적 경쟁력”을 가진 임노동자를 선호하는 자본가들의 사회,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를 마주한다면, 아주 강력한 드라이브가 없는 이상 결국 희석되거나 고립돼 패퇴하거나 하는 등등의 문제들이 남는다. 이 뻔한 결과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유토피아를 현실화하는 문제, 결국 노동 생산의 재개념화부터 중층화된 여러 차별적 구조를 바꾸는 일과 근본적인 관계의 전복까지. 도전에 직면한 과제들은 매우 거창한데 그냥 실험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교육받아 잘 팔리는 노동자가 되거나 기껏해야 건물주가 되는 것이 최고의 이상인 사회, 타인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 속에 오로지 ‘플렉스’ 타령만 하는 시대다. 숨 쉬는 것조차 노동이라 말하는, 일상을 사는 것 자체가 노동이라 말하는, 존재의 영속을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이 노동이라 말하는, 그런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의 삶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이 사회를 유지하는 노동이라 인정받는 사회, 특수하게 이해되어야만 했던 ‘장애’가 인간 개개인의 특징으로 인식되고 보편화되는 사회. 그런 사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들은 간단치 않다. 장애계에서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그 밖의 운동사회에서는 무엇을 함께 준비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