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정책팀장, 노동당 당원, 노동·정치·사람 회원

 

지역분권 혹은 지역소외 논리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적 격차’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지역 내 자산의 ‘가격’ 간 차이를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년들이 사라진다든지 구도심의 쇠락이라든지 그 외의 현상들은 거의 의미 없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것부터 간단히 짚어보면,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히 일자리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적지 않게 지역‘문화’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소위 청년들을 ‘이용해서’ 자기 사업을 추구하는 청년 착취업자들이 선의를 가장한 채 존재하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를 상호 간의 ‘윈윈’으로 삼을 수 있다고 하려면 최소한 ‘반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지역 청년들의 부재 원인에 대해 경제적 요인만 강조하면 지역 내 기득권들의 책임만 면피될 뿐이다. 당장 귀촌이니 귀향이니 해서 10년이 넘어도 ‘외지인’ 운운하는 지역정서가 팽배한데 그곳까지 내려가서 2등 지역주민 취급을 받으며 생활할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이와 유사하게 자산 격차에 대해 지역소외론으로 접근하는 건 정말 한 치 앞도 못 보는 관점이다. 서울지역의 높은 지가는 소유자에겐 자산이지만 비소유자에겐 부담이 된다. 즉 자산가격에 비례해서 책정되는 임대료가 비소유자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것이다. 결국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의 자산가격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상황이 낮은 주민들도 생활의 위험을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구도심 침체 운운하는 순간엔 헛웃음이 나온다. 구도심의 위기를 말하는 지역은 모두 90년부터 지방정부가 전략적으로 신도심 전략을 채택했던 곳이다. 이를테면 대전광역시의 경우에는 기존 중구의 중앙로 중심 구도심을 새롭게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대덕구로 옮겼다. 그리고 중앙정부 차원에선 KTX 역사를 배치하면서 이를 지원했다. 즉 지금과 같이 엉뚱하게 놓인 KTX 역사들은 당시 지방정부들이 구상한 신도심 개발사업의 경계선에 가깝다. 이렇게 지역 내 자원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왔는데 구도심이 쇠퇴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도 지역의 쇠퇴를 모두 중앙정부의 문제로, 수도권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건 단지 책임회피의 문제를 넘어서서 정책적으로 유효한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한다는 관점에서도 왜곡을 초래한다. 대표적으로 지역내총생산(GRDP)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접근하는 지역생산 관점이 그렇다. 국가적 수준에서도 정당성을 의심받는 GDP 통계는 ‘국경이라는 최소한의 제약’ 조차 없는 지역경제의 관점에선 정말 의미가 퇴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역내총생산과 그로부터 뽑아낸 지역총소득이 중요한 지역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생산이나 소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순환구조다. 구태여 경제학 개론에 나오는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경제의 부가가치는 순환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생긴다. 내가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는데 숙소를 무료로 지원받아 생활하면서 받는 임금을 모두 한국 계좌로 옮겨 관리한다면, 나의 생산은 일본에서의 경제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다. 비슷하게 산업단지가 빼곡히 모여있는 곳의 지역내총생산이 아무리 높아도 해당 공장의 법인이 인근 광역시에 있다면 공장의 생산물을 판매해서 얻는 부가가치는 법인이 있는 지역으로 이전된다. 또 인천이나 경기도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경우도 사실은 부가가치가 서울에서 인천이나 경기도로 이전되는 셈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바로 역외 유출입 통계다.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자료는 2012년 산업연구원이 펴낸 자료인데(《역외 소득의 유출입을 고려한 지역 간 소득격차 분석과 정책적 시사점》 정준호 등, 2012, 산업연구원), 이에 따르면 지역내총생산을 평균인구로 나눈 일 인당 총생산은 울산이 가장 높고 충남과 경북이 그 뒤를 잇는다. 서울은 경남과 충북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을 보인다. 지역내총생산이 높다면 당연히 지역 내 소득과 소비도 높아야 한다. 그 지역이 어느 정도 자체적인 순환경제 구조를 가졌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 같은 보고서에서 일 인당 순소득을 살펴보면 전국의 평균을 넘는 소득 수준을 보이는 곳은 서울과 울산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생산은 많이 하는데 그것이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단 얘기다.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으니 소비도 가능하지 않다. 소비가 없으니 지역 내 경제구조라는 것이 성립할 수가 없다. 즉 생산이 소득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역내총생산을 늘려도 지역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의 단서는 소득의 이전과정에 있다. 아래의 표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역외순소득 즉 스스로 생산하지 않았으나 지역 외에서 이전되어 온 소득의 규모를 보면 서울과 경기, 대구, 부산 등이 높다. 이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법인의 소재지가 서울이나 주요 광역도시에 있기 때문에 공장이 지역에 있더라도 그에 대한 이윤은 법인 소재지로 집중되는 경우다. 사실 규모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부분이 압도적으로 클 것이다.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소비행위를 하는 주체들이 이전하는 경우는 규모가 작더라도 파생 효과를 고려하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경제행위가 주거에서 교육, 문화까지 복합적인 영역으로 이어져 있고 이로 인해 연쇄적인 가치의 사슬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군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조차 인근 광역시에 집을 구해 원거리 출퇴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지역 내 자원의 투자가 곧 지역 내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기대하기 힘들다. 그리고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한국의 지역경제라는 것은 특광역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권역이 사실상 ‘소득의 일방적인 수취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특이한 것은 서울과 경기 사이에 끼어있는 인천광역시 정도이고 거의 모든 지역에선 공통적으로 그렇다.

흥미로운 것은 동남권과 강원 제주권인데, 특히 대규모 생산공장이 많은 경남이나 울산 지역과 더불어 관광산업이 주력인 제주도나 강원도가 공통적으로 역외이전이 더 많은 곳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강원이나 제주권의 더욱 중요한 특징은, 다른 지역의 경우에는 역외소득이 흘러가는 곳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역시인데 반해 강원권과 제주권은 권역 내에 (+)의 흐름을 가진 지역경제 거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소득의 재분배라는 관점에서 보면 개인보다는 법인의 문제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서울의 경우 총처분가능소득, 피용자보수, 영업잉여, 재산소득의 공간 집중도가 생산력이나 인구에 비해 모두 높은데, 특히 서울의 법인 영업잉여와 재산소득(이자, 임대료, 배당소득)의 공간 집중도는 매우 높은 상태로 나타났다. 재산소득의 집중도에 비해 영업잉여의 서울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이유는 수출 대기업의 호황이 곧 서울 본사로의 송금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처분가능소득이나 피용자보수는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이는 지역 간 경제 격차를 ‘일자리 격차’로만 접근하는 관점의 한계를 보여준다. 법인 소득의 지역 이전이라는 관점이 함께 병행되지 않으면 정말 부분적인 지역정책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한 지역분권 논의 가운데 감춰진 것 중 하나가 지역 내 불평등 구조다. 국토연구원에서 개인신용평가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의 개인소득자료(읍·면·동 수준의 공간정보 포함)를 활용하여 2009년과 2016년 두 시점의 시군구 단위에서의 평균소득, 소득지니계수, 공간분리지수를 측정하였다. 여기서 공간분리지수는 국가 전체 중위소득의 절반 미만 소득수준을 나타내는 인구를 빈곤계층으로 분류하여 해당 인구들이 시군구 내에서 어떠한 공간적 형태로 분포하는가를 분석한 것으로, 0에 가까울수록 통합적으로 분포하고 1에 가까울수록 특정 읍·면·동에 이러한 빈곤계층이 분리되어 밀집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점은 소득불평등이 특정 지역에만(이를테면 도시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역 내 불평등 수준은 군 단위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지역 내 공간의 분리 경향, 즉 가난한 사람과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의 분리는 대도시 지역보다 그 외 지역에서 좀 더 보편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역분권이 가진 구체적인 효과를 고민하게 만든다. 즉 단순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비교를 통해 놓치는 맥락, 즉 현재의 지역분권 정책이 오히려 대도시권으로의 소득 이전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역 간 격차 문제는 반드시 지역 ‘내’ 격차 문제와 함께 고려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역발전전략에서 지역분배전략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지인의 투자를 통해서 자산가치를 높이는 방식의 도시재생이 궁극적으로 지역의 총생산 혹은 총가치를 높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지역 내 형평성을 높이지는 않을 뿐 아니라 결국 지역 내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어설픈 자선이 빈곤의 악순환을 강화시킬 수 있듯이, 어설픈 지역분권 논리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