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 노무사, 노동·정치·사람 회원

 

노동자가 최후에 몰릴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집회, 전면적 사업장 점거, 고공농성, 때에 따라서는 파괴적 행위나 집단적 물리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통상 이러한 모습을 연출하는 단계는 법률적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고 어떠한 절차를 따르더라도 억울함이나 부당함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시점이다. 이럴 때 노동자들은 결정해야 한다.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전면적 행동을 할지 말지를 말이다.

보통 처벌을 감수하고 행동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대상자, 비정규직과 같이 우리 사회의 약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법률을 만들거나 이를 판단하여 규정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며, 이들의 행동은 그래도 법은 법이니 ‘그 정당성이 있는가?’라는 대표적 법철학적 질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하는 사례를 양산해 낸다.

한편 비교적 사회적 강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법은 법으로서 존엄하기 때문에 불법 행위자를 필벌해야 한다고. 실제로 최후에 몰린 노동자들은 이들의 주장처럼 그 행위에 대해 법적 처벌을 받아왔고 수년간 징역 생활을 하기도 한다. 나아가 최근 경영계를 필두로 한 정치권에서는 노동조합의 활동 및 쟁의권을 축소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이는 조합 활동이 곧 형사처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풍경 속에서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점거농성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국회선진화법의 내용은 징역형 및 벌금형을 담고 있고 형량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거농성 및 기타 회의 방해 활동을 한다는 것은 나름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위중함보다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것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가 생존하기 위해 법률을 위반하여 어떠한 주장을 하건 사회적 강자가 자신의 생존적 이익 관계를 위해 법률을 위반하여 어떠한 주장을 하건 이 둘의 공통점은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들이 관철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국제사회 및 역사적 경험에서도 늘 볼 수 있다. 예컨대 전시상황에서 제네바합의에 따른 포로에 대한 대우, 금지된 무기품목 등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는 걸 우린 이미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금번 자유한국당의 국회 점거 사태를 보면서 내가 관심 있게 보는 것은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여 처벌이 이루어지는지 여부이다. 단순한 가담자는 어느 정도의 벌금형이 나올 것이고 이를 주도하고 집행한 자는 상당한 징역형이 나오는 것이 약한 자들이 최후로 선택한 법률위반 행위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들도 그렇게 선택을 했다면 그 결과 역시 같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그들 강자도 역지사지 심정을 배워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