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 노동·정치·사람 웹진 편집장

 

민주노총 2019년 67차 정기대의원대회(이하 정기대대)가 열렸다. 사상 최대의 인원이 참석했지만, 이번 대회의 최대 쟁점이었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참여 문제는 결국 어떤 뚜렷한 결론도 내지 못하고 ‘논의 중단’이라는 어정쩡한 상태로 산회했다.

경사노위 적극 참여라는 원안에 대해 제출된 세 개의 수정안-전면불참론, 조건부불참론, 조건부참여론-은 모두 과반수를 넘지 못해 부결되었다. 이중 조건부참여론은 집행부가 힘을 실어주었음에도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 원안까지 부결될 경우 이후의 혼란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집행부는 원안 표결만 남은 상태에서 표결을 중단했다. 그리고 정회를 거쳐 경사노위 참여 논의를 중단하고 이후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경사노위 참여 부분을 제외한 사업계획을 다루겠다고 정리한 후 회의를 마쳤다.

원안에 대한 표결이 이루어졌다면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원안이 통과되었으리란 관측도 있다. 어차피 추측이긴 하지만 별로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회의장의 분위기상 원안도 부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미 이런 전례도 있다. 2017년 초의 정기대대에서 다루어졌던 민주노총 정치방침안 역시 모든 안이 부결되면서 어떠한 뚜렷한 결론도 내지 못하고 끝난 바가 있다. 이번 경사노위 참여안 역시 비슷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런 상태야말로 민주노총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경사노위 참여 무산에 대해 안도하는 사람도 있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참여 아니면 불참이라는 단순 찬반으로만 논의가 진행되고, 게다가 그 논의에서조차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모든 안이 부결되는 일종의 교착상태가 민주노총의 현 상황이다. 정치방침이든 경사노위 참여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뭐라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어떤 안에도 동의하지 않은 ‘중간파’ 내지 ‘양비론자’들이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비론자들을 탓할 수도 없다. 실제로 불참론이든 참여론이든 양측 모두 내용이 앙상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어느 쪽에도 쉽게 손을 들어주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불참론자들은 현재의 민주노총 역량상 경사노위에 들어간들 정권과 자본의 각종 노동개악에 들러리만 설 뿐이므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협상이 아니라 투쟁만이 노동개악을 실제로 막아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들어가서 협상해본들 막아내기 어려울 정도인 현재의 민주노총 역량으로 노동개악을 막아낼 정도로 힘 있는 투쟁은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협상으로 안 되는 일이 그보다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투쟁으로는 된다는 얘기는 일종의 자체모순 아닌가?
그렇다고 참여론자들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참여론자들 역시 경사노위에 참여해서 노동개악을 막아내겠다는 것 이외의 내용, 즉 공세적이고 구체적인 협상안들을 준비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내용을 협상한다는 것은 특정 안건 그 자체의 찬반보다도 전체적인 안건의 논의 지형 속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자본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산입범위 확대로 맞서고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탄력근로제도로 맞선다. 즉 어떤 사안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해지면 다른 방법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저들이 제기한 안건을 막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내용, 가령 노동법 전면개정이나 경제사회 분야의 예산 편성 방향 등 전체적인 ‘사회대개혁’의 내용을 제기하면서 공세를 펴나가야 노동개악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총연맹은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다못해 사측의 공익위원이 전면적인 개악안을 들고 나왔을 때(이는 민주노총의 불참을 유도하려는 떡밥의 성격도 강하다고 본다), 그러니 들어가지 말자든가 그러니 들어가서 막아야 한다는 식의 평면적인 찬반 논의가 아니라 노측의 공익위원을 활용해서 전면적인 개선안을 역으로 제기하는 정도의 수완은 있어야 한다. 그럴 만한 수완이나 그럴 만한 공익위원이 없다면 이 또한 준비 부족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는데, 참여해서 뭔가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보여주어야 거기에 동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경사노위 참여든 불참이든 둘 다 수단일 뿐이다. 수단은 우리의 준비 정도와 외부의 상황에 따라 적절히 판단하면 된다. 또한 전면불참론이나 전면참여론을 제외한 조건부불참론과 조건부참여론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다. 노동개악을 철회하면 참여하겠다는 안과(즉 조건부불참론은 조건부참여론이기도 하다), 참여해서 노동개악이 추진되면 탈퇴하겠다는 안은(역시 조건부참여론은 조건부불참론이기도 하다) 시간상의 선후관계만 달리할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같은 내용이다. 당장 참여냐 아니냐만 생각하면 차이가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현 상황에서 그게 실제로 얼마나 최종적인 차이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참여냐 불참이냐만을 따지는 것은 우리의 목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느 한쪽으로도 결정하지 못하는 교착상태가 계속되는 현재의 민주노총 내 논의 지형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교착상태를 해결하는 길은 A도 B도 아니며 둘의 어정쩡한 절충도 아니다. 교착을 돌파하려면 그 교착을 이루는 논의의 틀 자체를 벗어나 보다 더 높은 차원의 목표에 따른 전략이 필요하며, 그 전략은 A와 B 모두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당면 대응 방침에만 논의가 집중되는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 가령 불참론자들의 경우 실제로 힘 있는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기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면 말로만 원칙을 내세우는 데서 벗어나 실제로 그 원칙에 따라 현장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참여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힘이 있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참여해서 정권이나 자본 측의 의도가 명백해질 때 탈퇴하고 그동안의 조직된 힘으로 투쟁하는 것이 대중설득력이나 파급력 면에서도 훨씬 낫다. 문제는 스스로 주장한 대로 투쟁을 실제로 조직하는 것이다.

참여론자들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며 일단 들어가자고만 하지 말고, 들어갈 경우 무엇을 공세적으로 주장하고 무엇을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할지 미리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 공세적인 주장으로 논의의 지형을 바꾸려고 노력하되 그게 어려울 경우 판을 뒤엎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노동개악을 막아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건 현재의 우리 실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일 뿐이지 민주노총이 판을 뒤엎은 탓은 아니며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를 위해 노력했음을 대중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후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노동운동이건 진보정치운동이건 상황은 쉽지 않고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모든 안들이 동의되지 못함으로써 결정을 못 내리는 교착상태 역시 이런 현실의 반영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당면 대응에 대한 찬반 논의에서 한 발짝 벗어나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전략적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해야 현재도 돌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