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자료는 2018년 7월 26일 은평구 주민모임 ‘선영아, 법을 알자’ 프로그램에서 진행된 강연 자료입니다.
한국 헌정사로 보는 헌법 이야기
- 한국 헌정사
(1) 대한제국 헌법
-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이 성립됨: 고종이 칭제건원(稱帝建元)하여 황제국임을 선포하고, 입헌군주국임을 전제로 헌법에 해당하는 ‘대한국 국제’를 공포함
|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
1899년 8월 17일 공포 |
- 1910년 한일병탄에 의하여 대한제국(조선) 멸망: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은 대한국국제 공포 후 불과 10년 만에 사라짐
- 대한국국제의 특징 : (i) 전제군주국을 선언, (ii) 황제가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수행, (iii) 신민(臣民)에겐 충성의 의무만 있을 뿐 기본권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음
(2) 3·1혁명과 임시정부 헌법
- 1919년 3·1 혁명 발발: “3·1혁명”의 의의는 (i) 부당불법한 제국의 식민지지배를 거부한 독립투쟁이었으며 (ii) 군주통치체제를 완전 극복하고 민주공화체제를 수립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계급투쟁
- 1910년 한일병탄 이후 해방독립을 염원하는 선각자들이 새로운 국가에 대한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민주공화제를 국체로 설정하는데 일정한 공감대 형성
| <대한민국임시헌장>
임시정부법령 제1호, 1919.4.11., 제정 제0조 신인일치로 중외협응하야 한성에 기의한지 삼십유일에 평화적 독립을 삼백여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다시 조직한 임시정부는 항구완전한 자주독립의 복리로 아자손려민에 세전키 위하여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 선서문 존경하고 경애하는 아이천만 동포 국민이여, 민국 원년 삼월일일 아 대한민족이 독립선언함으로부터 남과 여와 노와 소와 모든 계급과 모든 종파를 물론하고 일치코 단결하야 동양의 독일인 일본의 비인도적 폭행하에 극히 공명하게 극히 인욕하게 아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와 정의와 인도를 애호하는 국민성을 표현한지라 금에 세계의 동정이 흡연히 아 집중하였도다. 차시를 당하야 본정부일전국민의 위임을 수하야 조직되었나니 본정부일전국민으로 더불어 전심코 육력하야 임시헌법과 국제도덕의 명하는 바를 준수하야 국토 광복과 방기확고의 대사명을 과하기를 자에 선언하노라. 국민 동포이여 분기할지어다. 우리의 유하는 일적의 혈이 자손만대의 자유와 복락의 가이요. 신의 국의 건설의 귀한 기초이니라. 우리의 인도일마침내 일본의 야만을 교화할지요. 우리의 정의일마침내 일본의 폭력을 승할지니 동포여 기하야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지어다. 정강 1. 민족평등 국가평등 급 인류평등의 대의를 선전함.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 및 대일투쟁의 국면에서 4월에 상하이에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구성됨: 임시의정원은 회의를 거쳐 결의를 통해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선포
- 대한민국임시헌장의 특징 : (i)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쓰며 국가의 체제를 ‘민주공화제로 함’이 선언함으로써 주권자를 황제에서 인민으로 바꿈, (ii) 인민의 평등권, 자유권의 보장, (iii) 일제를 적으로 규정하고 독립을 국시로 함, (iv) 구황실을 우대함
- 임시정부의 헌법은 1925년 대통령제 폐지 및 국무령과 국무원으로 조직한 국무회의가 행정사법을 총괄하는 형태로 개정되었음: 이승만 탄핵이 계기
- 임시정부 의정원은 1927년에 ‘대한민국임시약헌’을 제정: 총 50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강에서 국체 및 기본적 권리의 원리를 선언하고 제2장에서 의정원 구성과 책무, 제3장에서 임시정구 구성과 책무, 제4장에서 조세 등 국가회계를 다룸
- 임시정부 의정원은 1940년 ‘대한민국임시약헌’을 전부개정: 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도체제 구성
- 임시정부는 1944년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함: 총 62개조로 구성. 제2장에서 ‘인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여 각종 기본권을 명시, 제5장에 사법권을 행사하는 ‘심판원’의 장을 둠
(3) 해방과 제헌헌법
- 미군정 하에서 제헌의회 구성: ‘국회의원선거법(군정법령 제175호)’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총선
- 198명으로 구성된 제헌의회가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하고 초안 작성: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와 양원제로 하고 위헌법률심사권을 대법원에 부여하는 등의 내용
- 단정수립에 김구 등이 불참을 선언한 가운데 이승만이 대통령제가 아니면 자신도 정부구성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과정에서 헌법초안이 대통령제로 수정
- 7월 12일 국회를 통과하고 7월 17일 헌법 공포: 제헌헌법은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았음
-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정부임을 선언
-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
- 강력한 ‘사회국가원리’를 채택: 재산권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의무,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제한, 교육을 받을 권리(무상초등교육), 근로의 권리, 근로3권 등을 규정; 생활보호를 받을 권리를 규정; 사기업 근로자의 이익분배 균점권을 규정
- 정부형태는 대통령제로 하고 부통령을 둠: 4년 임기로 국회에서 선출; 국회는 단원제; 국무원에서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중요 국책을 의결
- 위헌법률심사는 헌법위원회에서 담당; 법원은 헌법위원회에 위헌법률심사의 제청; 탄핵의 심판은 국회의 소추의결에 의하여 탄핵재판소가 수행;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지방의회를 설치: 시행은 되지 않음
- 경제조항은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보다 사회정의의 실현과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이 우선; 경자유전원칙에 따라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 사기업 근로자의 이익분배 균점권
(4) 제1차 개헌(1952년: 발췌개헌)
- 6·25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 비상계엄하에서 개헌
-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총선에서 패배함에 따라 이승만은 재선이 불가능: 당시 대통령의 선출은 국회에서 투표로 결정
- 1951년 11월 대통령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는 개헌안을 제출하고 12월 자유당을 창당
- 1952년 1월 직선제 개헌안 부결(찬성: 19, 반대: 143, 기권: 1)
- 1952년 4월 야당이 의원내각제 개헌을 제출하자 정부는 지난해 부결된 것과 같은 내용의 직선제 개헌안을 같은 해 5월에 다시 제출
- 5월 26일 국회의원 40명을 실은 국회 통근버스를 헌병대를 동원해 강제 연행, 국회의원 연금
- 8명의 국회의원을 국제공산당 관여혐의로 구속
- 경찰과 계엄군을 동원 국회의원 강제로 등원 후 개헌안 부의
- 경찰이 국회 포위; 백골당 땃벌대 등 테러조직들이 공포분위기 조성: 소위 ‘부산 정치파동’
- 개헌안은 1952년 7월 4일에 밤 토론 없이 기립투표로 진행
- 정부 개헌안 중 대통령 직선제, 야당 개헌안 중 국무원불신임제를 섞은 수정안 상정 가결
- 출석의원 166명 중 찬성 163, 반대 0, 기권 3
- 1952년 8월 5일 대선에서 이승만 대통령 재선
- 특징: (i)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거를 직선, (ii) 양원제(민의원과 참의원), (iii) 국회에 국무원 불신임권(연대책임 및 개별책임) 부여
- 이승만은 집권기 내내 참의원 구성하지 않음
- 1차 개헌은 헌법개정절차를 위반한 절차적 문제: 제헌헌법 상 규정된 헌법개정안 30일 이상 공고규정(제헌헌법 98②) 위반: 1차 개헌안이 처리된 국회는 공고된 개헌안과 다른 내용의 수정안을 채택하였음. 따라서 다시 30일의 개헌안 공고를 했어야 하나 수정안 채택 즉시 표결하여 가결 선포: 특히 비상계엄하에서 의사당을 경찰과 폭력단체들로 포위한 상태에서 토론절차 생략-반민주적 개헌
- 헌법개정절차를 명백히 위반하였으므로 무효: 이 경우 개정헌법에 따라 행하여진 대통령선거도 무효;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무효: 1차 개헌 이후 이승만 집권기는 헌정체제가 아니었다는 결론
(5) 제2차 개헌(1954년: 4사5입 개헌)
- 1954년 총선거 결과 자유당이 제적의원 203명 중 114석 확보: 개헌정족수 136석에 못미침
- 이승만은 종신 대통령을 위한 개헌안을 제출: 부칙에 ‘이 헌법공포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제55조제1항 단서의 제한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규정 삽입: 본문 제55조 제1항 단서는 1차 중임규정
- 1954년 11월 27일 민의원 표결에서 135표의 찬성으로 개헌안 부결
- 자유당은 “203의 수학적 2/3는 333···인데 0.333···은 0.5 미만으로서 수학의 사사오입(四捨五入)의 원칙에 따라 버릴 수 있는 수이므로 203명의 2/3는 135.333···명이 아니라 135명”이라는 사사오입논리 제시하면서 개헌안이 가결되었음을 주장
- 야당의원 전원퇴장; 자유당 의원들만이 모여 긴급동의에 의해 국회부의장은 부결선포를 취소하고 개헌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
- 특징: (i) 헌법공포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 중임제한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부칙 추가; (ii) 국민투표제 처음으로 도입: 주권의 제약 또는 영토변경을 위한 국가안위에 관한 중대사항; (iii) 국무총리제도 폐지, 국무위원에 대한 개별적 불신임제도 채택(연대불신임의 폐지); (iv) 경제조항에서 자유시장경제적 요소를 확대
- 제2차 개헌은 의결정족수를 위반하였으므로 무효
(6) 제3차 개헌(1960년 6월)
- 1960년 3·15 부정선거 진행: 제4대 대통령에 이승만 단독 입후보로 당선
-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발생: 4·19의거 발생
- 국민적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대: 이승만은 4월 26일 국회에 대통령사임서 제출
- 5월 2일 과도정부 구성: 국회는 헌법개정기초위원회를 구성해 개헌작업에 착수
- 6월 15일 개헌안 국회 통과하여 같은 날 공포
- 7월 28일 국회 자진 해산: 7월 29일 민의원 및 참의원 선거 실시
- 특징: (i) 인권조항에 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 침해 금지 ②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와 검열 금지 ③ 정당보호조항 신설 및 정당의 강제해산제도 채택, (ii) 의원내각제 채택, 헌법재판소를 설치,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선거인단에서 선출, 시·읍·면의 장을 주민의 직선선거로 선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신설, (iii) 헌법재판소를 신설해 위헌법률심사, 헌법에 관한 최종해석, 국가기관 간 권한쟁의, 정당해산, 탄핵재판, 대통령·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선거에 관한 소송: 헌법소원은 규정하지 않음, (iv)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발안권 부여: 헌법개정의 제안을 대통령과 국회 외에 민의원의원선거권자 50만인 이상의 찬성으로발의: 단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 없음
- 의의: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민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최초 개헌
- 4·19가 ‘의거’인가 ‘혁명’인가라는 논란: 개헌이냐 제헌이냐의 논란으로 연결: 4·19는 ‘혁명적 사건’이었으나 혁명으로 진전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음
(7) 제4차 개헌 (1960년 11월: 소급입법 개헌)
- 3·15 부정선거관련자 등 반민주행위자의 처벌 또는 공민권제한 등을 위한 소급입법의 근거 및 이들 각 사건을 처리할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의 설치에 관한 헌법상의 근거를 부칙에 규정
- 개헌 후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부정축재특별처리법」, 「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부 조직법」 등 일련의 소급입법 제정
- 신체의 자유, 참정권, 재산권을 제한하는 소급입법을 헌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음
(8) 제5차 개헌(1962년: 쿠데타 헌법)
-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쿠데타 발발: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국가권력 장악,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
- 군사혁명위원회가 ‘국가재건최고회의’로 명칭 변경, ‘혁명내각’ 구성: 6월 6일 ‘국가재건비상조치법’ 공포: ‘헌법은 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효력을 갖는다’-헌법 위의 법
- 1962년 7월 군사정부가 헌법심의위원회 설치: 헌법개정작업 착수
- 12월 6일 개헌안이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결을 거쳐 12월 17일 국민투표에 부의
- 총유권자 3% 참여, 투표자 78.8% 찬성: 12월 26일 공포
- 1963년 8월 제5대 대통령선거 실시: 박정희 당선: 직후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승리
- 특징 : (i) 전문에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삽입: 쿠데타를 ‘혁명’으로 포장하고 집권기간 내내 존치, (ii)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국가의 기본적 인권 보장의 의무 규정, (iii) 정당국가적 요소를 명문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정당소속일 것, (iv) 통치기구를 ① 대통령제로 환원 및 대통령 직선제 도입 ② 국회 단원제 ③ 헌법재판소 폐지 ④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선거제도 폐지, 대통령이 임명 ⑤감사원 신설
- 헌법개정 제안은 국회 재적의원 1/3이상 또는 국회의원선거권자 50만인 이상의 찬성: 국회와 국민발안에 의한 제안만을 인정하고, 대통령에게 제안권을 주지 않음: 개헌안은 국회의 의결을 받은 후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
- 1962년 헌법은 군사쿠데타, 국민의 대표성을 갖지 못한 자들에 의해 구성된 개헌안 등 절차상 헌정질서의 한계를 넘은 것 : 민주주의 이론상으로는 헌법국가라고 할 수 없는 상태
(9) 제6차 개헌 (1969년: 3선개헌)
- 1967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윤보선에게 겨우 이김: 제7대 총선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개헌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작
- 1968년 1·21사태,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등 한반도 긴장고조: 반공방첩태세강화를 빌미로 국민통제강화
- 공화당이 1969년 8월 3선 개헌안 발의: 박정희 3선 개헌을 위한 전초작업
- 신민당이 개헌 반대하면서 전국적인 개헌반대시위 진행
- 1969년 9월 14일 새벽 2시에 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던 중 국회 제3별관에 여당 의원들만 모여 개헌안 통과: 출석의원: 122, 찬성: 122, 반대: 0
- 국민투표법도 마찬가지로 개정: 1969년 10월 17일 국민투표, 유권자 1% 투표, 65.1% 찬성
-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에 박정희는 유권자 8% 투표에 53.2%의 지지로 3
- 특징: (i) 대통령의 연임을 3회까지 연장: 4선은 금지, (ii) 대통령의 탄핵정족수 강화 및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 허용
(10) 제7차 개헌(1972년: 유신헌법)
- 1971년 11월 국가비상사태 선포: 북한의 남침위협이 빌미
-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권리는 헌법상 근거가 없는 것: 박정희는 1971년 12월 27일,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 선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법적 근거 확보: 독일 나치들이 하던 수법을 그대로 가져옴: 이 법률은 김영삼 정권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으로 결정(헌재 6.30. 92헌가18).
- 1972년 7월 4일 남북 양측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평화통일 3대 원칙으로 하는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형식적으로는 남북 평화무드 조성이었으나 개헌국면에서 국민의 눈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기만전술이었음
- 1972년 10월 17일 비상조치 선언 및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 비상조치의 내용은 (i) 국회해산 및 정당활동과 정치활동을 중지, (ii) 국회의 권한 기타 정지된 헌법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가 행사, (iii)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말까지 헌법개정 절차 완료
- 비상국무회의가 1972년 10월 27일 헌법개정안을 공고: 11월 21일 국민투표에 회부
- 총유권자 9% 투표, 투표자 91.5% 찬성: 소위 ‘유신헌법’ 개헌
- 12월 27일 공포: 동시에 시행: 유신헌법이 공포된 날에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정
- 특징: (i)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삽입, 이전에는 “민주주의의 제 제도”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음, (ii) 주권자의 권리는 대표에 의해 대리되거나 투표할 때만 행사되는 것으로 전락, (iii) 인권의 전반적으로 후퇴: 기본적인권의 상당한 부분을 법률로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 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한 검열·허가금지 조항 삭제, 군인·경찰 등에 대한 국가배상청구권 제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제한사유에 ‘국가안전보장’을 추가,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 침해금지’ 조항 삭제
- 통치기구를 기형적으로 왜곡함: (i) 통일주체국민회의 신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선출 및 국회의원 정수의 1/3을 선출, (ii)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는 국회의원의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 후보자 개인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자 전체’에 대한 찬반을 투표에 붙여 당선을 결정
- 제왕적 대통령제-대통령 입법부와 사법부보다 우월한 지위: ①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부여, 국회의 동의나 승인이 불필요하며 사법심사의 대상에서도 제외 ②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 부여: 내각책임제도 아닌 대통령제에서는 불가능한 것 ③ 통일주체국민회의에 국회의원 추천권, ④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회부권 신설 ⑤ 중임 또는 연임제한규정 삭제
- 국회 권한 축소: 국회의 회기 단축, 국정감사권 폐지 등
- 위헌법률심판권과 정당해산심판권을 헌법위원회에 부여: 법원의 권한 축소: 모든 법관의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부여 및 징계처분으로 법관 파면권 행사: 사법부의 독립 위축
- 지방의회의 구성을 통일 이후로 연기
- 헌법개정안은 대통령과 국회가 제안: 대통령이 제안한 경우는 바로 국민투표에 의하여 확정: 국회가 제안한 경우는 국회의결을 받은 후 통일주체국민회의 의결에 의해 확정
- 민주공화국의 헌법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1962년 쿠데타 헌법 이래 일관된 장식적 헌법 및 사실상의 정부에 불과
(11) 제8차 개헌(1980년: 신군부 헌법)
-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안가에서 김재규에게 총살됨: 전국에 비상계엄
-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최규하가 10대 대통령에 당선: 긴급조치 해제 및 개헌작업 돌입
-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
-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 의결: 18일 광주 유혈 진압
- 5월 31일 정부가 마비된 상황에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설치, 전두환이 위원장에 취임
-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환을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
- 정부의 헌법개정심의위원회가 9월 9일 개헌안 확정: 9월 29일 개헌안 공고: 10월 22일 국민투표, 유권자 48% 투표, 91.6% 찬성: 10월 27일 공포 및 시행
- 1981년 1월 25일 비상계엄 해제: 개정 헌법에 의하여 2월 11일 대통령선거인단 선출, 2월 25일 선거인단 23%의 지지로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이 됨
- 특징: (i) 헌법 전문에서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를 삭제하고, ‘제5공화국의 출발’이라는 문장을 넣음, (ii) 개별적 법률유보조항 대폭 삭제, (iii) 행복추구권 신설 및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규정 삽입, (iv) 무죄추정, 연좌제의 금지, 사생활의 비밀과 불가침, 환경권, 적정임금보장 등의 조항 신설, (v)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 명시
- 국회에 국정조사권 부여, 통일주체국민회의 폐지: 대통령선거인단의 대통령 간선, 임기는 7년 단임: 임기연장이나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적용할 수 없도록 규정: 긴급조치권 폐지 대신 비상조치권 부여, 국회의 사후통제(승인 및 해제요구): 국회해산권 유지: 법원은 일반 법관의 임명권을 대법원장에게 복귀, 징계처분에 의한 법관 파면 삭제
- 헌법개정의 제안권은 대통령과 국회: 개헌안은 국회의 의결과 국민투표에 의하여 헌법개정안을 확정하도록 일원화
- 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 새 헌법에 의한 국회의 최초 집회일 전날까지 국회의 권한을 대행, 정치활동규제를 위한 소급입법의 근거규정
- 1980년 개헌은 유신헌법이 정한 헌법개정 절차에 따라 진행: 유신헌법 자체가 합법성과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장식적 헌법에 불과하므로 개헌의 근거가 될 수 없음: 절차적으로도 광주학살 등 공포정치를 동원한 헌법개정으로서 반민주적이었으며 정당성 상실
- 전두환을 반란수괴내란 등 죄로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헌법 자체가 불법부당한 것이었기에 가능한 것
(12) 제9차 개헌(1987년)
-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발생
- 4월 13일 전두환은 호헌 선언: 대학가를 중심으로 항쟁 확산: 6월 9일 이한열 최루탄 직격 사망: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를 핵심구호로 6월 시민항쟁 전개: 6월 29일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 조치를 약속하는 ‘6·29 선언’ 발표: 7월부터 전국적인 노동자 대투쟁 발생, 9월 이후 소강
- 8월 31일 국회는 여야 공동으로 개헌안 발의, 10월 12일 의결-재적 272명 중 출석 258명, 찬성 254명, 반대 4명
- 10월 27일 국민투표, 78.2% 투표에 1% 찬성으로 확정, 발효는 1988년 2월 25일이었으나 부칙에 따라 1987년 12월 16일에 대선 실시,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
- 1988년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구성
- 특징: (i)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 삽입, (ii) 적법절차 조항 최초 삽입, (iii) 대통령 직선제, 5년 담임제, (iv) 헌법재판소 제도 부활, (v) 국회 국정감사권 부활, 회기제한규정 삭제 등 국회 권한 강화: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삭제
- 대법원판사를 대법관으로 변경,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임기를 5년에서 6년으로 연장, 대법관의 임명에 국회동의: 헌법위원회 폐지 헌법재판소 부활(헌법재판소 제도는 1960년 6월 헌법에서 처음으로 채택되었다가 1962년 헌법에서 폐지):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관장
- 1987년 헌법의 의의: 헌법실천주체들, 즉 주권자가 개헌정국을 주도하는데 전면적으로 등장, 헌법제정권자 또는 헌법개정권자의 의지로 만들어진 유일한 헌법
-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
(1) 대의제의 의의와 한계
1) 대의제의 의의
- 대의민주제(代議民主制, representative democracy): 간접민주제(間接民主制, indirect democracy)라고도 함
-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사를 결정하게 하는 원리
- 대표자는 국민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하는 것: 자유위임 또는 무기속위임
- 주권자와 대표를 분리하는 것: 주권자는 주권의 속성에 따라 ‘기관구성권’과 ‘통제권’을 가지며 대표에게 ‘정책결정권’과 ‘책임’을 부여
- 대표는 국민 전체를 대표하며 자신을 선출한 일부 유권자나 자신의 정당에 기속되지 않고 오로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복무
2) 대의제의 기능
- 사회 공동체의 통합촉진
- 책임정치의 실현
- 엘리트에 의한 전문정치의 실현
- 제한정치와 공개정치의 실현
- 정치적 교육기능 수행
3) 대의제 성공의 요건
- 통치권 획득의 정당성: 국민의 합의에 기초, 제도로 확립된 절차에 따라 통치권 획득
- 통치권 구조적 정당성: 3권의 분립 및 기관 간 견제와 균형, 국민에 의한 권력의 통제
4) 대의제의 한계
- 공개적 토론의 붕괴 및 당리당략 우선
- 엘리트정치의 귀족정화
- 이해집단의 입장에 따른 대표성 위축
- 정당국가적 현상의 심화
5) 현행 헌정체계와 문제점
- 현행 헌법에서 대의제 규정은 대통령의 선출 및 국회의원의 선출과 권력구조에 관한 규정
- 현행 헌정질서 하에서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i) 단순다수선거제 및 결선투표부재 (ii) 표의 등가성(비례성) 훼손, (iii) 사법부의 독립성 위축 등의 문제가 있음
(2) 직접민주제의 의의와 한계
1) 직접민주제의 의의
- 직접민주제(直接民主制, direct democracy)는 구성원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제도로서 대표를 따로 두지 않는 형태
- 구성원이 직접 의제를 제시하고, 결정하고, 책임짐
- 제도적으로는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가 대표적이며, 공회(公會) 등 의결기구를 전체 국민이 참여하여 구성하는 방안 등이 있음
2) 직접민주제의 기능
- 구성원 전체의사를 대리의 과정 없이 직접 제출하고 결정함으로써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왜곡을 방지
- 대의민주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
3) 직접민주제의 한계
- 불가능성: 사회적 의사를 전체 구성원이 참여한 가운데 합의하여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
- 가능성의 범주를 정하게 되면 결국 대의민주제의 확장판에 불과해짐
- 직접민주적 요소를 대의제에 가미하여 최적화된 조건을 창출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
- 예) 고대 그리스식 직접민주제의 한계, 현대 스위스식 직접민주제의 한계
- 역사상 직접민주주의의 한계와 문제점: 유신헌법, 나치, 프랑스 전제 복고 등
- 한국 헌정사에서 제1차 개헌에 대통령 직선제, 제2차 개헌에 국민투표제, 제5차 개헌에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제가 도입되었으며, 제3차 개헌에서 국민발안제가 도입된 맥락을 검토할 필요
4) 현행 헌정체계와 문제점
- 현행 헌법에서 직접민주제의 요소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 교육감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것과 한정된 요건에 따라 대통령이 부의한 국민투표에 참여하는 것밖에는 없음
-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의 제도들을 헌정질서에 폭넓게 포함시킬 필요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