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와중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중들이 있는가? 있다. 다름 아니라 일부 기독교계 신도들 및 이들과 결탁한 태극기들. 이들은 개헌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특히 ‘성평등’의 문제와 ‘지방분권’의 의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헌법에 ‘성평등’이 들어가면 지구가 붕괴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 하다. 전능하신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 때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거늘, 이 두 성을 무시하고 LGBT 등등을 다 인정한다는 건 신의 섭리를 위배하는 것이다. 헌법이 ‘성평등’을 인정하게 되면 세상이 게이와 레즈비언과 기타 성소수자로 가득 차 소돔과 고모라급 퇴폐가 만연하고 급기야 신의 분노를 사 그것들처럼 멸망하리라. 믿습니까? 아멘…

유물론자라는 정체성을 잠시 접고 전능하신 창조주가 있다고 가정해볼 때 의문스러운 건 창조주가 얼마나 단순무식하면 성을 단 두 개만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싶고, 창조주가 기껏 그런 존재 정도라고 한정하는 것이야말로 혹시 신성모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신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므로, 법학의 수준으로 하향조정하여 논의를 계속해본다면,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무시한 채 이들을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저 기독교 신자들 및 태극기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한편 이들이 내거는 ‘지방분권’ 반대는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과거 문통은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자신의 과업으로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여기서 사용된 ‘연방제’라는 단어다. 지난 3.1절에 손에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는 물론 이스라엘 국기까지 들고나온 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부흥대회를 하던 와중에 나온 말은 ‘지방분권’은 남한을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려는 음모에서 나온 기획이라는 거다.

통상수준의 상식만 있는 사람이라도 이 주장을 듣는 순간 실소를 금할 수 없을 터이지만 이들은 굉장히 진지하다. 이들의 진지함이 발동되는 논리회로는 이렇다. 김일성은 남한을 적화하려는 야욕을 가졌다. —> 남한 적화야욕은 3대를 이어 김정은까지 변함이 없다. —> 김일성이 ‘고려연방제’를 주장했다. —> 고려연방제는 남한적화의 중요 방식이다. —> 문재인이 ‘연방제’를 주장했다. —> 문재인의 ‘연방제’와 김일성의 ‘고려연방제’는 같은 거다. —> 문재인이 ‘연방제’ 하려고 개헌하는 거다. —> 그러니 이번 개헌 반댈세!

‘고려연방제’와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이 이렇게 이어진다는 것도 괴이하지만, 이렇게 따지면 태생이 연방제였던 미국이야말로 종북중에 상종북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이게 웃기기 짝이 없는 논리임에도 먹히는 게, 서북청년단의 DNA를 이어받은 일부 개신교계와 이들을 등에 업은 태극기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기냥 기승전결이 짝짝 맞아들어가는 논리가 되는 거다.

작년에 국회 개헌특위가 개헌안을 마련해서 전국 순회 토론회를 했을 때 전국에서 버스 대절해가며 토론회장마다 진짜 순회를 하면서 훼방을 놓았던 세력이 바로 이들이었다.

중요한 건 이들이 제기하는 주장의 논리가 적절하냐 아니냐가 아니다. 현재 개헌을 둘러싸고 실질적으로 이처럼 노골적으로 이해관계를 드러내면서 찬반에 대한 집단적 입장표명을 하는 대중이 이들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동안 우리가 개헌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의견을 제출했는데 그러냐?”면서 반발할 분들이 있을 거다. 개헌관련 단체들을 만들어 활동하던 분들이 있고, 참여연대를 비롯해 일부 단체들에서도 개헌안이 제출되었던 바가 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건 개헌에 대해 논리적인 의견을 제출한 그 어떤 단체나 정당도 저들처럼 대중들이 직접 나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도록 장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거다.

저들의 주장이 괴이하고 밑도 끝도 없다고 해서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여론조사결과 개헌찬성이 국민의 3분의 2가 넘는다는 보도가 아무리 나와봐야 그건 무의미하다. 87년 당시 ‘호헌철폐 독재타도’ 외쳤던 대중들이 지금은 없고, 오히려 ‘개헌반대’를 주장하는 대중들이 거리로 나온다. 이 상황에서 청와대가 어떤 개헌안을 꺼내들 수 있을까? 잘못 꺼내들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상황이다. 등에 업은 대중의 크기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헌의 도정에서 저 일부 개신교도들과 태극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에 대당하는 개헌 여론을 어떻게 광장에서 드러나는 형태로 조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싸움은 어떻게 할 것인가?

궁금하긴 하지만 희망은 별로 없다. 어차피 저들에 대당하는 개헌찬성의 목소리를 광장에 조직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아마 6월 지방선거까지 그렇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