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2월 9일 지역정당연구모임 주최로 진행한 “자치분권과 지속가능한 청년 포럼”에서 발제한 글입니다.
분권화 시대, 지역정당의 의의
– 정치의 분권화, 정치발전의 출발점
윤 현 식(노동정치연구소(준) 책임연구원)
- 들어가며
촛불이 만든 변화된 정치상황 속에서 쟁점이 되는 이슈 중 하나가 개헌이다. 소위 ‘적폐청산’을 요구한 촛불민심을 현실화하는 가장 큰 과제로 개헌이 떠오른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개헌논의가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있다. 미리 이야기를 하자면, 개인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개헌논의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촛불이 청산을 요구했던 구세대 ‘적폐’의 일원들이 주체가 되어 진행하는 개헌이 얼마나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려니와, 기한을 못 박아두고 속도전을 하듯 몰아치는 개헌논의는 결국 민의를 수렴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재 개헌논의는 헌법의 전문부터 시작해서 개헌의 방식까지 헌법 전체를 다 손보겠다는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처럼 제헌에 준하는 수준의 헌법개정이라면 아예 제헌의회에 준하는 새로운 기구를 설치하여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비판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개헌논의 과정에서 제출되는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은 매우 흥미롭다. 87년 헌법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고, 발전적인 방향을 검토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특히 정치개혁과 관련된 부분은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정치개혁은 단지 선출직 공무원을 어떻게 뽑을 것이냐만의 문제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광범위한 차원에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헌논의 과정에서 행정부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더 정확하게는 대통령제 형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정치개혁 논의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정치구조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헌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행헌법의 틀 안에서도 정치관계법의 개혁을 통해 제도적 측면에서 정치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기존에 제기되었던 정치개혁 방안들의 거의 대부분은 3대 정치관계법이라고 하는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의 개정만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득권을 가진 정치세력들과 현직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수십 년 묵은 해법들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개헌이 논의되고 있고, 일각에서는 정치관계법의 개정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오히려 개헌을 통해 아예 헌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신속하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논의과정 상 개헌 자체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올 수 있을 것인지가 의심되는 상황이며, 헌법이 바뀐다고 한들 법령정비의 책임을 계속 가지고 있게 될 기득권 정치세력이 어느 정도나 헌법의 변화에 걸맞은 법령의 변화를 도모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정치개혁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면 우선순위를 정하여 답변하기는 어렵다. 어떤 개혁이 더 중요하냐를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다. 그러나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법률적으로 볼 때는 정당법의 개정이고, 내용적으로 볼 때는 정당활동의 자유 보장이다. 현행 정당법 체계에서는 정당을 창당하는 것은 물론 그 유지와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애초에 정당설립과 정당구조에 대하여 이토록 상세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있으며, 정당을 구성할 수 없으나 정치세력화하고자 의지하는 여러 집단들을 현실정치에서 배제해버리도록 만드는 구조는 위헌적이기까지 하다.
공직선거법에서도 정치집단의 정치활동은 문제가 된다. 과도하게 규제일변의 정당법과 또한 지나치게 세밀한 공직선거법으로 인하여 선거시기 정치집단들이 정당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면서 활동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은 선거시기 자유로운 정치세력 간의 이합집산을 막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기득권을 가진 거대정당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신진정치세력의 정치권 진입은 차단당한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정치집단들이 선거연합을 할 수도 없으며(선거연합을 하고자 한다면 하나의 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 개별 정치집단을 형성하여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당선이나 낙선운동을 함부로 전개할 수도 없다. 이 가운데 문제로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소위 전국정당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정당이 허용되지 않음으로써 특정지역의 사안이나 특정부문의 사안을 두고 정치세력 간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이하에서는 지방분권과 지역정당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지방분권의 의의와 발전방향을 간단히 검토한다. 다음으로 지방분권의 주요한 기제이자 정치개혁의 한 방편으로서 지역정당에 대하여 논의하고 발전방향을 제시하도록 하겠다. 논의는 우선 헌법의 규정과 관련 법제의 현황을 분석함으로써 문제점을 살핀다. 그리고 개혁의 방안에 대해 법률개정의 내용과 개헌의 내용을 구분하여 살핌으로써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
2. 지방분권의 현황과 의의
(1) 지방분권의 역사와 현황
현행 헌법은 제117조와 118조를 지방자치에 할애하고 있다. 제117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설치와 책무 및 권한을, 제118조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설치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게 다다. 그나마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지방의회구성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두 규정에 따라 우리나라는 광역단위와 기초단위의 ‘지방자치단체’를 가지고 있으며,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를 둘 수 있다. 현행헌법에 따라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1년부터이다. 특히 1995년부터는 자치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면서 지방자치의 실질적인 가동이 이루어졌다.
굴곡을 거친 한국의 헌정사이다보니 지방자치 또한 극적인 변천을 겪었다. 지방자치는 이미 제헌헌법에서 헌법사항으로 규정되었다. 당시의 규정은 형식적으로는 오늘날과 큰 차이가 없었으나,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이었고 이 법에서는 지방의회를 선거에 의하여 조직한다는 것 외에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임명직으로 두었다. 국가적 전란으로 인하여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다가 1952년에 와서야 법에 따라 지방의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 장면정부가 들어서고, 그해 연말에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단체장까지 지역 주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후에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제정하면서 시행 중이던 지방자치법의 효력을 중단시켰다. 지방의회를 해산되었고 자치단체장은 관선 임명직으로 바뀌었다. 이후 쿠데타 헌법에는 지방자치규정을 존속시켰지만, 지방자치에 관한 법률을 정비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지방자치는 실질적으로 중단되었다.
군사정권에서 지방자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영구집권을 획책하면서 만든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은 부칙규정을 두어 “이 헌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부칙 제10조)”고 하여 아예 지방자치에 대한 가능성을 소거해버렸다. 세계적 냉전기류에 기대 남북의 대결구도를 고착화시키는 정부가 통일 이후에 뭔가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1979년 박정희가 사살당하면서 신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또다시 지방자치를 허울만 남겨놓았다. 1980년 헌법 역시 본문에 지방자치의 규정은 두면서도 부칙에 “이 헌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구성하되, 그 구성시기는 법률로 정한다(부칙 제10조)”고 하였다. 사실상 중앙정부가 재정독점을 하고 있는 상황을 전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이라는 것은 공허한 공약에 불과했다.
19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현행 헌법을 통해 지방자치법이 부활했다. 초기 노태우 정권은 지방자치에 소극적이었으나 1991년에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지방자치는 부활했다. 그리고 199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 실시함으로써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막을 올렸다. 2014년까지 6차례의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었고 내년인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2) 지방분권의 의의와 필요성
지방분권에 의한 자치의 필요성을 일일이 개관하지는 않겠으나 이후 논의를 위하여 간략하게 개관하도록 하자. 먼저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이 대변하듯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을 제고하고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저변으로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특히 대면접촉이 가능한 범위에서부터 지역의 주민들이 참여와 토론, 경쟁과 타협을 통해 공동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이 된다. 또한 중앙집권적 국정의 폐해에 자체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중앙정부를 견제하고 이정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중앙정치의 변동에 지역의 사안이 휩쓸림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한편 행정적 차원에서 지방자치는 자신과 가장 밀접한 문제를 근저에서 해결함으로써 보다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성과를 체감할 수 있다. 지역의 상황과 요구에 따른 대응이 가능하며, 따라서 주민들이 원하는 사안을 중앙정부가 처리하는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조치함으로써 편의를 도모할 수 있다. 특정한 정책의 지역적 실험을 통해 전국차원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지역에 특화된 사업의 전개를 통해 타 지역과 경쟁할 수 있다. 이 외에 지역의 사정에 따라 지역 고유의 특수성을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적 다원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측면을 제고하기 위해서 지방분권은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으로 대두된다. ‘민주공화국(헌법 제1조 제1항)’의 이념에 비추어볼 때, 지방분권의 강화는 현대사의 질곡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이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권위주의정권이 정권의 안녕을 위하여 헌정질서를 왜곡하는 기간이 우리 헌정사에서 상당히 오래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정권의 권력행사를 용이하기 위하여 중앙집권적 통제의 틀이 강화되었고, 지방자치는 그 희생물이 되어왔다.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 헌법은 명목에 불과했으며, 헌법의 본문에 아무리 장식적인 규정을 두더라도 부칙을 통해 이를 제한하거나 아예 입법을 회피함으로써 지방자치의 시행을 억눌러버렸다.
87년 헌법 체제에서 지방자치가 일정하게 진척을 보였다고 할지라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가졌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헌법의 규정 자체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단체’라는 용어가 가지는 법적 실질은 차치하고, 그 용어가 가지는 표면상의 어감만으로 중앙정부는 ‘정부’이지만 지방정부는 ‘단체’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비록 단적인 예이기도 하고, 모든 사안을 세세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헌법 구조상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87년 헌법의 지방자치규정은 형식적으로 볼 때 과거 독재정권의 헌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문제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이 규정이 작동하는 현실에 있다. 1991년에 부활한 지방자치가 1995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의 지방자치는 ‘분권’의 실질적 수준에 접근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의 규정은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헌법은 상당히 폭넓게 구체적인 사항을 법률에 위임하고 있다. 여기서 헌법의 규범구조 안에서 여러 가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방의회의 구성을 다양하게 할 수 없는가? 기초의회 의원은 추천제로 선출할 수 없는가? 이장과 동장은 주민 직선으로 선출할 수 없는가? 지방정부와 의회를 내각제처럼 운영할 수는 없는가? 주민참여의 방식을 지역에 따라 달리할 수 없는가?
87년 헌법이 만들어질 당시에 지방분권의 차원에서 지방자치가 다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다보니 현행헌법의 규정이 사회의 변화발전을 예비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음은 물론,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더라도 시대적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현행헌법을 만들 당시에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헌법이 위임한 한도 내에서도 법률의 개정을 통해 이러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시대의 변화가 중앙집권적 행정을 통해 국정 전반을 말단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을 수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의 각 부문은 더욱 다원화되었고 그에 따라 국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욕구 역시 다원화되었다. 87년 이후 진행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지역이 가지는 의미는 과거의 그것과는 사뭇 달라졌으며, 전국적 사안과 지역밀착형 사안의 이해관계가 괴리되는 현상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 중 하나는 지방분권을 통해 지역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여지를 넓히는 것이다. 항간에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이 논의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당위적 측면에서 한국사회는 더 많은 분권이 필요하다. 해방 이후 그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중앙집권적 통제의 틀을 이제는 청산할 때가 되었다. 권위주의정권이 권력의 안정과 통치의 연장을 위하여 억제해왔던 풀뿌리 민주주의를 과거 수준에 머물게 할 이유도 없다. 특히 87년 이후 시민사회의 성장은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의 작동을 억제했던 독재정권의 낡은 틀을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는 당위적 차원에서 분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또한 변화된 시대상황에 맞게 다원화된 사회의 현실에 적응하고 다양한 지역적 요구의 효과적인 해결을 위해서라도 지방분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지방분권의 방향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은 획기적인 제도적 변화를 요구한다. 현행 헌법 하에서 가능한 방식이 있을 것이고, 개헌을 통해 비로소 가능한 방식이 있을 것이나, 우선은 기본적인 원칙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폭넓은 권한을 가진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할 부문이 있다. 자치행정고 함께 논의되어야 할 자치입법, 자치재정, 자치사법이 그것이다. 각 분야를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1) 자치입법
우선 자치입법의 부분부터 보자. 자치입법이라고 함은 지방정부가 자기사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스스로 일정한 법적 규율을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정부의 자치입법은 지방자치의 본질적 요소로서 지방자치의 발달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현행 헌법은 제117조 제1항 후단에서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지방정부는 법률과 중앙정부의 시행령이 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자치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현재의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조례제정권을 의미하며, 조례의 효력이 법령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하므로 법률우위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규정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 헌법의 규정을 달리 해석하자면 법률의 근거 없이는 자치입법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보장조항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규정의 “법령의 범위 안에서”이다. 법률은 물론 시행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은 처음부터 한계를 가지고 행사될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만든 조례라고 할지라도 법령의 범위를 넘어설 경우 무효가 되어버린다. 행정집행을 하는 자치정부는 조례안을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율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그렇지 않은 자치의회가 제출하는 조례안은 상대적으로 재의회부 가능성이 높아지고, 주민발안 조례안은 더 심해질 수 있다.
한편 현재 조례제정과 관련되어 제기되는 비판은 (i) 위임조례의 비중이 커서 자주조례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는 점, (ii) 중앙집권적 행정체제의 잔재로 인해 자치사무에 관한 권한이 한정된다는 점, (iii) 조밀한 법령의 규정으로 인하여 자율권이 제한된다는 점, (iv) 이러한 사정들로 인하여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역량개발이 지연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보다 넓은 자치입법권의 보장은 특히 주민의 참여를 보다 활성화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자치입법에 주민들의 참여를 유인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이 고려되어야 하나, 무엇보다도 주민이 제출한 조례안이 특정한 사정이 없는 한 최대한 조례로 제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정부가 포괄적 자치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분권이 시작될 수 있다.
2) 자치재정
지방정부의 행정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는 재정이다. 지방재정은 지방정부가 관할 내의 공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관리하며 지출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지방정부의 재정운용에 관하여는 헌법에 따로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법률에서 지방재정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규정되어 있는 바, 지방자치법 제122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는 그 재정을 수지균형의 원칙에 따라 건전하게 운영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지방재정법은 제3조 제1항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 증진을 위하여 그 재정을 거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여야 하며, 국가의 정책에 반하거나 국가 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의 규정은 지방재정의 건전재정운영의 원칙과 자율성 존중의 운영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의 운영을 자율적으로 건전하게 하고 싶어도 지방정부차원에서 운용할 수 있는 재원 자체가 한정되어 있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 문제다. 중앙집권적 재정구조로 인하여 현격하게 불균형한 국세와 지방세 비율로 인하여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가 없다. 또한 재산과세 위주로 구성된 지방세로 인하여 경제상황과 경기변동 등에 의하여 재정안정도가 쉽게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경제정책 등에 따라 발생하는 부담이 곧바로 지방정부에 직결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 외에 지역출신 관료나 정치인의 이해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특별교부세’가 불공정 배분 및 불투명 집행되는 문제도 지방재정에 심각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고보조금 역시 중앙정부의 권한행사에 크게 의존함에 따라 지방재정의 자율적 운용의 범위를 축소한다.
더욱이 지방재정의 운용과정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개입이 자율적 운용을 방해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듯이, 지방정부 차원의 자율성은 매우 제한받고 있다. 서울시가 추진했던 청년수당 정책이나 경기도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이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해당 지방정부가 자체적인 예산운용을 통해 마련한 재원을 사용하는 제도들임에도 중앙정부가 개입하여 지방정부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재정자치는 위협받게 된다.
지방정부의 자치재정의 대안들은 많은 논의가 있다. 구체적인 대안에 대한 검토는 다른 기회로 넘기고, 강조할 부분은 지방정부에 대한 재정예속, 이를 통한 행정적 지휘통제를 통해 중앙정부가 분권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집권적 재정구조를 개편하여 지방정부의 재정자주를 확보할 수 있을 때 분권이 실질적인 동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3) 자치사법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와 관련하여 사법에 대한 내용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법은 헌법의 규정상 형식적으로는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종적 사법권의 구조로 고착되어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현행 헌법의 구조 안에서도 분권과 관련하여 사법자치가 가능하다는 견해가 있다. 즉 헌법이 법관의 자격, 법원의 조직, 구체적 소송절차를 포괄적으로 법률에 위임하고 있으므로 입법적으로 자치사법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지방자치법 제11조가 사법에 대하여 지방자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국가사무로 법정하고 있을 지라도 이것은 법률의 문제이지 헌법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헌법의 규정을 이렇게 해석하면, 자치사법의 범위와 내용은 상당한 규모로 확장될 수 있다. 어느 정권이든 모든 정권은 사법개혁을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사법개혁의 의제로 자치사법을 다루는 논의는 언제나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자치사법은 지방자치를 사법을 통해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분야이다. 지방 고등법원의 판사임명에 지방의회가 개입하도록 하거나, 선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 등을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 헌법의 개정이 아니더라도 법률의 정비를 통해 자치사법을 시행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자치사법은 사법부의 분권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검경 등 기관의 분권화를 위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 정치의 분권화와 지역정당
(1) 정치의 분권화의 의의
앞서 열거한 각종 자치를 이루기 위한 전제로서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정치의 분권화이다. 지방자치의 원리와 목적이 주민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임을 염두에 둔다면, 자치행정과 자치입법, 자치사법의 모든 분야에서 지역의 정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사안 등을 검토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다름 아닌 정치다. 따라서 지방자치가 성숙되고 발전하기 위해 지역의 정치의 활성화는 중요한 요소이다.
지역정치의 활성화는 사회의 다원화 경향과 다양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력하다. 특히 지역 주민들에게 밀접한 정책과제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대안을 형성하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지역의 정치주체가 형성되고 책임성이 강화될 수 있다. 이로써 지방분권을 실질적으로 이룩하고 다양한 지방자치의 모델을 만들 수 있으며 지역적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분권적 차원의 지역정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중앙정부에 대한 예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자치행정과 마찬가지로, 정치 역시 전국정당의 중앙정치에 지역정치가 좌우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문제는 전국정당과 지역정치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 전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요인이 있겠으나, 불안정한 제도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정치관계법의 문제가 지역정치의 활성화를 저해하는 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는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정치의 질을 한 차원 높이는 문제와 직결된다.
결국 지방분권을 가속화하는 방안으로서, 그리고 정치 전반의 발전을 추동할 수 있는 기제로서 지역정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지역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 중 하나가 지역정당의 창당과 활동이다.
(2) 지역정당의 의의
2018년 6월 13일로 예정되어 있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지역을 책임질 사람들을 선출하는 것임에도 여전히 중앙정치의 상황에 종속되어 있다. 지방선거가 전국정당들의 경쟁으로 국한되면서 지방선거는 중앙선거의 부차적 수준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지방정치가 이처럼 중앙정치에 예속됨에 따라 지역차원의 사안을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지역정치가 작동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아예 기초지방의회 의원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은 정당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격을 무시하는 것임은 물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당의 정치활동을 부당하게 규제한다는 측면에서 수용할 수 없다. 공직선거에 후보자를 내고 정책을 다듬은 공약을 제시하여 유권자들로부터 선택받음으로써 일정한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고 정강과 정책을 제도정치권 안에서 실현하는 것이 정당의 주요 기능임을 감안한다면, 기초선거에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지역정당이다. 여기서 지역정당이라 함은 “전국가적인 국민의사 형성과정에의 참여는 이차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고 주로 지역문제의 해결 내지 지역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전국적 사안에 대한 전 국민적 의사형성과정에 참여하기보다는 주로 지역문제의 해결과 지역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정당은 “시민주권, 생활자 주권에 입각한 커뮤니티 운동”의 성격을 가지기도 하며, 지역적 사안을 해결하는데 주력하게 된다.
관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앙집권적인 전국정당 중심의 정치는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국정당의 정치가 전국가 차원의 계획과 정책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지역에 맞는 특화된 발전전략이나 복지서비스를 만들지 못하고, 이로 인해 주민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세계화의 과정에서 지역의 특수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며, 지역차원의 발전전략과 의사결정과정은 매우 중요해졌다고 한다.
지역정당은 지역사안에 주로 천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정당의 ‘대리전’이 되어버리는 지역정치를 벗어나 자주적인 설립과 활동을 함으로써 지역에 특화된 대안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정치를 전국정당에 휘둘리지 않고 주민의 직접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지역정당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대두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역정당을 이렇게 특정 지역에 국한된 정치세력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역정치와 중앙정치는 대립적 관계라기보다는 상보적 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환경문제와 에너지문제, 개발문제 등은 그 효과가 해당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에 걸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이해당사자 간의 대립을 해소하고 발전적 대안을 만들어내어 이를 시행하도록 하는 지역정치는 결국 전국정치를 지역차원에서 수행하는 성격도 가지게 된다.
(3) 지역정당의 사례 : 일본과 독일의 경우
1) 일본
일본에서 지역정당은 한 지역에 근거를 갖는 정치세력으로 지역의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정치단체로 본다. 일본은 ‘정당조성법’은 제2조에서 중의원 또는 참의원 의원이 5명 이상 있거나, 직전 각 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의 비례득표를 획득한 정치단체를 ‘정당’으로 인정한다. 공직선거법 역시 제86조, 제86조의2, 제86조의3 규정으로 중의원 소선거구 후보출마 및 비례대표 선거참여, 참의원 비례대표 선거 참여에서 정당조성법 규정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단체들의 자격요건을 부여하고 있다.
이처럼 법규에 정한 바에 따라 일정수 이상의 후보자를 입후보시키고 이에 대한 확인서를 교부받은 단체들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통상 이를 ‘확인단체’라 한다. 확인단체제도가 운영되는 선거는 참의원 의원선거, 도도부현의회 의원선거, 정령지정도시의회의원 선거, 도도부현 지사선거, 시장선거로 5개 선거에 이른다.
일본의 지역정당은 통상 두 가지 유형의 발전경로를 따르는데, 하나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하여 지역정당으로 성장한 유형이다. 대표적인 예가 가나가와현(神奈川縣)에서 활동하던 ‘생활협동조합 가나가와’의 조합원들이 만든 ‘가나가와네트워크’이다. 다른 하나는 기존 전국정당에 대한 반발로 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유형이다. 전국정당이 지역의제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지역정당화를 하거나 지역정치의 분열로 인하여 창당한 것이다. 지역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네트워크 운동은 이후 전국차원의 연합정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지역네트워크형 국가정당으로 발전을 꾀했던 이 연합정당결성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2) 독일
독일의 경우 지역정당은 전국정당과 완전히 독립된 상태에서 활동을 하며, 예외적인 형태로 전국정당과 관련되거나 전국정당을 배후에 두기도 한다. 지역정당은 지방선거에 참여함을 목표로 하는데 주(州) 선거법에서 허용하는 경우에는 주 선거에 참여할 수도 있다. 현재 독일에서 주 선거에 지역정당의 참여를 인정하는 주는 7개 주에 이르며, 나머지 8개 주는 개별 지역정당차원에서는 주 선거에 참여할 수 없으나 연합정당을 만들어 참여할 수는 있다.
전국정당과 달리 지역정당은 이념이나 강령 중심이 아닌 경우가 많으며, 지역 여건에 정통한 지방정치인의 전문성을 중요시한다. 전문성과 탈이념적 정치를 추구하는 지역정당의 이러한 특성은 지방자치를 이념정치화화는데 대한 반발이라고 분석된다. 한편 시민단체가 지역정부의 외곽에서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것에 비해 지역정당은 공직에 직접 참여하여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서 대표를 낸다는 차이점을 가진다고 한다.
독일은 기본법에 지역정당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없으며, 정당법에서도 근거는 없다. 기본법은 제21조에서 정당설립의 자유와 지위, 운영원리 및 자금투명성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역정당은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결사체로서 헌법상 보호되고 있으며, 연방헌법재판소 역시 이러한 보호를 인정하면서 지역정당의 지방선거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독일은 정당설립에 관하여 한국과 같은 과도한 제한규정을 두지 않고 있으며, 지역정당은 법인격 없는 사단이어도 되고 당원의 비정기적 회합이 인정되는 것만으로도 설립이 가능하다.
(4) 지역정당에 대한 우려
지역정당이 정치의 활성화와 지방자치의 발전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주민들의 관심이 고조되어있는 사안들, 예를 들어 교육이나 복지문제, 환경문제 등을 주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해결할 수 있다. 전국정당과 경쟁함으로써 지방자치에 대한 전국정당의 간섭을 줄이는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의 지역정당이 평가받는 지점이 바로 지방자치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국정당 초지역적 범주의 정치활동을 하다보니, 지역상황에 무지하고 지역적 판단을 무시하는데다가 이념적 측면에서 지역정치를 좌우하는 것과 대별된다는 것이다.
반면 지역정당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역이기주의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지역의 이해관계가 전국적 차원의 검토가 필요한 사안을 배제하거나 굴절시킬 수 있다. 특히 지역의 토호세력 등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정당을 의도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일본의 경우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다시 반정치 또는 탈정치를 가속화할 수 있다.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와 전망에 따른 정치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보이는 말초적이고 단편적인 사안에만 천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민주주의의 쇠퇴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이러한 우려점에도 불구하고, 지역정당은 정치의 분권을 위해 유용한 수단으로 보인다. 정치의 분권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지방자치의 여러 요소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지역정당의 설립과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할 때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이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 제도적 정비과제
(1) 정치관계법의 개정
지역정당의 설립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고려할 때 우선 정당법을 통해 지역정당 설립의 근거를 마련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정당을 정당법상의 정당으로 규정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현행 정당법은 정당의 설립과 활동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정당법의 태도는 정당의 난립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되지만, 이러한 취지의 목적이 달성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당의 중앙당을 수도에 두어야 한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는 현행 정당법 구조에서 지역정당을 인정하는 근거를 만들려면 아예 정당법을 전면 개정해야 할 상황이다. 만일 정당법에 지역정당의 설립 근거를 둔다면, 정당설립의 기준을 과도하게 규정하고 있는 현행 정당법을 간소화하고 선거에 참여하는 정치단체를 준정당으로 인정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직선거법의 정비를 고려할 수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 역시 정당법만큼이나 규제가 과하고 지나치게 조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시기 정당연합과 같은 참여방식을 허용하지 않고 있고, 구조 자체가 전국정당을 전제하여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따라서 공직선거법 안에 지역정당의 정치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는 것 역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지방선거에서 지역정당 또는 이와 유사한 정치단체들이 후보를 내고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또한 지역정당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지역정당의 연합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정치자금법 역시 개정이 필요하다. 지역정당도 정치자금을 사용해야 하며, 전국정당과 마찬가지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우선 평상시는 일종의 단체로 유지되다가 선거시기에 후보를 냄으로써 지역정당으로 인정될 수 있는 단체들을 현행의 정치자금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 선거에 참여한 지역정당에게 국고보조금을 교부하는 등의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2) 헌법의 개정
지역정당을 설립하기 위하여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현행 헌법은 제8조에서 정당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나 정당의 형태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에 위임하고 있다. 대단히 포괄적으로 법률에 위임하는 태도를 헌법이 가짐으로써 지역정당의 설치문제는 법률의 정비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지역분권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는 과정에서 앞서 짚었던 지방자치 과제들을 염두에 둘 때, 지역정당의 설립과 관련된 지방자치 규정들을 보다 다듬을 필요는 있겠다. 헌법 제8장의 제117조와 제118조는 구조상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하위개체라는 전제에서 규정되어 있다. 중앙집권적 행정체계의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헌법에 의하여 제정된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에 대한 세부적 사항을 법정하고 있으며, 지방정부나 지방의회는 이 법률에 따라 구성되고 활동하게 된다. 지역정치를 활성화하고 지역차원의 특유한 자치형태가 발생하는데 원천적인 한계가 작동하고 있다.
국회 개헌특위가 진행하고 있는 개헌안 구상에서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개헌특위에서는 아예 헌법의 총강에 한국의 국가형태가 지방분권국가임을 명시하자는 안도 제기되고 있으며, 읍면단위의 자치권 도입도 이야기되었다. 큰 틀에서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강화한다는 방향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 정보화로 사회가 변하였고, 시민사회의 힘으로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을 밟을 정도로 민의가 숙성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획일성이 강조되는 현재의 중앙집권적 구조는 전방위적으로 해체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개헌을 하게 될 경우 헌법의 규정으로 지방자치가 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117조 제1항에서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는 규정은 개헌이 이루어질 때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헌법에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의 구성과 중앙정부와의 관계 등을 명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으나, 헌법에서는 대 원칙만 간명하게 정하고 법률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 마치며
지역정당을 지방선거에 국한하여 후보를 출마할 수 있게 한다거나, 최종적으로는 전국정당화를 지향하도록 하고, 또는 전국정당의 하부조직으로 편입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의견이지만, 사견으로는 지역정당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기보다는 지역정당이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에 제도적 정비가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오히려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지역정당이 설립되고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정당의 자유로운 설립과 활동이 보장되고, 정치의 분권화를 지향하면서 지역정치가 만개할 때 지방분권의 실질적인 작동이 가능하게 된다. 본문에서 살폈듯이, 지방분권은 변화된 시대의 요구이고,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 자치행정, 자치입법, 자치재정, 자치사법까지 가능한 지방분권을 추진하려면, 정치의 분권이 필요하고 지역정치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지역정당이 불가결한 요건임을 확인했다.
물론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전국정당들이 지역정당 설립에 소극적일 수는 있을 것이다. 만연한 ‘지역감정’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미 거대 양당이 지역할거에 기반하여 정치를 하는 현실에서, 오히려 지역 내의 정치적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지역의 맹주로 안주하고 있는 거대 양당만의 정치에 균열을 낼 수도 있다. 향후에 지역정당 설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