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평등교육 후기] 같이 탈시설의 길로 가자.
작년에 이어서 장애평등교육을 받으러 민주노총 총연맹 강의실로 갔다. 지각했다. ‘소비자주의’ 부분부터 들었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는 고를 수 있지만 선택지를 만들 수는 없다.”는 비판을 기억한다. 맞는 말이다.유튜브에 교육 영상이 올라오고 내가 미쳐 보지 못한 부분도 봤다.
강연은 ‘자립’을 다시 정의한다.
나는 자립하고 있는가? 강연을 듣기 전에는 경제적 측면에서 생각했다. 답은 아니오다. “등록금은 할아버지가 내주셨고, 생활비와 월세는 아버지가 내주시니, 입으로는 노동해방을 외치는 나는 롬펜이구나” 가 평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강연은 내 생각을 뒤집는다.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 , “장애인은 너무 의존하는 게 아니라 의존할 게 부족하기 때문에 자립이 어려운 겁니다.” 두 문장이 강연의 핵심으로 다가왔다. 문장에 다해 생각해본다. 나는 다양하게 의존할 수 있다. 지금 시험기간에 불만을 가지고 슈퍼 굳건이 프로젝트를 신청하거나 여처저차해서 군대를 갈 수 있다. 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을 준다. 아니면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볼 수도 있다. 사실 장학금을 이미 신청해 놓았다. ‘정상성’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게 이렇게 많다! 내가 쓰고도 나름 놀랍다.
‘정상성’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가? 사실 장애인 실업률은 매우 낮다. 실업 당할 사람들에 끼는 것 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강연을 다시 보며 이 말을 듣도 충격받았다.그리고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니…
작년 장애평등교육을 해주신 박경석님은 복지 기관에서 받으라고 한 교육을 다 받았지만 취업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장애인 운동을 시작했다고 하셨다.
어떤 영화 제목처럼,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서 어디서 살 지 어떻게 살 지 선택할 수 없어서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 있다. 시설, 시설사회에서 나와 장애인이 자립하자는 것이 탈시설 운동이라고 강사님은 얘기하셨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탈시설을 했는지 사례를 들어주셨다. 고등학교때 “탈시설한 국가도 중증장애인은 시설에 있다.”는 어느 신부의 기고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강사님은 중증장애인의 탈시설도 사례를 통해 현실 속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물론 사례를 보며 그게 쉽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럼에도 정말 감사했다.
부모님은 내가 너무 이상적이라고 한다. 이성적인 길이든, 어떤 길이든 가야할 길은 가야하지 않을까? 같이 탈시설의 길로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