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지역정당인가?
– 은평민들레당의 지역정당 모델 만들기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윤현식
지역정당 혹은 정당법 등 정치관계법을 주제로 강연을 하거나 간담회를 할 때마다 나오는 질문이 있다.
“지역정당은 뭘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이미 기존의 정당에서 활동했던 혹은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다. 아무래도 정치사업과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하다보니 정당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관심이 높고 참여가 제법 많다. 이처럼 정당활동의 경험이 있고, 정당활동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조차도 지역정당이 뭔지, 지역정당을 어떻게 만들지, 지역정당에서 뭘 하는지에 대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없는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운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정당 운동은 새길을 만들어나가는 전형적인 운동이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동안 참조할만한 모델이 없었다. 게다가 제도적으로 지역정당은 위법한 조직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지 않은 정치결사가 ‘당’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썼다가는 언제든지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정당에 관심은 가지만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한국사회에서 지역정당은 어떠한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전인미답의 미개척지이기에 처음 깃발을 어떻게 꽂느냐에 따라 그 형식과 실질의 방향이 정해지게 된다. 지역정당도 정당이기에, 강력한 정치결사로서의 특질을 간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중앙정치에 매몰된 전국정당과는 완전히 다른 활동양식을 가질 수 있다. 이 당이 어떻게 하느냐는 이 당을 만든 사람들의 상상력과 실행력에 달렸을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도 막연하다. 자칫하면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된다. 이럴 때 제시하는 모델이 있다. 은평민들레당이다.
은평민들레당은 서울시 은평구의 지역정당이다. 은평구에서 살거나 은평구를 생활의 주 기반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은평구의 사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은 정당이다. 선관위로부터 정당등록을 반려당한 법률상 불법단체이다. 하지만 은평구에서는 보수양당이 한 팀이 된 제도권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야당이다.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등 주요 정당의 지역조직이 존재하지만, 지역 사안에 대한 활동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은평민들레당의 활동은 독보적이다.
2022년 1월에 창당한 은평민들레당은 지역의 다양한 사안에 참여하면서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지역의 주요 녹지 중 하나인 봉산의 무분별한 난개발에 대응하여 활동한 것이 대표적이다. 실효성 없는 편백숲 조성사업이나 무장애길 설치 등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현황을 살피며 여론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노동문제에도 적극 결합해 지역의 노동문제에 개입하고 연대해왔다. 은평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서울시 행정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문제라든가 은평구에 소재한 혁신파크 재개발에 대한 대응이 그것이다. 이런 활동을 중심으로 구정감시 및 구의정감시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워낙에 작은 규모의 정당인데다가 법적으로 인정되지도 않은 상태이고 전국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사안과는 크게 관계 없는 지역 중심의 활동을 하다보니 은평민들레당의 활동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은평민들레당이 주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봉산 녹지 관련 사안은 주요 언론사들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기사를 내보내게 될 정도로 활동의 효과를 보고 있다.
전국적 의제를 놓고 싸우는 거대 보수 양당이나 기타 전국정당이 볼 때 은평민들레당의 활동은 약소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활동의 질과 양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은평민들레당의 정치활동은 지역의 삶에 기초하고 있다. 다른 전국정당이 지나치거나 선거철에나 몇 마디 하고 마는 지역의 일들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다루고 있다. 말 그대로 지역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정치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은평민들레당은 지역정당의 모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은평민들레당만으로는 부족하다. 은평민들레당과는 또다른 차원에서 지역정당의 모델이 많이 나타나야 한다. 각각의 지역에 특화된 조직구성과 활동양식을 만들어내야 하며, 서로의 활동내용을 비교 검토하면서 상승효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정당법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준비 등 지역정당 운동이 추구해야 할 과제가 여럿 있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각지에서 지역정당을 건설하고 지역정당의 다양한 활동모델을 창출하는 일이다.
다양한 지역정당이 만들어지고 지역정당 간의 소통과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앞으로 받게 될 질문이 다음과 같이 변화되길 희망한다.
“그래서 그 지역정당은 지금 뭘 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