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전환 운동’의 기관으로서 지역정당

  • 제도화로 이어지는 실천노선을 갖추어야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윤현식

 

정치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사이 세계는 황량해진다. 아니, 인과관계가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다. 황량해진 세계의 반영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치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먼저냐고 따질 필요는 없다. 양자 모두 제 궤도에 서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니까.

한때 사회운동이 정치를 추동했던 때가 있었다. 대중운동이 임계를 넘어서는 순간 구체제는 포말로 비산했고 그 과정에 정치가 작동했다. 87년 6월이 그랬고, 7·8·9 노동자 대투쟁이 그랬다. 96년 연말 노동법 날치기를 저지하기 위해 도심을 메웠던 노동자의 열기, 2016-2017 연말 연초의 촛불 역시 그러했다. 아예 사회운동이 정치 자체를 담보하려 했던 시기도 있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이후 17대 국회에 진보정당의 의원이 등원했던 게 그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운동과 정치의 상호작용은 번번이 보수정치의 질서재편 수준에서 정리되고 말았다. 87년의 광장은 기득권 정치세력의 휴전으로 종료되었고, 96년 노동자들의 분노는 불과 1년 만에 IMF의 철퇴에 의해 징벌당했다.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낳았던 2016-2017의 촛불 또한 집권세력의 교대로 정리되었다. 그나마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고단한 노정마저 2024년 제22대 총선을 기점으로 일단락되었다.

이러한 경과는 깃발을 잃어버린 사회운동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기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지던 사회운동의 적극적 정치개입은 2010년대를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와해되었다. 각종 선거에 대응하며 운동적 시각에서 한국사회에 필요한 전망과 실천노선을 제시했던 사회운동진영이 사안 대응 이상의 정치적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게 된 건 이미 십수 년도 전에 시작되었다. 특히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2012년 통합진보당의 분당 이후 민주노총이 선거방침을 넘어선 정치방침을 제시하지 못한 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네셔널센터로서 역할하지 못한 시간도 이미 십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현재의 정치세력만으로는 극복 또는 대응이 요원해 보이는 비상한 사회문제들이 비등했다. 급격히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는 기후위기, 글로벌 경제위기, 세계대전의 전조처럼 보이는 각국의 무력충돌, 빈부격차의 극대화와 돌봄의 위기, 젠더·세대·계급·계층 간 갈등의 고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다각적으로 교접하면서 만들어내는 가장 큰 위기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위기다. 갈등과 충돌을 자양분 삼는 포퓰리즘이 사라진 민주주의의 자리를 점령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일련의 기동들이 있다. 대표적인 움직임이 ‘체제전환 운동’이다. 한국의 ‘체제전환 운동’은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 · 지구적 문제들에 대한 운동의 집체 형식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체제’란 무엇이고, ‘전환’이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결합한 각 운동 간 이질성과 차이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체제전환 운동’이 최소한 자본주의 체제가 야기하고 있는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초과한 착취에 대한 저항이라는 분모를 공유하는 것은 분명하다.

‘체제전환 운동’은 아직 완결적이지 않은 조직체계이고, 실제로 이제 체계를 갖춰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체제전환 운동’이 어떤 방향을 설정하고 조직적 결사를 형성할지는 운동의 진척에 달려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운동’의 실질이 사회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한 실천노선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그 운동의 노선이 사회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함을 승인받은 의제는 더 이상 운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운동은 결국 보편성의 획득을 기점으로 소멸되는 것을 자기 운명으로 삼고 있다. 이때, 사회적 보편성의 획득을 보여주는 일단의 기표는 제도다. 물론 제도가 성립한다고 하여 문제 자체가 사라지는 것과 등치될 수는 없다. 부당한 제도는 오히려 운동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 안에서 어떤 의제가 제도화의 경로를 밟아 보편성을 승인받게 된다면 그것은 적어도 운동이 가졌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제도라는 결과물은 단지 구호로 확보되지는 않는다. 제도는 이를 만들어내는 절차를 필요로 하고, 이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운동의 여러 단계가 작동하게 된다. 특히 제도, 즉 법은 권력분립이 작동하는 구조에서는 입법부의 몫이므로 이 입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세력의 실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제도화의 경로에는 반드시 정치세력의 존재가 필요하게 되며 운동은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체제전환 운동’의 작동구조 안에 일종의 실천기관으로서 정치세력을 고려할 필요가 여기서 제기된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체제전환 운동’은 기관이 아닌 ‘운동=정치’의 관점을 정치세력화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실체적 기관, 즉 결사로서의 정치세력,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정당에 대해서는 일정한 배제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게 현재의 ‘체제전환 운동’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운동이 양질전환의 변곡을 넘어 보편성을 확보하게 되어 제도화의 경로를 밟게 될 때, 그 제도화는 ‘대리정치’의 문턱에 걸리게 된다.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제도를 자본주의의 대리인인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게 맡겨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다.

어떤 운동이든 제도를 우회할 수는 없다. 제도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의제는 사회 구성원의 동의와 참여를 만들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 제도를 외주로 맡겨선 안 된다. 운동의 시작과 끝이 그러해야 하듯, 제도 역시 운동 주체의 힘으로 완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조직이 바로 정당이다. 그것도 실물 정치에서 일정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직접 여론을 조성하고 획득된 여론을 보편적 질서로 체계화하는 정당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체제전환 운동’의 실천경로로써 정당, 그 중에서도 지역정당은 심도 있게 고려되어야 한다. 운동의 성패는 조직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고한 정치결사로서 정당은 당 안팎에서 운동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운동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운동과 정당이 단지 대리관계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원내 정당과 유리된 사회운동이 입법을 원내정당에게 맡겼을 때 벌어졌던 참담한 결과들은 수를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다. 원내진보정당조차도 입법의 하청 역할에 자족한 결과는 오늘과 같은 정치의 부재와 운동의 공백이다.

따라서 ‘체제전환 운동’의 한 축에는 여전히 정치세력화의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운동의 주체인 동시에 운동의 성과를 제도로 진전시키는 당사자로서 정당은 존재해야 한다. 지역과 현장에서 동떨어진, 그래서 당위적 총론에는 강하지만 구호 이상의 액션을 하지 못하는 그런 정당이 아니라 지역과 현장에 천착한 정당이 필요하다. 지역정당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체제전환 운동’의 중요한 기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