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당 없는 지구당 부활은 위험하다

 

노동 · 정치 · 사람 정책위원 윤현식

 

제22대 국회 최초의 정치관계법 개정은 정당법 개정이 될 지도 모르겠다. 보수양당에서 공히 지구당 부활을 우선 과제처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개원과 동시에 지구당 설치를 골자로 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민의 힘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언질이 나오면서 지구당 부활에 목소리를 모으는 중이라고 한다(경향신문, 5월 29일 보도).

현행 정당법은 전국정당의 지역 골간조직을 광역 시도당으로 정하고 있다(법 제18조). 이 규정에 따르면, 정당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5개 이상의 광역 시도당을 확보해야 한다. 정당은 자유로운 정치결사체로서 그 결성의 취지와 목적이 분명할 것 이외에는 최대한 조직구성과 활동에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사회의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볼 때, 5개 이상 광역 시 · 도 단위에 1,000명 이상의 조직을 갖춘 거대 거점을 가져야 정당으로 인정해주겠다는 현행 정당법의 강요는 괴이하기까지 하다.

원리적으로 따지자면 국가가 굳이 정당의 규모와 조직구성을 법으로 강제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국가가 정당법을 두지 않는 이유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국정당의 기초 골간조직을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의 지구당으로 한다는 방향은 현행 정당법 체계보다는 더 나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실 현행 정당법 이전의 구법은 광역 시도당이 아니라 지구당을 정당의 지역조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4년 법이 개정되면서 현행 시도당 체계가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지구당은 운영상의 여러 폐단으로 인해 ‘돈 먹는 하마’니 ‘지역 유지의 사당(私黨)’이니 하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지구당을 운영하는데 사무소 임대료, 인건비 등 비용이 상당히 소모되는 데다가 상설적 활동을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이 필요했다. 특히 운영과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누가 부담하느냐에 따라 지구당이 개인에게 종속되는 현상도 발생했다. 정당 정치의 ‘고비용 비효율’ 구조의 핵심으로 지구당이 찍히게 된 원인이었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관련 위헌법률심판에서 과거 지구당이 “풀뿌리 민주주의 조직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주로 현역 정치인이나 정치 후보자의 선거조직 관리와 선거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2016. 3. 31. 2013헌가22).

이처럼 지구당은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정치를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원흉으로 지목되면서폐지 여론이 높아지던 때에 마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차떼기 사건’이 터졌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모아 2.5톤 트럭과 다인승 승합차로 실어 나르면서 대선자금으로 유용했던 사건이었다. 금권정치의 부패상에 경악한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었고, 주권자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고강도의 정치개혁으로 여겨질 만한 액션이 필요했다. 이 와중에 동네북이었던 지구당이 우선순위의 개혁대상으로 제시되었고 결국 정당법 개정으로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지구당이 강제로 폐지되다시피 할 정도로 많은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당의 문제는 그 조직이 가지고 있는 태생의 한계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보수양당을 중심으로 하는 구체제형 정당들이 1인 보스를 중심으로 상명하복 형태의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조직운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구당이 이용되었을 뿐이다. 사람이 문제였지 지구당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2000년에 등장한 민주노동당은 지구당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지역활동에 착근한 현장 밀착형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만들어냈다. 물론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일부 지구당은 문제를 일으켰다. 특정 정파가 조직원들을 위장전입시켜 한 지역을 장악하기도 했고, 어떤 지구당에서는 회계 담당자가 회계를 조작하여 경비를 다른 목적에 유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잡음이 일부 있었으나, 민주노동당 지구당의 정치활동은 정당 민주주의의 모범이자 지역 정치활동의 모범이 되었다. 의석 하나 없던 당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만들어내고, 개인파산 및 면책제도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어 경제위기에 몰린 수많은 주민을 도왔고, 친환경 무상급식운동을 통해 주민참여운동의 획을 긋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지구당의 왕성한 활동이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구당이 폐지됨으로써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정당은 다름 아닌 민주노동당이었다. 지역구 의석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보수정당들은 지구당 사무실이 없어진다고 한들 그다지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어차피 지구당이 있었던 때에도 이미 보수정당의 지구당은 지역구 의원을 위한 자원기지 역할을 했었고, 지역구 의원이나 유력한 지역유지의 사조직처럼 운영되었다. 지구당 폐지로 인해 지역 사무실이 없어진다고 해도 보수정당 지역구 의원의 사무실과 인력은 건재했다. 오히려 국회에 의석은 없지만 지역에 뿌리 내리고 그 기반을 다져가던 민주노동당은 졸지에 뿌리 내릴 거점이 사라져버리는 나락에 빠지게 되었다. 정당법 개정 직후 있었던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10명의 의원을 배출했지만, 그 이후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은 보수정당과 차별된 역량이었던 지역활동의 거점을 잃으면서 확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문제의 정당법 개정 직후 민주노동당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기각당했다(2004. 12. 16. 2004헌마456).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지구당 부활론이 부상하고 있다. 사실 지구당 부활은 느닷없이 돌출한 사안이 아니다. 지구당 폐지 이후 지역정치에 문제점들이 불거지자 ‘당원협의회’라는 조직을 정당법에 끼워넣기도 했다. 그러나 인적 물적 활동기반을 불허하는 당원협의회는 지구당과 같은 조직력이나 실행력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결국 지구당을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국회에서는 지구당을 부활시키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지속되어 왔다. 20대 국회에서는 지구당 부활을 내용으로 하는 정당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불발이 되어왔던 터다. 그런데 이번 지구당 부활논의는 상당히 추진력 있게 진행될 것 같다. 양당 공히 매우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당의 조직구성이나 운영원리에 비추어볼 때 현행 정당법보다는 바람직한 방향의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지구당 부활 논의가 정당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가가 이처럼 세세하게 정당의 조직이나 운영에 관한 사항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뇌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구당은 부활시키자고 하면서 정작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적 동력이 되는 지역정당의 보장에 대해선 전혀 논의가 없다. 현행 정당법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전국정당만을 정당으로 인정한다는 법의 구성이다. 이러한 구성이 형성된 계기와 문제에 대한 이해가 없다보니 그저 당리당략에 따라 지구당을 부활시키면 어떻겠느냐는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이런 인식 아래 지구당을 부활해봐야 지구당을 폐지할 때 제기되었던 각종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없다. 전국정당의 지구당 부활은 지역정당을 보장하는 방향과 함께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지역정당의 보장 없는 지구당 부활은 결국 보수양당의 정치왜곡만 가속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