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치를 빙자한 전국정당 추진을 우려하며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 윤현식

 

2024년 5월 23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어 있는 정당의 숫자는 50개에 이른다. 등록된 창당준비위원회만도 9개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정당 현황만 보면 한국은 매우 활성화된 다당제 국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정당 중 22대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한 정당은 8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기본소득당이나 사회민주당은 지역구 의석 없이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민주연합에 속해 있었기에 비례 1석씩을 건졌을 뿐이다. 전체 의석 300석 중 더불어민주당이 171석, 국민의힘이 108석으로 보수양당의 점유한 의석이 93%에 달한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겉보기만 다당제 국가일 뿐 실질적으로는 확고한 양당제 국가임을 알 수 있다.

지역정당 운동의 여러 목적 중 하나는 이렇게 고착된 양당구조에 근원적인 파열을 내려는 것이었다. 중앙정치에 개입하는 전국정당으로서가 아니라, 차근차근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낡은 정치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는 힘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지역정치의 활성화와 그 동력으로서 지역정당이 등장하고, 그 결과 제도적으로 지역정당을 막고 있는 현행 정치관계법들을 개정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지역정당 운동의 지향이다. 이러한 실천노선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과 현장에 뿌리박은 정치결사, 즉 지역정당을 활발하게 창당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지역정당 운동을 이처럼 바닥에서부터 다지는 방식으로 진척하는 데에 부담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쉽게 말해, 그런 식으로 했다가 어느 천년에 정당법을 개정하고 지역정당을 합법화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하루라도 빨리 지역정당을 합법화하려면, 지금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좀 더 효과적이고 강력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앞서 살펴봤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바로 이런 취지로 전국정당을 창당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등록한 창당준비위원회가 하나 있다. “직접민주지역자치당” 창당준비위원회(이하 ‘지역자치당 창준위’)가 그것이다. 이 창준위는 지난 2월 27일에 창준위 등록을 하였다. 창준위는 등록한 후 6개월 내에 창당을 마쳐야 한다. 오는 8월 27일까지 창당을 하지 못하면 자동 해산된다.

지역자치당 창준위가 시도하는 방식의 핵심은 현행 정당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현행 정당법은 최소 5개 이상 광역시도당(법 제17조)과 중앙당(법 제4조)을 가지고 있을 것을 정당설립의 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중앙당의 서울에 두어야만 한다(법 제3조). 또한 각 광역시도당 당 최소 1,000명 이상의 당원(법 제18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역자치당 창준위가 정당법에 맞게 창당작업을 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5개 시도에서 ‘광역자치당’을 창당하고, 동시에 중앙당을 창당한다. 중앙당의 사무소를 서울에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각 광역자치당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며, 건설되는 “자치당”은 광역자치당의 연합정당으로서 중앙당은 연합의 유지를 위한 간사 역할 외에 다른 역할을 특별히 부여받지 않는 지위를 유지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역정당 운동의 취지를 살리면서 다른 전국정당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다음으로 이렇게 조직이 구성되면 현행 정당법에 의거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 등록을 한다. 창당 등록이 완료되면 이후 진행되는 국회의원 총선거나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참여하여 국회의원 또는 자치단체의 선출직으로 진출하여 지역정당을 보장하는 정당법 개정 등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상당히 원대한 구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질은 그저 전국정당을 만들겠다는 거다.

이들이 추진하는 방식은 현실적 측면과 당위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전국정당화는 지역정당 운동과는 상관이 없거나 오히려 지역정당 운동을 왜곡한다. 지역자치당 창준위의 방식은 단순히 전국정당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말로만 지역정당 혹은 지역정당의 연합을 이야기할 뿐 그 실질은 지역정당과 하등의 친연성이 없다. 달리 말하면, 제22대 총선에서 노동당, 녹색정의당, 사회민주당이 정치개혁과제 중 하나로 지역정당 창당을 가능하게 하는 정당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놓은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전국정당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지역정당 창당을 할 이유가 없다.

한편, 이러한 방식으로 정당법 개정안이 올라온다고 한들 그것은 지역정당에 우호적인 어떤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한다. 어떤 의제가 운동을 통해 그 지위를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건 운동이 아니면 대중들의 관심을 촉발할 어떤 계기도 없기 때문이다. 지역정당 운동은 철저하게 대중들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될 때 비로소 제도적 정비의 단계로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대중들의 동의를 얻고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 없이 막연하게 법안만 만든다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것은 지난 17대 국회에서부터 21대 국회까지 무려 20년에 걸친 입법과정을 돌이켜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

정당법 개정은 보수양당을 비롯해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전국정당의 관심사가 아니다. 철저히 여론에 좌우되는 대의정치 구조에서 지역정당이 자기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내에서 법안 하나 올라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부터 자기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 없이 그저 의석 하나 만들어서 법안 하나 올린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되려 대중들이 지역정당에 대한 인식을 오인하도록 만들게 된다.

현실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우선 이런 식으로 전국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실제로 지역자치당을 추진하던 사람들은 2023년 초부터 이런 형태의 전국정당화를 주장했었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일을 추진했었다. 2024년 제22대 총선에 참여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면서 창당을 추진했지만 2월 말이 되어서야 창준위 등록을 했고 결국 총선 전 창당은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창준위 존속기간인 8월 말까지는 창당을 하겠다고 하지만 창당은 요원해 보인다.

설령 우여곡절 끝에 창당을 한다고 한들 문제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앞서 보았듯이, 이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되어있는 정당은 무려 50개다. 지역자치당이 정당등록을 완료하게 되면 등록정당은 하나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사회적으로 어떤 효용을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이름도 모르는 수십 개의 정당 중 하나가 늘어난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지역정당 운동에 하등의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전국정당을 만들어서 효과적으로 상황을 돌파하자고 이야기하는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보수양당에 포획된 한국 정치의 상황을 돌파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그러한 답답함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하지만 목이 마르다고 구정물을 마실 수는 없다. 배가 고프다고 빵 대신 벽돌을 씹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이 발을 딛고 선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정치결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지역정당의 출발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역정당이 지역의 의제를 자신의 책무로 삼고 주민이 지역정치의 주체로서 지역정당을 무기로 삼을 때 제도 변화의 길이 열리게 된다. 법과 제도가 잘 되어 있다면 운동은 의미가 없다.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보편성의 확보이며, 보편성이 확보되었음을 웅변하는 표지는 바로 제도다. 이 원리를 무시한 채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과정 없이 표지만을 확보하려다가 운동 전체가 붕괴한다. 그럼에도 총선이 끝나자 2년 후 지방선거를 지역자치당 방식으로 대비하자는 주장이 슬며시 제시되고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지역자치당 창준위의 현실과 향후 행보를 주시하기 바란다.

현행 정당법 체계는 1962년에 형성되었다. 그 후로 물경 한 갑자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토록 강고하게 한국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정치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계획과 면밀한 추진이 있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도처에 지역정당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역정당을 창당하고, 선관위에 계속 등록신청을 하고, 지역정당의 이름으로 후보 등록을 하고, 정당등록신청과 후보등록신청이 선관위로부터 반려될 때마다 항의하고, 선전홍보 하고, 언론에 알리고 여론전을 하면서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거다. 이런 상황이 전국에서 2,000건도 아니고 200건도 아니고 달랑 20건만 더 나오게 되면 법은 바뀌게 될 것이다.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