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총선의 결과는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압승이었고 국민의힘의 열패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결과로써 우리에게 뼈아프게 다가오는 건 바로 “300 대 0”이라는 의석점유다. 진보-좌파 정당의 의석이 이제 원내에서 사라졌다는 거다.

좌파정당이 지리멸렬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거다.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전망의 제출이 부족했다. 녹색과 적색의 연합이 이번 선거에 출현했지만, 양자의 결합이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끝났다. 구체적인 실천노선 역시 미약했다. 독자적 총선돌파를 선택한 노동당이 내놓은 정책은 그 정책이 가진 의미와는 별개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이런 저런 현상의 결과는 보수 우파 일색의 국회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에 기꺼이 참여한 군소정당들은 진작에 진보-좌파의 정체성과는 결별했다. 예컨대 진보당을 두고 일각에서는 변절이니 투항이니 하지만 그러한 평가는 실체와는 거리가 멀다. 진보당은 물론, 위성정당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일부 인사들, 즉 ‘시민사회 원로’를 참칭했던 사람들의 면면을 염두에 두면, 이번 진보당의 위성정당 참여는 이들은 자신들이 지난 세월 동안 가지고 있었던 노선에 충실한 결과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통일전선전략을 단 한 번도 폐기한 적이 없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국민의힘을 경유하는 일군의 세력과 대적하기 위해서라면 민주당계와는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버린 적이 없는 정치세력이다. 22대 총선을 맞이해서야 비로소 그들은 제 신념과 역할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갔을 뿐이다.

그동안 민주당계 바깥에서 머물러 왔던 역사만으로도 본색을 감추며 오래 참았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진보당과 저 ‘시민사회 원로’ 참칭 그룹의 정체성은 외부에 내놨던 여러 ‘진보적’인 언술과는 별개로 보수정당과 다름이 없었다는 거다. 이런 정치세력과 통합이니 결집이니 했던 일군의 좌파들은 그 이합집산의 과정에서 민주당계에 살과 뼈를 내주거나 정당정치 바깥으로 정치역량을 소실시켜왔다. 그 결과로 오늘날 보수 일색의 의회가 구성되었다.

운동의 결과물은 제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운동은 궁극적으로 제도화의 경로를 밟아야 한다. 가장 강력한 제도화는 당연히 입법이다. 정당운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현실 제도권 정치에 일정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을 때 운동의 성과를 제도로 귀착시키는 실무를 감당할 수 있다. 그처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원내 의석이지만 이번 22대 총선을 계기로 그 역할을 수행할 자리는 사라졌다.

300 대 0의 국회는 노동자 민중의 삶이 앞으로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점을 예정한다. 노동자 민중의 평화롭고 평안한 삶이 보장되는 세상은 더 멀어질 것이다. 그 세상을 만들겠다고 자임했던 좌파 정당의 패주는 무책임한 일이다.

구체적인 평가와 대안의 설정은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구체적인 집권의 의지와 비전이다. 유권자는 집권 의지 없는 정당을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집권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하게 보여야 비로소 유권자는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

둘째, 지역과 현장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동안 알량하나마 원내에 의지처를 두고 있었던 탓인지 몰라도 ‘공중전’엔 익숙하지만 풀뿌리가 매우 허약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유효한 실천노선이다. 세력이 불리하다고 해서 일단 머리수부터 불리자는 식의 경로선택은 이제 불가능하다. 누구나 알 수 있고 할 수 있는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지속성과 확장성을 추구해야 한다.

어려운 시간이 지속될 것이다. “300 대 0”으로 상징되는 보수 일색의 세력구조가 그 시간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고. 당분간은 충격과 실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털고 일어나 또 앞으로 나갈 사람들이 있다면 “300 대 0”의 정치판도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