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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교실 후기 -‘수화언어’는 언어다

노동·정치·사람 김세현

드라마 <안나>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농아인인 코다(Children Of Deaf Adult)로, 수어를 구사한다. 작중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남편이 운영하는 장학재단 행사에 수어통역사가 참석하지 못하자, 대표로 상을 받는 농아인 학생을 위하여 그 수어를 통역하며 유명세를 얻는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혹여 실수할까 걱정하는 학생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하여 참석객들을 향해 ‘수어도 모르는 바보들아, 멍청이들아’라고 수어로 이야기하며 어차피 실수를 하여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 장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농아인들이 구어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반면, 청인들은 특별한 행사에서 잠깐 몇 가지 표현을 익히는 정도를 제외하면 수어를 일상적으로 익힐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런 현실에서 진보적 장애운동에 결합하는 우리 노동·정치·사람의 회원들이라면 더욱 수어를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는 생각으로, 지난 10월 24일부터 수어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수업은 매주 화요일 저녁 1시간 30분동안 진행되는데, 다소 짧은 시간동안 수어표현을 외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어가 어떤 원리로 형성되고 발달하였는지, 농문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등을 배우며 한국수어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언어체계임을 배우고 있다.

 

청인들은 흔히 한국수어에 대하여, 한국어를 손짓 등으로 표현하는 보조적이고 종속적인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른 외국어를 배울 때 단어 하나하나를 외운다고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문법과 규칙을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른 언어를 존중하지 않고 한국어의 규칙에서 단어를 번역, 배열한다면 그 뜻이 왜곡될 것임은 틀림없다. 한국수어는 한국어와는 달리 표의체계에 가깝고, 그렇기에 단순히 한국어를 수어로 일대일 번역하려고 한다면 수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수어교실을 통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이다.

 

나의 전공분야인 법과 관련해서도, 법률용어를 하나하나 수어로 번역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인 중심의 법률체계에서 눈을 보기, 표정을 사용하기 등 농문화 자체를 이해하고 체득한 법률가들이 필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단어가 없는 것도 당연히 큰 문제이겠지만, 청인들이 농인들의 언어체계를 전혀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유효적절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고 그로 인해 농인들이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수어는 농아인의 ‘사회융화’에 방해되는 것으로 여겨졌고, 교육자들이나 양육자들은 농아인이 구어와 독순법을 익히기 권장하였으며, 현대에는 인공와우수술이 확산되며 청각장애인 중에서도 수어 사용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회가 농아인들이 수많은 불이익을 겪는 청인중심사회가 아니라면, 농문화, 농정체성을 부정하고 열등하거나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여기는 이런 태도는 타파될 수 있다. 더 많은 청인들이 수어를 구사하게 된다면 농아인들이 겪는 불이익이 조금이나마 축소될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 노동·정치·사람이 지역에서의 수어교육부터 여러 실천을 통해 농문화를 수용하고 농정체성을 긍정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현실적 기반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바라며, 이에 함께하길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