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연대팀 2월 세미나후기와 발제 자료집] 무던함과 수치를 뚫고, 내가 지나온 곳으로 되돌아가기를 다짐하며

*발제 자료집은 하단에 게시된 첨부 자료를 참고해주세요.

노동정치사람 청년연대팀 세미나 진행 사진

가람: 세미나 참석자, 노동•정치•사람 회원

 나는 첫 오프라인 대학 생활을 앞두고 있다. 남들보다 몇 년의 시간을 돌아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복잡했다. 대학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대학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내가 돌고 돌던 시간처럼 대학에서도 과거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을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지난 과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는 FTM 트랜스젠더다. 고등학교를 떠나기도, 그 여파로 학교 밖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아니 어려웠던 경험의 교훈을 바탕으로 내가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은 어디일지 열심히 고민했다. 그 결과 어쨌든 대학 문턱을 밟는데 성공했고, 이제는 그곳에 들어가길 코앞에 둔 찰나였다.

그러던 중 한 MTF 트랜스젠더 친구가 활동하는 단체인 노동•정치•사람 청년연대팀의 세미나를 초대받게 됐다. 세미나 이름은 ‘성소수자가 직접 만드는 다른 학교, 그리고 다른 정치를 상상하기’였다. 내용이 꽤나 신선했다. 소수자 운동의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학교 밖 성소수자를 위한 야학을 만들자는 것이다. 마침 내 상황과 맞물려 세미나에 기꺼이 참여했다. 그리하여 노동•정치•사람 사무실에 도착해 발제를 듣고, 참석자들끼리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세미나를 가졌다. 준비가 조금 미뤄져 5시 20분 정도에 시작된 이번 세미나는, 꽤나 왁자지껄했던 집담회까지를 마치고 뒷풀이까지 가져 9시쯤 마무리됐다.

 무던하게 어우러지기

세미나의 시작을 연 내 친구의 발제는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라는 단체가 2020년에 진행했던 학교 밖 청소년 트랜스젠더 검정고시 야학, ‘튤립교실’의 경험을 나누는 내용이었다. 내 친구는 흥미로운 사례로 발제를 열었다. 2019년 튤립연대는 트랜스젠더와 앙숙인 걸로 여겨지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10대를 초대해, 10대 트랜스젠더와 대화를 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이 인터뷰는 우려와 달리 꽤나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또래이고, 두 집단 모두 학교에서 성차별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비슷해 오히려 서로 공감하고, 친해졌다는 거다. 그러면서 내 친구는 자퇴를 하거나 자신을 숨기는 삶을 사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자기 또래와 편하게 어울리며 생활할 수 있는 교실이 있었더라면, 2020년 숙명여대 사건과 변희수 하사 사건 때 나타난 거센 혐오와는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지 않았겠냐고.

그러면서, 트랜스젠더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을 이어 갔다.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지만, 그 ‘어디’에 존재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는 자신을 숨기거나 부정해야 한다고. 그래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는 트랜스젠더에게도 빨리 떠나야 하고, 임시적인 장소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이러다 보니 수술과 법적 정정 이후 커뮤니티를 떠나거나, 아니면 그럴 만큼 여력이 되지 않아 마음이 힘든 벗들만 커뮤니티에 남게 되어 커뮤니티의 재생산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트랜스젠더, 더 나아가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비슷하다. 나는 2018년에 복학생 신분으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해 2월에 ‘미투’로 한 아티스트의 성폭력 가해를 공론화했고, 이어지는 법적 공방과 교사들의 몰지각한 말, 학생들의 따돌림 등에 지쳐 도망치듯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대입을 결심하고 처음 든 생각은 ‘대학교에서는 도망가지 말아야겠다’였다. 이를 위해 ‘성별에 문제가 없어 보이고’, 선생이 어떤 말을 하건 묵묵히 동의하고, 보편적인 욕망을 갖고(이를테면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 취업을 잘하고 싶다와 같은), 무던하게 어우러져야 하지 않을지 고민했다. 그것이 내가 터득한 학교에서의 생존 방식이었다. 많은 공동체가 마치 어떤 시민, 즉 젠더화된 폭력의 피해 경험자, 또는 젠더가 모나게 보이는 사람 등은 그곳의 구성원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만들어져 있다. 나는 그 ‘어떤 시민’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 이를 연습하기. 그러나 또 실패하기. 이 속에서 흐릿하게 일렁이며 부채감을 주는 나의 과거, 이 과거를 되새기게 하는 나와 같지만 대학에 갈 여건이 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트랜스젠더 아무개들의 모습.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고 해서 내가 그 ‘어떤 시민’이 아니게 되는가? 의료적 트랜지션과 성별정정을 마치고 ‘스텔스’로 살아가는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니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한 막연한 부채감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안고 참가한 세미나라, 내 벗의 발제가 한마디 한마디 마음 깊이 와닿았다.

 내 곁에 바로 존재할 것 같은, 성소수자 시민의 형상

피해 왔던 수치와 부채감의 경험을 정확하게 짚은 후, 내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다양한 트랜스젠더가 존재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에겐 자신과 함께 살아가고 바로 곁에 존재할 것만 같은 트랜스젠더 시민의 형상이 없다고. 군에, 학교에, 직장에,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서 함께 급식을 먹고, 일을 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존재할 법한 트랜스젠더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그 첫 출발은 바로 학교에서부터 트랜스젠더가 차별과 혐오로 인해 사라진(것 처럼 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고. 트랜스젠더뿐만이 아닌 다른 성소수자들도 마찬가지다. 동료 시민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소수자적 정체성은 곁가지로 치워 두고 ‘그게 다가 아닌 것처럼’ 행동해야 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곁가지로 치워 두면 없는 것처럼 지워지는 것이 소수자의 정체성이다. 복무 중에 수술을 위해 해외에 다녀와야 할 때에도, 수업 중에 ‘그래서 남학생이에요, 여학생이에요?’ 같은 질문을 들을 때에도,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겪을 때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위해 그것들을 묵묵히 견뎌내야 한다. 어디론가, 성소수자 대학 동아리나 몇몇 구역과 같은 곳에 ‘도망가야’만 우리의 존재를 겨우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성소수자들이 다른 시민들과 전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의 세계에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특히 학교가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내 벗은 이를 위해, 자신이 활동하는 단체인 ‘튤립연대’에서 청소년 시절부터 트랜스젠더 10대의 삶, 특히 교육 문제를 가시화 하기 위해 유튜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당사자의 삶을 알리고 당사자를 잇는 활동을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문제를 알리고 오픈채팅방에서 사람을 잇는 것으론 넘을 수 없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파편화, 무엇보다 그가 대학생이 되고,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부채감으로 인해 다른 방식의 운동을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이를 위해 “우리에겐 교실이 없다, 교실 바깥에서 모이자”를 너머 “우리가 교실을 만들자”는 생각, 즉 학교 밖 청소년 트랜스젠더를 위한 교실, 튤립교실 사업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그 경험이 정말 값졌다. 학교 밖에 있는 청소년 트랜스젠더들과 코로나로 인해 만날 수 없는 와중에도 온라인 화상 대화로 매일 하루를 살펴주며, 공부를 봐주고, 가끔 피크닉도 나가고, 진로 교육도 하고…. 그러던 중 언젠가는 대학을 꿈꿨으나 가정과 현실의 장벽으로 그 꿈을 접고 미용으로 진로를 택한 학생이, 마치 전태일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대학생 친구를 어디서 사귀겠어요?”라며, “어른들은 매번 날 괴롭혔고, 대학생은 먼 존재 같았어요. 근데 선생님들 모습을 보고, 제 진로와 삶을 떳떳하게 만들면, 대학에 간 것만큼 자랑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그 속에서 고뇌, 두려움, 그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경험이 있다. 비록 다른 이들은 우리가 ‘갑자기 나타난 존재’라고 여기지만, 우리에겐 이런 삶이 있다. 이 ‘어린 시절의 고민’을 함께 덜어주고, 또 이런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려주는 교실, 그런 교실이 있다면 어땠을까.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자

찡한 이야기를 이어받아, 다음 발제인 로자 씨의 발제가 있었다. 지금까지 소수자 운동의 상황과 대안에 관한 발제였다.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폭력이라 말할 수 없었던 것을 폭력이라 말할 수 있게 해 준 자조모임 성격의 운동은 의미가 있지만, 보수 세력들은 이 자조모임 성격의 운동조차 조롱하고 공격하는 백래시를 가했다고. 또 자조모임 성격의 운동은 생활하는 곳과 ‘거리를 두어야’ 갈 수 있는 곳인데, 이로 인해 현실과 운동 사이 갭에서 오는 어려움, 때마침 닥친 백래시로 인한 위압감으로 많은 소수자, 운동 주체들이 결국 운동을 하길 포기했다고 로자 씨는 진단했다. 결국 자조모임 ‘이후’가 무엇이냐 할 때 제도와 법을 바꾸자는 데로 운동이 수렴됐지만, 오늘날 보수적 제도정치의 한계 속에서 당사자들의 ‘지침’은 가중된다. 또 법과 제도를 위한 싸움만으론 아래에서부터 밀접히 효능감을 주는 내용을 만들기 어렵기도 하다.

여기서 왜 노동•정치•사람이 ‘성소수자 야학’을 만들자는지 파악하게 됐다. 노동•정치•사람은 노동•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과 연대의 가능성을 찾는 단체다. 노동•진보운동과 소수자운동은 서로를 밀접히 필요로 하며, 또 서로의 교훈을 나눠 새로운 전망을 세워야 답보 상태를 넘어설 수 있다고 하더라. 이럴 때, 과거부터 지역정당과 같이 아래에서부터 현장을 만들자는 데 집중해온 노동•정치•사람의 청년활동가들은 소수자 운동에서도 삶과 밀접히 연결된 현장, 현장을 기반으로 한 운동을 건설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지역에서, 노동, 사회, 진보적 개인과 단체가 지역에 존재할 수 없었던 성소수자, 그중에서도 학교 밖 성소수자를 잇는 매개가 되어 주고, 무엇을 할지 홀로 묻던 소수자와 운동 주체들이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소수자가 생활하는 바로 곁을 부대끼며 진보적 담론과 연대를 실험, 생산, 공론화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거다. 나는 소수자로서 진보단체가 나와 연대하는 방식이 단지, 집회가 열리면 ‘깃발을 들어주고’, 각 운동의 의제를 멀찍이서 동의해 주는 수준으로 다가왔는데, 또 그래서 노동•정치•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하는 줄 알았는데, 동지들이 유기적인 운동, 큰 그림을 상상하고자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걸 알 수 있어 내심 놀랐다.

발제가 끝나고, 성소수자 청소년이었던 이제는 청년이 된 동지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유행하는 애플리케이션에 관한 농담도 하고, 과자도 먹고, 공부나 진로 얘기, ‘다양한’ 얘기……. 괜히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찡했던 것도 같다. 사실 오랜만에 되짚어 본 청소년 때의 기억에 그날 밤 나는 고등학교에 재입학하는 악몽을 꾸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어나 ‘에브리타임’에 접속해 시간표를 확인한 다음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나는 대학생이구나! 하는 안도. 매번 이 안도가 느껴질 때면 동시에 부채감이 느껴지곤 했다. 내게 부채감, 한편으론 안도의 의미로 다가오던 ‘대학’이란 공간이 주는 멜랑꼴리함은 한편 수치와 ‘무던해야 함’이란 자세, 즉 개인적인 구원만을 상상하는 일에 나를 가뒀었다. 하지만, 이제 그 멜랑꼴리함과 막연한 문제의식을 넘어, 더 나아가, 이제 ‘대학’까지 오게 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세미나 덕에 묻게 될 수 있었다. 또 한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뜻깊은 자리를 만들어준 청년연대팀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항상 말해주고 싶었다. 성소수자 청소년이라는 시기를 단순히 도망치듯이 지나치지 않아도, 다른 어떤 삶들처럼 청소년기를 소중한 삶의 경험의 일부로 구성하며 차근차근 지나와도 괜찮을 거라고. 이 말에서 그치지 않겠다. 이번 세미나, 그리고 앞으로 함께 만들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야학 사업에 동참하며 나는 이제 한마디를 더 할 수 있게 됐다. 소중한 삶의 시절, 나와 동지들이 당신 곁을 지키며 함께 만들어 주겠다고, 더 많은 가능성과 벗이 당신 곁에 있음을 함께 보자고. 한마디만 더, 이를 위해,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나와 동지들이 차근차근, 돌아돌아 오며 남겨 왔던 학교로, 청소년기로 되돌아가 당신을 만나겠다고. 거기서 우리, 새로운 학교와 정치, 사회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자고.

*2월 세미나에서 발표된 발제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제 자료집: https://drive.google.com/file/d/11RjPHH0XpLhqPLz16ceVqTEs6oNvTLiX/view?usp=sharing 혹은 2월세미나_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