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 노동·정치·사람 웹진 편집장
유시민과 심재철 간의 80년 신군부 합동조사단 진술서 논란이 한창이다. 두 사람 모두 자기중심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그 뻔뻔함에 어이가 없지만, 이 글은 그 두 사람 자체를 비판하고자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당시의 사실이나 가치판단 문제에 대한 논란 이전에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 현재 한국의 지배 엘리트층들은 30~40년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80년대의,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개인적인 일에 가까운 내용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가? 이건 일종의 논공행상 아닌가. 먼저 보수정당에 들어가서 권력을 누린 쪽과 중간 과정은 다르지만 지금은 새로운 권력이 된 쪽 둘이 기껏해야 과거에 누가 잘했나 못했나 수준에서 각자의 정당성을 찾고자 하는 행위들. ‘왕년에 내가’ 어쩌고 하는 꼰대들의 말싸움을 보는 것 같다면 지나친 말일까?
한국의 각종 공론장에서 80년대는 과잉대표되고 있다. 지배층만이 아니라 여론주도층이나 지식인층 상당수가 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고, 80년이나 87년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던 시대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그리고 80년대가 아니라 그 한참 이전인 일제시대나 한국전쟁기, 아니 조선시대라고 해도 우리가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문제는, 지배엘리트층 중심의 80년대 이야기가 과잉됨으로써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당장 80년대 그 자체만 하더라도 이른바 386 남성 엘리트가 아닌 여성이나 중·고졸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별 관심이 없다(물론 이들은 그래도 경제성장의 수혜집단이라 여성이나 노동자 중에서도 이후 중산층으로 진입한 이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실제로는 운 좋은 일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다가 어려워지고, 장년의 나이에도 저임금의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50·60대들이 살아낸 80년대는 과연 지금 지배층들이 이야기하는 80년대와 같은 의미일까).
보다 중요한 것은 80년대 이후가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의 현재에 훨씬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90년대의 여러 사건이다. 유난히 발달이 늦은 정치영역에서만 80년대의 인물들이 판치고 있을 뿐 사회경제영역 등 그 외의 영역에서 80년대는 이미 큰 의미가 없다.
물론 90년대 사건 중에서 97년의 외환위기는 워낙 강력한 사건이고 현재의 한국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다 보니 이에 대해서는 늘 언급이 된다. 하지만 97년이 우리에게 정말로 무엇이었는지, 그 전과 후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는 80년대의 사건에 비하면 매우 빈약하다(승리의 기억이 아니라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서 그런 측면도 있긴 하다). 당장 외환위기 전후의 한국경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조차 최근에야 나온 형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외환위기를 마치 그 이전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갑자기 일어난 ‘재앙’쯤으로 생각하는 인식 태도다. 외환위기나 그로 인한 신자유주의의 본격화는 ‘만악의 근원’으로서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치트키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나 역시 당연히 신자유주의에 매우 비판적이지만,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전개 과정이나 구체적인 양상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신자유주의 나빠’만 외치는 건 일종의 지적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외환위기 그 자체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걸쳐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경제를 자본시장 자유화 등 국제금융자본주의의 질서에 포획시키는 과정이라는 외부요인이 강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외세의 음모’만이 아니라 국내 대자본들의 요구이기도 했다. 한국경제 사상 최고의 호황기였던 90년대 초반에 이미 국내 대자본은 세계화와 노동의 유연화를 이야기했으며, 외환위기의 과정에서도 IMF의 요구수준을 뛰어넘어 대자본의 이해를 관철시켜 나갔다. 즉 외환위기라는 사건 그 자체는 외부요인이 더 강했지만, 그 전후의 과정에서는 우리 내부의 요인이 핵심적으로 작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90년대 초반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91년 열사 투쟁의 패배는 단지 ‘과격 운동권’의 패배가 아니다. 정원식 총리를 향한 밀가루 투척이라는, 사실은 테러 수준도 안 되는 헤프닝에 의해 91년 투쟁이 막을 내렸던 건 사실 80년대 후반 이후의 호황으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중산층이 더 이상의 전진을 막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별 노조하에서 호황의 수혜를 입은 상층노동자들과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해 전망을 잃은 변혁세력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90년대 초반은 겉으로는 노동운동도 성장의 성과를 나눠 먹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노동운동 아니 기존의 운동 참가자 상당수가 ‘내 이익이나 내가 중산층으로 성공하는 게 우선’이라는 자본의 질서에 굴복하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실제로 외환위기 이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심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드러난다.
좀 더 나아가면 전노협의 해산과 민주노총의 건설, 96년 노동법개악반대 총파업 이후 97년 대선과 진보정당의 건설이라는 90년대 운동진영의 핵심적인 사건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노동자 계급 내부의 연대를 통한 불평등 해소가 아니라 호황의 수혜를 입기 시작한 상층노동자들의 이해를 일정하게 관철시키는 과정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민주노총이나 진보정당의 건설을 위해 좋은 의도에서 최선을 다한 훌륭한 이들이 많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안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하의 노동운동 주류 상당수가 애초에는 계급 내 연대나 진보정당에 비판적이었다가 뒤늦게 (주로 다른 이들의 노력에 의해) 진보정당이나 비정규직 운동이 약간의 지분이나마 획득하자 거기에 ‘숟가락을 얹은’ 것도 사실이지 않는가. 이런 것들은 왜 평가되지 않는가. 지금 약간이나마 득세하고 있는 제도권 진보정당이나 대기업 노동운동은 과연 책임이 없는가.
80년대의 일부분인 87년이 아니라 90년대와 그 이후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런 아픈 질문들에 대답하려 노력하는 일이다. 크든 작든 약간이라도 ‘성공’하고 ‘승리’한 이들은, 단지 유시민과 심재철 따위의 386뿐만 아니라 상층노동자 등 주류 노동운동 세력조차도 단지 성공과 승리만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패와 패배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성찰할 때에만 우리는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80년대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그 이후를 제대로 이야기해야만 현재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단지 386이나 지배엘리트만이 아니라 80년대식 정서나 사고방식에 뿌리를 둔 제도권 진보정당이나 상층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다. 이미 성공한 당신들의 역사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현실에서 싸우고 있기에, 현재의 현실을 초래한 뿌리를 알고 싶지 당신들의 80년대를 알고 싶지 않다. 80년대식 독재든 80년대식 민주진보든 이제 다들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