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 노동·정치·사람 웹진 편집장

 

조지 오웰의 <1984>에는 단어의 뜻을 지배자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는 내용이 나온다. 가령 전쟁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을 ‘평화부’라고 부르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어떤 단어들은 원래의 뜻과 관계없이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으로 왜곡되어 사용된다. 의료나 공공부문의 영리화 내지 사유화를 ‘민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처한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정리해고 등 노동자의 생존권 침해와 거의 동일한 뜻으로 쓰인다. 어떤 산업이나 기업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해당 분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줄이겠다는 말을 ‘부드럽게’ 표현한 것 이상이 아닐 때가 많다.

원래 ‘구조조정’이라는 말 그 자체는 중립적인 단어이며, 경제 전체적으로는 일정하게 필요한 측면이 있다. 산업의 발전단계나 내외의 경제여건 등에 따라 특정 산업이나 업종은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투자에 비해 생산성이나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에 대해서는 적절한 정책적 개입으로 생산성 및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책이 필요하다. 이런 산업정책적 개입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놓으면 된다’는 식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실제로 이른바 선진국들조차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정부나 자본 및 우파 언론들은 노동운동이나 좌파 세력이 구조조정 자체를 백안시한다고 주장하지만, 산업정책적 개입을 통한 구조조정 그 자체를 백안시하는 좌파는 거의 없다. 오히려 자본이나 우파 언론들이야말로 평소에는 신자유주의 교리를 외치면서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 싶으면 언제든지 ‘시장’이 아니라 정부나 금융기관 등 공공부문이 자신을 위해 ‘개입’해주기를 바라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글머리에 말했듯이 문제는 한국에서의 구조조정이 산업경쟁력이나 고용 등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산업정책적 시야에서 진행되지 않고 그냥 노동자 해고하고 전후방 연관 효과를 무시하면서 일부 재벌의 덩치만 키우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숙련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나 부품소재 및 엔지니어링 등 밸류체인의 강화를 통한 고부가가치화는 오히려 무시되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에 발표된 조선업의 ‘구조조정’ 역시 이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구조조정안의 핵심 내용은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넘김으로써 현재의 빅3 체제를 슈퍼빅1 플러스1 체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 중복투자를 막고 ‘우리끼리’의 수주 경쟁을 자제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하지만 현재 조선업이 어려운 본질적인 이유는 덩치가 작아서거나 중복투자 때문이거나 가격경쟁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덩치는 현재 상태로도 세계 제일이며, 중복투자로 인한 위험과 독점으로 인한 위험 중 어느 쪽이 더 큰지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의 기초과학기술 클러스터 등 적절한 규모를 갖춘 서너 개 정도의 복수 집단이 경쟁할 때가 오히려 가장 효율적이라는 연구도 많다.

가격경쟁력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의 조선업 적자는 수주 경쟁 때문이 아니다. 해양플랜트 분야에서의 설계 및 시공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애초에 산정한 단가를 맞추지 못하고 비용이 대폭 늘어난 것이 주요인이다. 설계나 시공 분야의 숙련된 기술인력 없이 일단 시작해놓고, 문제가 생기면 돌관작업 등 값싼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량 투입해서 장시간 일을 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던 것이다.

결국 숙련이나 생산성 향상, 엔지니어링이나 부품소재 등의 고부가치화 등 ‘질’을 생각해야 할 단계에서 질보다는 값싼 저임금 노동력의 장시간 투입이라는 ‘양’으로만 승부를 보려고 했던 것이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약화의 본질인 것이다(이게 단지 조선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더 슬픈 일이지만).

그런데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에 넘겨서 덩치를 키운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가? 오히려 기존의 관성대로 ‘양’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더 심화시키지 않을까? 독점으로 인해 수주단가 면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만큼 오히려 질적인 혁신을 게을리하리란 예상이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앞서도 말했듯이 적절한 규모의 복수 집단이 경쟁할 때 혁신이 더 촉진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독점은 대부분 혁신을 저해한다.

게다가 독점의 폐해라는 측면에서는 전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것이 한국의 재벌집단이다. 전후방 연관산업 등 밸류체인 전체를 수직계열화하면서 부품 및 기자재업체 등이 생산성 향상이나 혁신에 투자할 여력을 없애고, 그로 인해 산업 전체의 고부가가치화를 저해해 온 것이 한국의 재벌 아니던가. 본 공정에서도 비정규직 등 값싼 저임금 노동력을 주로 활용하면서 현장에서의 숙련을 경시하는 저생산성 체제를 만들어온 것이 한국의 재벌이다.

(이 글과 직접 관련이 없어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겠지만, 한국 노동체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숙련 경시형 노동체제라는 것이다. 고용형태나 근속기간 및 임금체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은 노동자의 숙련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의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대우조선이 분식회계 등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우조선의 경우 거의 공기업에 가까웠기에 상대적으로 재벌에 비해서 독점의 폐해는 적었다. 가령 엔진을 비롯한 각종 부품이나 기자재의 경우, 재벌집단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현대중공업과는 달리 지역 내의 각종 중견중소기업들과 밸류체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으로 넘어간 후에도 이것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며, 이는 단지 개별 관련 기업에 대한 타격을 넘어서 조선업종의 산업생태계 전체에 대한 타격으로 귀결될 위험성이 크다.

정부나 산업은행의 관료들은 ‘골칫거리’인 대우조선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 전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 단계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산업정책적 관점이다. 양적 투입이 아니라 질적 혁신을 생각해야 할 시기에 덩치만 키울 뿐 기존의 문제점은 그대로 온존시키는 해결책은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아니라 기존 구조의 강화일 뿐이다. 기존의 잘못된 구조를 더 강화하면서, 이를 구조조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지 오웰 식의 단어 왜곡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에서 구조조정이란 과연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