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에서 주최한 2018년 봄 심포지움에서 발제한 내용을 나누어 올린 것임>
지난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했다. 6월 13일 치르게 되는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4일까지 국회합의안이 나오면 정부안을 철회하겠다면서 국회의 합의를 요청하였다. 끝까지 국회 주도의 개헌논의를 보장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개헌안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국회를 향해 지난 1년 동안 뭘 했냐는 취지로 질타를 가했다. 대통령의 질타가 적절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자.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현행헌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에 대한 평가는 개헌이라는 사건 자체를 감지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개헌은 그 자체로 사회가 기존의 질서를 넘어서는 순간을 맞이했음을 말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명문의 규정은 사건이 있을 때에 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그 사건으로 인하여 주인공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이다. 하지만 지금의 개헌논란은 사건으로서의 개헌이라는 본질적 의미는 탈각된 채, 마치 헌법 교과서 개정 증보판을 집필하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문장 다듬기에 국한되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기본적인 문제인식은 과연 지금 개헌을 요구하는 사람이 누구냐, 이 개헌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진행되고 있느냐이다. 개헌안을 발의한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이 촛불의 요구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선의 공약이었고 따라서 개헌을 하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 촛불과의 약속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지난 2016~17년 촛불광장에서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광장의 촛불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노래하며 헌정질서의 회복을 요구했다. 다시 말해 광장의 촛불은 “헌법을 바꾸자”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있는 헌법을 왜 안 지키느냐? 헌법 무시하는 자들을 척결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개헌의 과정은 어떤가? 지금까지 개헌은 청와대가 운을 띄우고 정치권이 이를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물론 국회는 이미 박근혜 탄핵을 전후해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있었고, 거기서 실질적인 개헌안 초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 초안은 2017년 하반기에 전국을 순회하며 ‘국민대토론회’를 거치기도 했다. 한편 청와대는 산하에 국민개헌특위를 구성하고, 별도의 개헌안 초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특위는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온라인으로 의견을 접수받는 한편, 오프라인 심층면접을 통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누가 주도를 하던 간에 주권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요식행위는 거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미 정치권 내의 의사를 조합한 후 이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여론확인이지 주권자가 직접 의제를 제출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쳐 주권자 스스로가 자신의 의사로 결정하는 안 마련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각 개헌안의 내용적 측면을 보면 거의 대부분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본권에 관련된 부분을 보면 좋은 말은 다 넣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긍정적으로 보면 풍성한 말의 성찬이지만, 실천적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개헌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권의 관심은 오로지 권력구조의 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 정치세력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권력구조를 분점할 것이냐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개헌안의 다른 내용들은 그저 부수적 효과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개헌이 과연 한 세대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고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