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당은 지역에서 활동하기 힘들까?

유검우 _ 노동도시연대 대표 / 노동·정치·사람 운영위원

 

안녕하세요, 여기는 강남·서초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노동도시연대입니다.

우리 사무국장님이 어딘가에 처음 전화할 때 이야기하는 제일 간단한 소개다. 2019년 7월에 사무실을 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니 이제 다음 달이면 꼭 2년을 채우게 된다. 코로나 시국의 어려움 속에서 활동 기반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으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어느덧 지역 시민사회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축을 맡는 수준이 되었다.

노동도시연대가 주로 하는 일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지역 시민사회 및 노동자 조직과 개인의 연대를 형성하고 행정권력에 대한 감시·견제를 통해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여 노동권과 도시에 대한 권리를 확대하는 것이다. 정치 권력 획득이란 목표가 빠졌을 뿐, 실상 하는 일은 진보정당의 지역 당원협의회가 하던 일과 동일하다. 같은 일을 한다면 기왕에 스스로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정당이 낫지 않겠는가 싶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정당 시스템에서 이뤄지기 힘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유명무실한 당원협의회

한국에서 진보정당, 아니 정당 활동 자체가 어려운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하나는 법 제도의 제약, 다른 하나는 미비한 사회적 요건이다. 그간 진보정당 운동은 법제도를 바꾸기 위해 오랜세월 고군분투하였으나 작년에 어렵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일부 도입했음에도 그 결과는 보수양당의 위성정당이란 꼼수에 의해 취지가 무색해졌다. 이쯤되면 원내진출에 몰두하는 전략의 유효성에 의문을 품고 다시금 지역과 현장을 강조하며 아래서부터의 운동에 주목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또 다른 제도의 제약이 가로막는다. 바로 당원협의회 체계의 유명무실성이다.

지역에 기반한 활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상근자)과 공간(사무실)이 필요하다. 2004년에 지구당 설치가 금지된 이래, 이를 대체한 당원협의회는 실상 그 어떤 법적인 책임과 권한도 부여되지 않는 임의기구에 불과하다. 지역에 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는 것은 광역단위의 시·도당까지이며,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정당법상 당원협의회는 시·도당의 하부조직이 아니다. 정당이 기초단위에서 실체를 가지고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되어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정당법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대부분의 정당이 국회의원 지역사무실이나 여타 다른 이름의 공간을 마련해 당원협의회의 사무실처럼 사용하고 있으나, 그런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당원협의회는 자체적으로 정치자금을 모금하여 자체 사업을 펼칠 수 없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때문에 당원협의회는 시·도당 회계에 종속되어 겨우 당원모임이나 하고 시·도당에서 내려주는 사업만 간신히 수행하게 된다. 17년 전의 지구당 폐지가 이처럼 정당의 지역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았다면 진보정당은 고사하고 저 보수양당도 지금처럼 지역 현안을 단면적으로만 다루진 않았을 것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에겐 공간이 필요하다.

노동도시연대를 설립하고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저 제약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이전에 당협에서 진행했으면 두세 달은 족히 걸릴 일을 일주일 만에 해결한 것은 물론이고, 넉 달 동안 달성한 업무성과가 4년 동안 당협에서 한 일보다 많았다. 상근자와 사무공간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일이란 건 하지 않느니만 못하고, 심지어 반노동적이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당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구축하고, 노동자들과의 실질적인 접촉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속해있던 정당의 정치적 지향이나 세 부족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 제도가 물적 토대를 만들 수 없도록 틀어막아 놓은 이상 그것을 우회하려면 다른 무언가, 예를 들자면 개인의 명망이나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자금 운용 등이 있을 텐데 이런 수단들은 진보 정치의 지향에 반한다. 실제로도 저런 수단에 의존한 집단은 결국 본질을 망각하거나 왜곡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 않나?

정당이란 틀의 무거움

정당 체계 안에서 지역 활동을 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자율성의 제약이다. 중앙집중화니 민주집중제니 체계의 문제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애초에 위의 문제 때문에 상급 단위와의 충돌은 논할 처지조차 못 되는 게 한국 진보 정치의 현실이다. 존립 기반도 미약하고 자원도 부족한 처지에서 정당이라는 체계의 최소요건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지역 활동의 자율성을 가로막는다. 진성 당원제를 채택한 정당이라면 당연히 당원의 참여에 기반하여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당원 참여를 우선 고려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당원 관리가 가장 중요한 업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월 교부금 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당원 관리 외에 어떤 사업을 할 수 있는가?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 당원모임이라도 꼬박꼬박할 수 있으면 다행인 게 전국의 진보정당 당협들 처지이다.

그밖에도 ‘정당’이라는 라벨이 주는 선입견 혹은 정치적 견제 또한 지역 활동의 장벽이 되기도 한다. 실제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이 서로 모이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겠으나, 대부분은 정치적 견제 심리보단 오히려 각 정당의 지역조직이 처한 현실적 어려움이 더 크게 작용하리라 본다. 정당 조직이 아닌 시민단체나 개별 활동가들이 정당을 꺼리는 일도 있지만, 이는 지역 활동에서 크게 발목 잡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선 오히려 진보정당의 지역 활동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어프로치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앞으로의 과제

짧게나마 왜 정당이 아닌 시민단체의 틀로 정당이 할 법한 지역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정당에서의 지역 활동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짚어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라며, 또 한편으론 이런 환경을 바꿔낼 수 있는 지역 정당 운동을 고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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