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사람 성소수자 소모임에서는 첫 번째 사업으로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를 진행 중입니다. ‘성소수자 노동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성소수자 노동자’라는 존재를 가시화시키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한 번 더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또한 이 인터뷰가 향후 노동·정치·사람 성소수자 소모임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갈 때 든든한 자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힘든 모습만을 강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 또한 일터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립니다. 물론 고민도 합니다. ‘노동자’와 ‘성소수자’라는 두 가지 특성이 만났을 때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시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함께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다양한 직종의 성수소자 노동자를 만나 그들이 일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타자화된 모습이 아닌 내 친한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생각하며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어인 이오의 메일(lunar037@gmail.com)로 인터뷰와 관련된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다양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인터뷰이가 되고 싶은 당사자가 계시다면 언제든 메일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오 | 노동·정치·사람 집행위원

이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바다: 닉네임은 바다.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어요. 전주퀴어문화축제 기획단에서 활동 중이고 연세대 총여학생회에서 2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이오: 직장생활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요?

바다: 도시재생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오: 본인을 노동자로 느끼기 시작한 때는 언제인가요? 혹은 일상적으로 느끼는 때가 있는지요?

2019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이후 집회에서

바다: 활동하다가 임금노동을 할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활동할 때에는 수평적으로 일했으니 회사에서도 그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을 때 그렇게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회사에 다니면서 내 의지와 상반되는 일을 해야 할 때 ‘내가 노동자구나’라고 느껴요. 활동도 노동이지만 활동판에서는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논의가 오갔지만, 회사에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직장동료 혹은 상사와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서 갑의 의지에 맞춰서 내 노동력을 제공해야 할 때 나를 노동자로 인식하게 되죠. 다른 활동을 할 때는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임금을 받으면서 일할 때는 을의 위치에 있으니까 내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전 회사에서 청년공간을 만들던 과정에서 화장실 문제가 있었어요. 똑같이 생긴 화장실이 두 개 있고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남녀화장실로 나누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소변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구분도 안 되니 더 많은 사람이 불편하게 이용하지 않으려면 일인용 화장실을 쓰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했더니 회사 측에서는 “당연히 남녀로 나눠야지” “같이 쓰면 내가 불편할 것 같아” “상부에서 결정한 일이니 네가 토 달 건 아니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걸 듣고 나니 회사의 결정을 내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위치가 됐어요. 이런 때에 노동자로 느껴지는 거죠.

이오: 성소수자 노동자로 살면서 힘든 점은 어떤 점이 있나요?

바다: 처음 구직할 때부터 문제가 돼요. 이력서를 낼 때 활동했던 사실을 넣어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적자니 ‘얘는 사소한 걸로 트집 잡을 애다’ ‘피곤한 애다’ 등의 생각을 할 것 같아서 이런 내 정체성을 받아줄 수 있는 회사인가 아닌가에 따라 적는 내용이 달라져요. 최근에 일했던 직장에서는 먼저 제의가 와서 활동했던 곳과 페미니즘 등등에 대한 내용을 다 기재했는데, 퀴어문화축제 참여 이력을 보고 “이성에게는 몇 퍼센트, 동성에게는 몇 퍼센트 끌리냐”라는 무례한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퀴어문화축제 참여 이력을 보고 ‘이성에게는 몇 퍼센트, 동성에게는 몇 퍼센트 끌리냐’라는 무례한 질문을 받기도 했어요.

또 직장 안에서 가치관이 충돌하는 순간이 많아요. 가입신청서를 만들면서 기존에는 남·여만 있던 성별란에 ‘기타’를 넣었더니 상부에서 “이게 뭐냐”라면서 반려했어요. 이후에 다른 곳도 이렇게 만든다고 하면서 다시 올렸더니 이번에는 “통계를 내야 한다”면서 반려하더라고요. 통계상 지표에 잡힐 만큼의 퍼센트가 아니다 하면서 다시 올렸지만 다른 이유로 트집을 잡으며 반려하고 ‘기타’란은 계속 삭제됐어요. 결국 ‘무응답’은 들어갔지만 저는 회사에서 또 ‘예민한 애’가 됐어요.
운영하는 공간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의 강사님을 추천했는데 그분이 오픈리 젠더퀴어였고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오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그날만이라도 성중립화장실을 시행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공간이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고 말했는데 “많은 강의를 다니신 분이니 그 정도는 이해할 것”이라며 무시된 일도 있었어요.
퀴어 친구가 직장에 놀러 왔을 때 그 친구를 보는 직원들의 시선이 너무 알아채기 쉬울 정도로 혐오를 담고 있어서 친구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어요. 이 공간에서 내가 그런 일을 했던 사람임을 밝히고 일을 하고 있는데도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차별과 혐오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괴로웠어요.

이오: 일터에서 그런 혐오를 느끼실 때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궁금해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여성들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바다: 처음에는 회사 내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이런 혐오가 불편하다고 얘기했어요. 그러면 평등문화 TF를 만들어서 네가 내규를 짜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정작 내규를 만들기 시작하니까 “우리 직원들이 그 정도도 못 하는 사람으로 보이냐?”고 반문했어요. 신뢰를 물고 늘어지더라고요. 조항들을 만들 때는 뉘앙스 하나조차도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가 그 정도 생각도 없는 사람인 것 같냐”면서 저를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몰아갔어요. 어쨌든 너무 힘들게 내규 작업은 마쳤지만 제대로 지켜지지는 않았어요. 결국엔 회사가 바깥에 ‘우린 이런 내규도 있어요’하고 자랑하는 수단에 불과했어요. 회사에 자랑거리 하나만 만들어준 셈이죠.
다른 성소수자 방문자 향한 혐오의 눈초리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었어요. 대놓고 혐오 표현을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당신 무례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떠한 좋은 결과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나를 고립하는 결과가 될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어요. 이성애자 몇 퍼센트 동성애자 몇 퍼센트 질문을 들었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말단이자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계속 얘기하고 있는 회사에서 팀장이 되고 나서 새로 들어온 팀원과 식사를 한 적이 있어요. 팀원 중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트랜스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즘)가 있었는데 식사 중에 대화하다가 “드랙들은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성을 강화하는 존재고 여성성을 갖고 싶어서 흉내 내는 사람이다”라는 등의 혐오 표현을 했어요. 그때 회사니까 사적 자리가 아니니까 “이 얘기는 조금 더 신중히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네요”라고 이야기하고는 그 뒤로 노선이 갈릴 만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이후 일을 계속하면서 뒤로 갈수록 무력해졌어요. 회사가 돈 주는 만큼만 일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 사람들 인권교육한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니까. 이 단체가 어떻게 굴러가든 신경 쓰지 말자고 무덤덤해졌던 것 같아요. 직원들이 운동권이고 진보에 대한 프라이드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어요. 자기들이 옳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얘기들은 씨알도 안 먹혔어요. “내가 얼마나 진보적인 사람인데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애가 어디서 훈계질이야!”라는 이야기를 몇 번 듣고 나니 좌절감이 들어서 포기했어요.

직원들이 운동권이고 진보에 대한 프라이드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얼마나 진보적인 사람인데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애가 어디서 훈계질이야!’라는 이야기를 몇 번 듣고 나니 좌절감이 들어서 포기했어요.

이오: 일을 하면서 그리는 미래가 있는지 궁금해요.

바다: 건축 도시 쪽이 경직되어 있고 남성 중심적이라는 걸 학교에서부터 많이 느꼈어요. 제가 활동해 온 일들이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 요구도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고 생각했는데, 업계에 실제로 나가보니 정의의 측면에서나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봐도 엄청 무리한 요구나 대단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성별 응답에 ‘무응답’ 하나 추가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무리라고.
그런데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그런 이야기를 해 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해요. 특히 도시학계 쪽은 여성의 진입 자체가 어렵고 그래서 더 경직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당장 내 세대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어떤 분야든 환경이 바뀌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계속 말을 하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야 이후에 누군가가 변화를 일으킬 때 근거가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지금 이런 얘기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런 근거가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쪽 업계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근대화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은 각자의 분야에서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업계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내가 변화의 근거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더 오래 걸리기 전에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고 근거를 만들기 위해 분신을 하고 이러진 않을 테고 다양한 운동의 방식이 있을 거예요. 누군가는 나에게 그것이 운동성이 없다고 얘기할 수도 있고 급진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 자리에서 근거를 만들어 가는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위에서 언급했던 회사에서 말단직원으로서 일할 때 성소수자 단체에서 공간대여 문의가 왔어요. 통화할 때에는 공식적인 안내를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공간이 안전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방법을 제시하는 문자를 보냈어요. 상대방이 너무 감사해하는 걸 보며 내가 있어서,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되겠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어요. 결국 첫 번째 목표는 살아남기. 두 번째 목표는 근거를 제공하는 일을 하기. 도토리 하나라도 심으면 누군가가 물을 주겠지 하는 마음이에요.

첫 번째 목표는 살아남기. 두 번째 목표는 근거를 제공하는 일을 하기.
도토리 하나라도 심으면 누군가가 물을 주겠지 하는 마음이에요.

이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부탁드려요.

전국퀴어문화축제연대 워크샵에서

바다: 너무 힘든 것만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가끔 제가 만든 사소한 변화들을 알아채 주는 사람들도 있고, 방금 말한 성소수자 단체에서 공간대여 문의를 하셨을 때도 나에게 힘이 됐다고 하셨어요. 굳이 뭘 하지 않더라도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생각을 그때 많이 했어요. 이 공간이 아무리 배타적 공간이어도 서로 힘이 되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시니까. 찾아오는 사람 중에도 나의 고충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더니 “공부하시는 분들이 있나 봐요” “페미니스트가 계시나 봐요” 등의 얘기를 들어요. 이걸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고,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내규를 만들고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성소수자 노동자는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오만 데에 있어요.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곳에도 열한 명 중 최소 세 명이 있어요(당시 카페 2층에 인터뷰어, 인터뷰이를 포함 11명의 사람이 있었다). 정말 어디에나 있어요. 당사자들도, 비당사자들도 그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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