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사람 성소수자 소모임에서는 첫 번째 사업으로 ‘성소수자 노동자 인터뷰’를 진행 중입니다. ‘성소수자 노동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성소수자 노동자’라는 존재를 가시화시키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한 번 더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또한 이 인터뷰가 향후 노동·정치·사람 성소수자 소모임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갈 때 든든한 자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의 힘든 모습만을 강조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 또한 일터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립니다. 물론 고민도 합니다. ‘노동자’와 ‘성소수자’라는 두 가지 특성이 만났을 때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시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함께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다양한 직종의 성수소자 노동자를 만나 그들이 일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타자화된 모습이 아닌 내 친한 친구, 직장 동료 등을 생각하며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어인 이오의 메일(lunar037@gmail.com)로 인터뷰와 관련된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다양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인터뷰이가 되고 싶은 당사자가 계시다면 언제든 메일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오 | 노동·정치·사람 집행위원

“남자야? 여자야?”

이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승히: 관광지에서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기념품 가게에서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오: 일터에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있을까요?

인천퀴어문화축제 중 제주퀴어문화축제 부스에서 (사진제공: 승히)

승히: 판매직이다 보니까 머리가 짧은 나의 외모로 성별을 판단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패싱(특정한 성별로 보이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어요. 나는 젠더리스(어떤 젠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혹은 자신의 젠더가 없다고 느끼는 정체성)인데, 나를 처음 보고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다 목소리를 들으면 “어 여자네”라고 해요. 이럴 때 씁쓸함을 느끼죠. 장난감이나 관광상품을 판매하다 보면 어린이 손님을 많이 상대하는데 “저 사람은 남자야, 여자야?” 하면서 궁금해하기도 해요. 그때 무례하다고 지적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화가 날 때가 많아요.
이성애 중심적인 직장문화에도 환멸이 나요. 내가 시스젠더(트랜스젠더의 반대말. 자신의 성별 정체성이 사회에서 부여한 성별 정체성과 일치하며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사회가 부여한 성별 사이에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젠더) 이성애자가 아니다 보니 다른 성적지향을 터부시하는 문화나 그로 인해 나오는 말들에 상처를 많이 받아요. 현재 나와 애인 모두가 젠더퀴어(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법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을 모두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 또는 그런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데, 당연히 내가 이성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이나 출산 같은 이성애 중심적인 규범을 얘기하고 연애에 대해서도 스테레오타입의 행동들만 강요해서 불쾌해요.

이오: 일을 하면서 크게 좌절감을 느낀 순간, 혹은 직접 맞닥뜨린 혐오가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승히: 미스젠더링(타인의 성별 정체성을 무시한 채 추측에 근거하여 성별을 오판하는 것)을 당할 때. 패싱에 대한 상처가 제일 커요. 남자 또는 여자로 규정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예요. 거기다 여성으로 패싱되면서 받는 취급들, “여자는 빠져라” 등등의 직장 안에서의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분위기들이 힘들어요. 커밍아웃한 동료에게조차 “너는 여자니까” 하면서 내 존재가 지워질 때도 있었고,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발언을 듣는 경우들도 있었어요. “트랜스젠더라는 사람들이 있다니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더럽다”라는 등의 말을 대놓고 해서 언쟁을 한 적도 있어요. 직장 내에서 나의 존재가 지워지고 부정당하거나 실질적인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느낄 때 힘들어요. 화장실이 남녀로 구분된 것도 힘들어요. 예전에 다닌 직장은 화장실이 1, 2층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여·남화장실이 모두 1인용 화장실이었어요. 그래서 1층에 있는 남자화장실에 간 적이 있는데, 다른 직원이 그걸 보고 굳이 남자화장실에 간다고 뭐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이오
: 화장실 얘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보면 좋겠어요. 성중립화장실에 대해 얼마 전부터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고, 성중립화장실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요. 승히 님이 직장에서 화장실 때문에 겪었던 애로사항이나 그때 들었던 감정, 그리고 성소수자운동 진영에서 일어나는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담론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승히
: 무엇보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트랜스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즘)가 제기하는 트랜스젠더 혐오 발언을 잠재울 방법이 ‘성중립화장실은 모두의 화장실이다’라는 담론이란 거예요. 일터에 가족 단위의 고객이 많이 오는데 화장실에 갈 때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따라가는 아이들이 많아요. 한국 사회에서 양육에 대한 책임을 여성이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 중 하나가 어린 남자아이가 여자화장실에 들락거리는 거예요. 내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 후 손을 씻는데 어떤 애가 나를 보더니 “왜 남자가 여자화장실에 왔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 아이도 남자였어요.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 ‘저 남자애를 쫓아내야 해!’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정착된다면, 화장실을 쓸 때 한 사람이 쓰고 다음 사람이 기다리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였어요. 1인용 화장실이 있으면 좋겠어요. 환자와 유아를 동반한 가족, 성별정정 중이거나 성별위화감 때문에 성별이분법적 화장실을 쓰기 힘든 사람 등 모두를 포함하는 화장실이 있으면 좋겠고, 그게 내가 다니는 직장에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그리고 청년으로 산다는 것

이오: 본인을 단순히 ‘일하는 사람’이 아닌 ‘노동자’라고 생각하게 된 시기는 언제쯤인가요?

인천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제주퀴어문화축제 멤버들과 함께 (사진제공: 승히)

승히: “언제 성소수자로 정체화하셨냐”는 질문만큼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모부님이 일을 하셨고 나도 커서 일을 할 테니 당연히 노동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오: 자신을 ‘노동자’라고 정체화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갑을 관계의 을이라고 여기는 게 아니라 노동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노동에 대해 더 깊게 사유한다는 의미로 다가오는데, 처음 노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건가요?

승히: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노동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어요. 내가 나를 젠더리스로 정체화하기 이전부터 나를 노동자라고 정체화했어요.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생각이 조금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노동자인 모부님을 바라보면서 노동이란 무엇이고 생존을 위해서 노동이 어떤 가치를 띄어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춘기 때부터 노동에 대해 많이 사유했고,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파업한다고 하면 지지도 하고 그랬어요.


이오
: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일터에서 각각의 정체성, 또는 그 정체성의 교차로 인해 어려웠던 점이나 혐오를 받았던 적이 있나요?

승히: 정말 희한해요. 성소수자나 노동자 모두 약자의 입장인데 노동자가 받는 혐오는 뉴스에서 노조의 파업을 호도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미디어에서 더 쉽게 노출되는 반면 성소수자가 받는 혐오는 조금 더 세밀하고 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례로 내가 직장에서 노동자로서 노조 관련 얘기를 하거나 노동운동에 관해 열변을 토하면 동료들도 동조하거나 본인의 생각을 얘기해요. 그런데 그 주제가 성소수자 인권이 되면 언쟁이 벌어져요. 젠더리스라고 커밍아웃을 했더니 “그런 거 왜 하냐”라는 반응이 돌아온다든지.

이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바깥에서는 젠더퀴어로 살다가 직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한국 사회의 남성으로 살아지게 돼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내가 힘들어져요.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내가 힘든 점은 나의 정체성을 가리고 내가 남성으로 살아야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단순히 업무의 성과를 더 높이 평가받는 문제가 아니라 정말 남성이어야 이 업계에 종사할 수 있는 것. 내가 남성이 아니게 되는 순간, 이 업계에서 일을 못 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힘들었어요.

승히: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에서나 퀴어 친구들이랑 있을 때의 나는 나일 수 있는데 직장에서의 나는 ‘여성’이어야 해요. 게다가 서비스직이다 보니 사회에서 여성성이라고 규정한 일들을 수행해야 하는 때가 있어요. 나는 나로서 행동했을 뿐인데 “여성스럽다” “역시 여자” 이런 말을 들을 때나 반대로 “여자가 무슨”이라는 평을 들을 때면 이게 뭔가 싶어 힘들고 괴리감이 느껴져요. 성별 이분법이 공고화된 사회에서는 직업의 역할마저도 가르게 되고, 특정 성별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어떤 직업 안에 속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해요. 손님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해야 하는 서비스직은 여성을 더 우대하는데, 여기서도 내가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뽑혔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이오: 나는 지금 머리를 기르고 있는데, 이 ‘머리를 기른다’는 행위가 젠더퀴어로서의 내 정체성을 수행하는 데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이 머리가 ‘젠더퀴어로서의 나’의 일부가 된 것 같고, 이 머리를 자르게 되면 내가 느끼는 성별위화감 때문에 내 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율복장인 회사를 찾다 보니 갈 수 있는 직장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어요. 남성성을 수행해야 취업할 수 있는 회사들, 예를 들면 방역회사나 경비업체 등은 흔히 얘기하는 ‘단정한 외모’라는 조건 때문에 남성다운 외모를 강요해요. 단정해야 하니까 머리도 짧게 잘라야 하는 거죠. 그런 회사에는 취업할 수가 없어요. 나에게는 머리를 기르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살아가기 힘든 점 중 하나이기도 해요. 나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회사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거예요. 승히 님도 혹시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승히: 나는 ‘여성성을 수행한다’는 것에는 큰 거부감이 없어요. 그런 상황일 때 ‘여성성을 수행하고 있다’보다 ‘이 상황에서 생존해야 하니까 한다’라는 쪽이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일 거예요. 젠더를 수행하는 것은 단련이 됐고 지금까지 이렇게 사는 데 지장은 없었어요. 오히려 2019년 한국에서는 ‘청년’으로서 사는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내 일자리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나 또한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생각하면서 도대체 내가 갈 곳이 어딘지 찾지 못하고 있어요. 제주도는 쉽게 숙식을 제공하는 회사가 많은데 서울은 밥을 안 주는 회사가 많아요. 말이 안 돼요. 내가 일할 곳이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정말 커요. 나에게 일을 줄 만한 곳이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요. 하루 종일 일하고 최저임금 받아 방세 내고 생활비 내고 공과금 내고 나면 내가 한 달에 쥘 수 있는 돈이 얼만지, 그게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돈이 되는지, 서비스직은 특히 박봉이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크죠. 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생존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커요. 생활이나 삶이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거예요. 1950년대만 전쟁을 겪은 게 아니라 지금 청년세대도 전쟁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이 패배감에 젖어 있고 정신질환이 없는 청년을 찾기가 힘들어요.

“마감시간은, 마감시간이다!”

이오: 일하면서 그리는 미래가 있는지 궁금해요. 일을 하면서 갖고 있는 비전이나 희망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시고.

제주퀴어문화축제 회의를 마치고 (사진제공: 승히)

승히: 일을 하면서 집을 사고 싶어요. 내 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가구매면 베스트지만 평생 돈을 벌어도 자가구매는 힘든 걸 알기 때문에 전세여도 감지덕지예요. 집만 해결되면 모든 면에서 돈을 모으는 과정이 굉장히 수월할 것 같아요. 돈을 모으면 하고 싶은 일은 ‘이제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하는 거예요. 우리 세대는 젊었을 때부터 번아웃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수능, 대입, 취업, 일자리를 위해 불태우고 삶을 살기 위해 또 불태워야 해요. 돈이 있어야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집만 있으면 최저임금을 받아도 되겠다 싶어요. 그래서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사실 대출금이 문제예요. 나는 서비스직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예쁜 외모나 서비스직의 ‘용모단정’을 수행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일할 곳이 있을지 걱정이에요.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서비스직은 임금이 굉장히 낮아요.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인데 사람의 가격을 가장 쉽게 보는 업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받는 최저임금으로 생활이 될까? 서비스직을 직원보다는 알바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노동자성의 불균형도 걱정돼요.

이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승히: 성소수자라는 말이 비극적인 스테레오타입에 갇히는 걸 탈피하고 싶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나의 삶은 비교적 평탄했고, 정체화하기 이전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인데 그 전의 내가 나를 정체화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아닌 건 아니잖아요. 우리 하나하나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성소수자가 비극의 주인공인 것은 현실이기도 하니까 일터에서 서로를 배려하면 좋겠어요. 굳이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나 장애인 등을 배려할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면. 직장 내에서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말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에게 말을 조심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직장에서 말들 조심하자!
그리고 서비스직을 존중해 달라! “직원분”이라고 불러주시고 “언니”나 “저기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감시간은 ‘마감’시간이다(한숨). 마감 후에도 일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에요. 얼마 전에 트위터에도 썼던 말인데, 소비자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 매장 내에서 사적 시간도 뺏을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마감 끝났는데 들여보내주면 안 되냐 이런 걸 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노동자를 존중하자! 왜냐면 당신이 그 노동자다!

One Comment

  • eversloth 말해보세요:

    잘 읽었습니다! 돈이면 (심지어는 돈을 치르지도 않고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현실이 참 답답합니다.
    제목, 사진제공과 본문의 호칭이 다른데 의도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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